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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일][11월15일] 나를 살아있게 하는, 읽고 쓰기 나를 살아있게 하는, 읽고 쓰기 결국 다시 찾았다. 인터넷 브라우저를 열어 블로그 주소를 입력했다. 그간 핸드폰으로 끄적인 글을 보니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생각과 느낌들이 가득하다.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어떤 감정에 취해있던 걸까. 언제나 ‘쓰고 싶은’ 기분에 시달렸지만 그 기분은 고리타분한 변명 – 고단하고 바빴다는 – 앞에서 금방 사라지고 말았다. 주말의 끝자락, 내 몸에 남아있는 감성과 글쓰기 근육을 활성화 시키려 결국 나는 다시 블로그를 찾았다. 시간에 ‘끌려다니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오전 5시, 핸드폰 알람에 쫓기듯 일어난다. 3시간 이상 더 잘 시간이 남아있는 신랑은, 허둥지둥 새벽녘에 준비하는 나를 두고 ‘쿵쾅거리지 말라’고 한다. 쿵쾅쿵쾅 우당탕쿵쾅. 가방을 싸두고 입을 옷을.. 더보기
[143일][10월19일] 양날의 칼이 되는 과학의 본질을 생각하다. 양날의 칼이 되는 과학의 본질을 생각하다. 질소과자가 한 때 이슈였다. 질소로 만든 과자냐고?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질소로 채운 과자 봉지다. 중량의 70%가 과자 내용물이 아닌 질소라 하여 일부 청소년들은 질소과자를 연결해 뗏목을 만들어 한강을 횡단하는 모험을 감행하기도 했다. 그저 과자 중량으로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질소의 효용을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책이 있다. 바로 이다. 두 과학자가 있다. 프리츠 하버(Frits Haber)와 카를 보슈(Carl Bosch). ‘공기로 빵을 만든 과학자’라 불리는 하버는 1904년부터 질소와 수소를 반응시켜 암모니아를 만드는 연구를 시작해 1908년 암모니아 합성 방법을 개발한다. 1909년 화학공업 기업 바스프(BASF)에서 과학자 카를 보슈와 함께 공정 .. 더보기
[142일][10월16일] 사유란 사유란 사유가 없다. 내가 쓴 글 안에 독자적인 해석이나 의견이 들어가지 않은 이유가 ‘사유가 없음’으로 귀결되는 듯하다. 네이버 사전에서 ‘사유’란 대상을 두루 생각하는 일, (철학적으로는)개념, 구성, 판단, 추리 따위를 행하는 인간의 이성 작용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내가 어떤 글에서 써놓은 일들을 ‘생각 없이’ 썼는가에 물음이 닫는다. 반대로, 사유가 있다고 일컬어지는 경우는 다소 진지하면서, 보통(양적으로)의 생각을 벗어날 때를 말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집안일은 여자가 해야 한다는 통념. (남녀차이, 페미니즘, 구시대적 사고방식 등을 떠나) 많이 진보화 됐다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도 가사노동에 대한 여성 부담이 크다. ‘왜 여성이 집안일을 해야 하죠? 남자가 할 수도 있는 거죠.’라고 하는 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