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끝없는 공부/200일 글쓰기

[119일][9월17일] 그녀에 대해(1탄)

 

그녀에 대해(1)

 

 

 

내겐 24(또는 25)인 사촌동생이 있다. 꽤 친하게 지내는, 수학교사를 꿈으로 키우던 동생이다. 그녀는 대학을 다니며 교직이수를 하겠다고 순수 학문 중의 수학을 선택했다. 그러나 교직이수를 뜻대로 하지 못했고 졸업했으며 현재는 신촌의 한 오피스텔에서 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다. 꿈 혹은 목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을 향해 가고 있는 그녀에 대해 적어보려 한다. 그녀를 알기 위해, 그녀에 대한 내 반감을 알기 위해.

 

잦은 이직으로 취업 시장에서 단련이 된 나, 그런 나를 보는 친척들의 시선은 이렇다. 대단하다, 너답다, 어쩜 이래? 안착한 곳이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내 생각과 상관없이)더 그렇게 생각하시는 듯하다. 그리하여 사촌 동생이 취업을 준비하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일종의 지침을 어른들에게 받았다. ‘언니한테 많이 물어봐라고.

 

취업을 하겠다던 시절, 그녀는 내게 쉴 새 없이 메일을 보내왔다. 언니, A회사 어때? B회사는? 처음에는 하나씩 알아보고 답변을 해줬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취업 자문이 이어지면서 느낀 게 있다. 어느 곳에, 무슨 일을 하겠다는 목표의식 없이 그녀는 그저 공고가 난 기업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하고 있었다. 귀찮기도 했다. 인터넷에서 조금만 찾아보면 알 수 있는, 업무에 대한 것, 부서에 대한 정보를 그녀는 물어왔다. 내 입장에서는 진지하게준비하는 취업준비생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겠단다. 이유는 아빠가 대학원에 가는 걸 반대하기 때문이라고. 대학원이 아니라도 여러 대안이 있을 텐데 안일한 선택을, (목표달성 과정과 상관없이)설정하기 쉬운 목표를 선택한 듯 보였다. 공공기관에서 일하면서 느꼈던 것들을 얘기해줬다. 사기업이 오래갈 수 없다고 하지만 일하면서 인정받으면 롱런할 수 있다는 것, 성취감 측면에서 배울 꺼리가 많다는 것, 성장을 도모하려면 젊은(?) 나이에 공공기관은 부적절할 수 있다는 것, 공공기관의 매너리즘에 대해서도.

 

대답은 간단했다. ‘내 성격에는 공공기관이 맞아.’ 능동성이 부족한 자신의 성격을 두고 한 말이었다. 공공기관이 보통 정해진 일을 해서 수동적으로 비춰질 수 있지만 단지 그런 일만 하는 곳은 아니야. 자신이 기획하고 추진하며 성과를 보여야 하는 건 사기업과 다를 바가 없다고 주지시켰다.

 

그래, 네 선택은 존중하마 했다. 문제는 그 이후과정이다. 충청도가 고향인 그녀는 서울로 올라오려는 마음을 여러 번 내비쳤다. 교육 환경을 이유로 내세웠지만 내 눈에는 그저 사대주의를 닮은 서울앓이에 불과했다. 고시원에 터를 잡고 틈틈이 우리 집(친정)으로 들어가 살려고 했다. 친척인에 그것 하나 못해주겠냐 하겠다만,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올해 정년을 맞이해 퇴임을 앞두고 계신 엄마에게 누구를 부양해야 하는 부담이 지워지는 게 싫다. 무엇보다 누군가의 집에 들어가 살면서 누리는자세로 임하는 그녀를 나는 좋게 볼 수 없다.

 

우리 엄마는 외가쪽 큰 딸로 이모들이 명절때면 대부분 우리 집에 모인다. 자연 엄마는 연신 분주하다. 밥을 차리고 치우고 또 밥을 차리고 사이사이 과일과 차를 내가고 잠자리를 봐줘야 하고 하나 있는 화장실은 아침마다 전쟁을 치른다. 그런데 우리 집에 머물 때 그녀는 올곳이 손님의 자세로 임했다. 이불을 개는 것도 먹은 밥상을 치우는 것도 그녀가 아닌 엄마의 일이었다. 예전에는 친구와 놀러와서 하루 밤 묶으며 내 방 장판에 칼질을 해놓기도 했다. 이런 과거 사실들에 비춰봤을 때 그녀가 우리 부모님과 산다는 건, 퇴직을 앞둔 엄마에게 직장보다 더 한 고통이 될 게 뻔했다.

 

그런데 전입신고를 했다고 한다. 내가 알면 길길이 날뛸 것이기에 엄마는 조용히 처리했다고 하셨다. 그냥 이름만 올려두는 거라고. 그래, 이것도 그러마 했다. 그러면, 전입신고까지 했으면, 네가 말하던 서울의 교육환경을 잘 이용해야 했다. 그런데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전입신고 당한(?) 우리 엄마가 그녀에게 교육지원자격 및 교육장 위치 등을 알려줘야 했다. 도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태도의 문제 아닐까. 나는 이 물음에 닿았다. 취업을 하겠다면서 지원하는 회사를 알아보는 것도, 공부를 하겠다면서 공부를 할 학원을 알아보는 것도 남들이 말해야 못 이기는 척 따르는 그 모습에서 갈급함을 찾아볼 수는 없다. 나만의 생각일까?

 

 

(원고지 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