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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공부/200일 글쓰기

[119일][9월17일] 그녀에 대해(1탄) 그녀에 대해(1탄) 내겐 24(또는 25)인 사촌동생이 있다. 꽤 친하게 지내는, 수학교사를 꿈으로 키우던 동생이다. 그녀는 대학을 다니며 교직이수를 하겠다고 순수 학문 중의 수학을 선택했다. 그러나 교직이수를 뜻대로 하지 못했고 졸업했으며 현재는 신촌의 한 오피스텔에서 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다. 꿈 혹은 목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을 향해 가고 있는 그녀에 대해 적어보려 한다. 그녀를 알기 위해, 그녀에 대한 내 반감을 알기 위해. 잦은 이직으로 취업 시장에서 단련이 된 나, 그런 나를 보는 친척들의 시선은 이렇다. 대단하다, 너답다, 어쩜 이래? 안착한 곳이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내 생각과 상관없이)더 그렇게 생각하시는 듯하다. 그리하여 사촌 동생이 취업을 준비하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일종의 지침을 어른.. 더보기
[118일][9월17일] 지난한 마음알기 지난한 마음알기 분노 조절 장애가 있나. 틈만 나면 불같이 화를 낸다. 오늘 오전, 내 뒤를 지나가는 팀장님의 눈길이 느껴졌다.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 내가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나에게 조치하라고 해서, 나는 협력업체 직원에게 다시 전달했고,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옆 팀 담당자에게 이야기했다. 둘 다 알겠노라 했으나 결국 이틀이 지난 오늘까지 그 일은 처리되지 않았다. 팀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협력업체 직원에게 갔다. 왜 아직 안했죠? 그쪽에다 말했나요? (그건 제가 처리하는 게 아니라서...) 그걸 몰라서 제가 지금 말하나요? 오늘 오전 중으로 처리하시죠. 옆 팀에 다시 가서 말했다. 해당 업체에 전화를 한 번 걸어서 조치시키시죠. (그걸 왜 우리가 해야 하죠?) 그건 그 팀 사정이.. 더보기
[117일][9월16일] OO씨에게 OO씨에게 마음이 뒤숭숭했습니다. 추석이 얼마 안 남았고, 주말이면 시댁에 가야하고, 화요일에 글쓰기 수업에서 언쟁을 했기 때문이겠죠. 그러는 와중에 오늘 아침 유책임으로부터 OO씨 할아버님 부고 소식을 들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자연스럽고도 기계적인 반응을 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올 초에 있었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장례식이 문득 생각났고요. 추웠습니다. 가을축제와 코스마스가 어우러지는 지금과 달리 칼바람이 가득한 2월이었으니까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연달아 가시면서, 죽음이 무엇인지, 삶에 왜 끝이 있어야 하는지, 무엇보다도 조부모님의 죽음 앞에 선 엄마의 무력감을 절감했습니다. 저 역시 외손녀로서 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이었습니다. 얼굴도 낯선 조부모님과 부모님의 지인들, .. 더보기
[115일][9월14일] 마음의 병, 몸의 병 마음의 병, 몸의 병 집에 가는 길, 도서관에 들려 책을 반납하고 가자는 데 신랑이 단칼에 싫다고 말한다. 기왕 차타고 가는 거 조금 우회하더라도 도서관에 잠깐 들르면 될 텐데. 갈 수 없는 이유는 그곳이 막히기 때문이란다. 가자. 안돼. 단 두 마디에 우리의 대화는 마지막 빽 지른 나의 화로 끝났다. 진짜 너무하네. 힐난하듯 내뱉었다. 거짓말처럼 그 때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열이 나고 콧물이 흐르고 차 안에서 식은 땀을 흘리더니 집에 와서는 급기야 토악질을 시작했다. 두리번 두리번 전전긍긍하는 신랑이 이불을 덮어주고 물을 떠다주고 땀을 닦아준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신이 없는 와중에 ‘니가 속썪이니까 아프잖아’ 안해도 될 말을 던지고 만다. 농담하는 거 보니까 아픈 거 다 나았네 한다. 서러움이 .. 더보기
[114일][9월13일] 누군가, 혹은 나의 이야기 누군가, 혹은 나의 이야기 장애를 가진, 여성으로서(소수성을 가진 사람) 자기이야기를 책으로 썼다. 장애라는 건 삶의 요소로서 누구나 가질 수 있다. 열등감의 형태가 될 수도 있고, 부모, 학벌, 지역이 될 수도 있다. 장애는 내 존재의 ‘정체성’으로 통합하지 않으면 분투가 이어지기에 힘들어 질 수 있다. 장애를 가진 여성의 이야기지만 이는 곧 ‘내 얘기’가 될 수 있고, ‘내 이야기’를 풀어내는 단초가 될 수 있다. 일상의 에피소드를 하나하나 풀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사적인 이야기가 결과적으로 전혀 사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공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원고지 2.0) 더보기
[113일][9월12일] 토지읽기 토지읽기 주연과 조연이 구분 없는 소설이다. 이 책을 내가 어찌하여 지금까지 안 읽고 있었을까. 무심하게 지나간 시간들을 탓할 정도의 흡입력이다. 1권에서는 최참판댁과 그 마을의 다른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각 인물들을 모두 동등하게, 완급을 조절하며 설명하는 것은 아마도 이들이 모든 형태의 ‘삶’에 주인이 되기 때문이리라. 가장 인상적인 관계는 강청댁-용이-월선 세 명의 관계다. 용이라는 인물을 두고 한 사람은 부인으로, 또 한 사람은 첫 사랑으로 그의 주변에 머문다. 강청댁이 용이에게 현실적인 가정이라면 월선은 고향의 안식처와 같다. 강청댁의 억척스러움으로 그녀에 대해 비난하는 독자들도 많지만 나는 그녀에게 마음이 쓰인다. 내 남자가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두고 있다는 건, 성인(聖人)이라 하더라도 .. 더보기
[112일][9월11일] 언프리티 랩스타 언프리티 랩스타 언프리티 랩스타 드디어 봤다. 지치고 무료한 금요일 밤, 불금을 보내야 할 것 같지만 고단한 주중의 끝자락, 우연히 돌린 케이블 방송에서 말 많고 탈 많던 방송을 직접 봤다. 여성 래퍼들이 경쟁하는 프로였다. 힙합이란 분야에 워낙 문외한이라, 그들의 태도, 말 한마디가 모두 새로웠다. 특히 눈에 띈 건 래퍼들의 사고방식이다. 래퍼마다 스타일이 조금씩 다른데 모두 공통적으로 중시하는 게 있었다. 바로 솔직함. 권력과 책임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감정들을, 날것 그대로 진솔하게 표현하겠다는 마음이, 거칠지만 자유로워 보이는 그들의 모습과 제법 잘 어울려 보였다. 포장하고 숨기기에 급급한 세태에 숨이 막혔던 차에 이 솔직함이 퍽 마음에 들었다. 이게 바로 누구와 누구의 비교보다 더 매력적인, 이 .. 더보기
[111일][9월10일] 지출과 가치사이 지출과 가치사이 충북지역 임대아파트 공고 현황, 하와이 호텔 예약페이지. 업무 외적으로 열어놓은 페이지들이다. 하나 끝내고 그 다음, 또 그 다음이 안된다. 부산함과 정신없음 그 중간쯤. 내년에 회사가 사무실로 이전한다. 집을 구하고 이사를 해야 한다. 서울에 있는 집을 팔지, 충북에 집을 살지, 서울 집을 전세로 줄지, 월세로 줄지, 충북 아파트에 세들어 살지, 오피스텔에 살지, 친정으로 들어갈지, 원거리 출퇴근을 할지, 통근버스는 있는지, 차로 다녀야하는지, 그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머리가 깨질지경이다. 결혼할 때 무리해서 마련한 아파트는 높은 금리의 이자와 함께 우리에게 유주택자라는 타이틀을 줬다. 이 타이틀은 집있어 좋겠다는 부러움을 사지만, 대출금의 압박도 선사한다. 피싱으로 돈이 빠져 나갈.. 더보기
[110일][9월9일] 정답과 오답 정답과 오답 ‘그 나이 때 나는 내가 ‘병신’이라고 생각하기는커녕 내가 다른 아이들과 그리 다르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움직임이 좀 어정쩡하다는 건 알았지만, 태어날 때부터 그랬기 때문에 그게 이상한 줄도 몰랐다. (p37)‘라고 해릴린 루소는 말한다. 자신의 불편함을 알았지만 이상한 줄은 몰랐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계속 물었단다. 넌 뭐가 잘못되서 그런거니? ‘잘못’의 사전적 정의는 잘하지 못하여 그릇되게 한 일이다. 그녀에게 뭐가 잘못 됐냐 묻는 건, 어떤 과오가 현재에 ‘벌’로 나타났다는 말인가. 지난 주 인공지능 세미나에서 있었던 일이다.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인간의 방향성을 고민하는 어른들 사이에 인간의 자체적 몰락을 우려하는 소년이 있었다. 소년이 질문을 하자 강연자는 ‘참 똑똑한 친구.. 더보기
[109일][9월8일] 나를 대단하다고 하지마라 발췌 °그 나이 때 나는 내가 ‘병신’이라고 생각하기는커녕 내가 다른 아이들과 그리 다르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움직임이 좀 어정쩡하다는 건 알았지만, 태어날 때부터 그랬기 때문에 그게 이상한 줄도 몰랐다.(p37) °‘다름’과 ‘병이 있음’을 구분 짓는 것이 그렇게나 어려운 일인가 보다. (p51~52) °우리 사회의 역학 관계는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당사자의 오점으로 치환해버린다. (p174~175) °장애 여성들이 자기 몸을 더 잘 제어할 수 있게 해주는 방법을 찾기보다 환자의 ‘손상된’ 신체를 어떻게 고치거나 어떻게 다룰지에 훨씬 더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p313) °우리 가족은 저마다 나름대로 비정상적인 사람들이었고, 나 역시 우리 집안 최초의 정상인이 될 계획 따윈 없었다. (p35) °인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