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끝없는 공부/200일 글쓰기

[121일][9월19일] 시댁과 나

 

시댁과 나

 

 

시댁 성묘를 다녀왔다. 경남 김해였다. 첫 성묘때 서로 고단했던 나의 음식준비 때문이었는지 어머님은 더 이상 나에게 음식을 요구하지 않으셨다. 먼저 도착한 우리에게 미션이 떨어졌다. 아버님께서 묘비를 정돈하고 있으라 하셨다. 손에 흙을 묻혀가며 닦고 또 닦았다. 내가 왜,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묘비를.. 하는 생각이 스쳤다.

 

신랑의 진중한 자세가 없었다면 나는 순수히 응하지 않았으리라. 물티슈로 닦고 휴지로 광을 내고 음식놓을 자리를 마련했다. 어머님이 준비해오신 음식을 가방에서 꺼내고 아버님이 매번 말씀하시는 차례 지내는 법을 또 들었다. 술을 몇 잔 조상께 올리자 아버님이 당신의 아버님께 술 좋아하시는데 술 많이 못 올려 죄송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 때 어머님이 받아치시길 당신도 술 많이 좋아하니 당신 묘에는 술 자주 올려줄게라고 하셨다.

 

그 말이 내게는 차례자주 지내라로 들렸다면 이건 피해망상일까. 그 와중에 하는 것도 없이 며느리의 입장을 받아칠 준비하는 나 자신을 봤다. 이 마음은 무엇에서 연유한 것일까. 우리나라 결혼에는 불합리한 점이 있다. 최근 결혼 트렌드는 반반이 대세라고 한다. 우리도 그랬다. 둘이 돈은 함께 모아 진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며느리역할을 해야 하는 나는 시댁에 보낼 예단을 고민해야 했고 시댁 눈치를 봐야하는 우리 부모님은 딸 예쁘게 봐주십사 연신 굽신거리셔야 했다. 도대체 왜. 이러 불합리는. 생긴 걸까.

 

결혼을 준비하는 친구들도 꼭 한 번씩 걸리는 지점이 있다. 여자이기 때문에 당연하게 생각되는 이래야 한다는 관습이다. 여자라면 시댁 눈치를 더 봐야하고, 며느리라면 가족들에게 음식을 해 내가야하고, 정상적인 가임기 여성이라면 당장 임신을 해서 손주를 보여드려야 한다. 결혼하고 찾아갔던 시댁 방문 첫날 시할머님은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 며느리는 왜 밥값을 못하느냐!’ 말씀인 즉슨, 왜 아기 소식이 없냐는 거였다.

 

시댁에 오니 시댁에 대한, 결혼문화에 대한, 남녀 역할에 대한 것까지 생각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여차저차 성묘를 마치고 어머님 아버님과 전어회를 먹고 시댁에서 이것저것 선물을 드리고 받고 할머님께 인사를 드리고 집으로 향한다. 내 머릿속 안개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랑은 왕복 8시간의 장거리 운전에 매진하고 있다. 시댁과 나, 이 관계에 대한 물음에는 언제쯤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원고지 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