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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공부/200일 글쓰기

[123일][9월21일] 가사노동과 글 그리고 신랑

 

가사노동과 글 그리고 신랑

 

 

집안일에 대한 언짢음이 우리를 훑고 갔다. 나는 우울하한 기분을 글로 풀었고, 신랑은 냉랭한 나의 눈치를 봤다. 글쓰기 모임에 가니 동조자가 많았다. 나아가 남자(가사에 냉담한)를 함께 비난해주는 분위기였다. 우울함이 떨쳐져 기쁜 와중에 내 반쪽을 내 스스로 욕되게 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다음 날, 그에게 글을 보여줬다. 이런 글을 썼어. 사람들이 읽고 칭찬 많이 해줬어. 신랑 나빴다고 욕해주더라. 슬며시 웃던 그는 어디 한 번 보자며 핸드폰을 빼앗아 갔다. 그는 내 글을 정독했다. 어떠냐는 질문에 슬쩍 웃기만 한다.

 

퇴근하고 오는 길, 밥을 뭐해먹을까 레시피를 알아보고 있는데 라면을 끓여 먹잔다. 몸에도 안좋은 거 왜 먹으려고 하느냐 했더니 오늘은 금요일이니, 분식집 가는 기분을 내고 싶단다. 김치와 고추짱아찌를 꺼내고 사발면에 물을 붓고 만두를 삶았다. 그 어떤 저녁보다 푸짐하고 넉넉하다.

 

내일 시댁에 가기 위해 분주하게 음식을 챙기고 빨래를 돌리는 내게 신랑이 슬며시 다가온다. 자기가 할 테니 앉아서 좀 쉬란다. 그는 원래 잘 도와준다. 아니, 살림에 대해서라면 나보다 일가견이 있다. 하여 내가 쓴 글을 본 그와 나를 모두 아는 사람들은 슬프다고 했다. 잘 도와주고 가정적인 그가 이렇다면, 다른 남자들은 어떻겠느냐가 그들의 이야기.

 

그가 이상하리만치 살림에 손을 댄다. 어제는 조용히 설거지를 해놓더니, 내일 시댁에 갈 때 차에서 먹을 음식을 스스로 준비하기도 한다. 글 때문인가. 글 때문이냐 물으니 그는 또 웃기만 한다. 글 하나에 이렇게 나를 돌봐주는 신랑이 고맙다. 넉넉하고 행복한 밤이다.

 

(원고지 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