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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담은 책장/북 리뷰

소설 <지하에서 쓴 수기> 도스토옙스끼, 인간의 본질을 논하다.



지하에서 쓴 수기

저자
도스토예프스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옙스끼 지음
출판사
창비 | 2012-10-0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창비세계문학 10권 [지하에서 쓴 수기]는 도스또옙스끼가 출판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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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있다. 곤조, 아집으로 똘똘 뭉친 그는 자신의 전지전능함을 떠벌린다. ‘나는 이들 상류사회의 무리 앞에선 한낱 파리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이 파리는 누구보다 총명하고 누구보다 교양 있고 누구보다 고상하다. (p.88~89)’라고 말하기에 이른다.

 

이 남자는 19세기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또옙스끼다. 몰락해가는 중산층 가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공병사관학교를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문학에만 집중, 사회주의 운동과 관련 사형선고를 받고 10여년간 감옥 생활을 하는데 이 시기를 통해 러시아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고 그는 말한다.

 

<지하에서 쓴 수기>는 그가 맞닥뜨린 인간의 본질을 논한다. 1<지하>에는 글을 쓰고 있는 40대 잉여인간이 등장해 2X2=5라는 자의식의 법칙을 설명한다. 생쥐인간 또는 죄인이라 일컬어지는 타인들은 자신만의 욕구, 심한 변덕, 광기에 근접한 환상에 사로잡혀 유리한 이익에 골몰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인간의 본질이며 그가 말하는 음습한 지하.

 

2부에서는 1부 수기를 쓰면서 떠오른 사건들을 회고한다. 자신을 밀치고 떠난 장교에게 복수하기 위해 몇 년을 골몰한다. 초대받지 않는 동창생들의 모임에 나가 굴욕을 당하고 복수해주겠다며 이를 간다. 그러나 모든 결심은 사창가의 한 여자, 리자에게 헛된 망상과 여러 법칙을 늘어놓고 마치 자신이 그녀를 구원할 수 있는 양 행동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의 구원은 지하에서의 탈출을 의미한다. 그러나 뛰어난 자의식과 독서로 충만하다는 작가 자신이 오히려 더 깊은 지하로 향해 가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리자에게 자신의 추악한 본질을 들키고 변명하는 말에서 드러난다.

 

내가 왜 이런 행동을 했느냐 하면, 여러분이 감히 천착해볼 엄두도 못 냈던 것을, 또는 반쯤 천착해보았던 것을, 그리고 비겁함을 분별력이라 하며 여러분이 자신을 기만하면서 자위해왔던 것을, 끝까지 파헤쳐서 그 속을 뒤집어보기 위해 서였을 뿐이다. (p.212)’

 

책에는 여러분’ ‘신사분들이라는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청자(혹은 독자)가 등장한다. 그러나 나는 지금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 수기를 쓰고 있으며, 독자를 의식하는 듯한 이 수기는 단순히 그렇게 보이기 위해서일 뿐이라는 것을 초지일관 밝혀두고 싶다. (p.69)’에서 드러나듯 온전히 본인을 위한 글이다. 남들을 힐난함으로써 자신이 구원받고 동의를 얻고자 하는 것이 저자의 목적이리라.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악령>, <백치> 등 대작을 쏟아낸 거장의 작품이다. <지하에서 쓴 수기>는 불편하다. 오랜 시간 품어온 걸 급하게 쏟아내는 듯한 태도와 변덕을 부리는 복잡한 사고의 흐름이 그렇다. 하지만 이마저도 지하 세계에서 빠져나오려는 그의 처절한 몸부림으로 해석된다. 세상을 비웃는 것 같지만 자신을 제일 혐오한다는 점, 타인을 구원하려 하지만 정작 본인이 구원받고자 하는 점은 상처받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려는 그만의 방식일지 모른다.

 

나는 내가 러시아의 다수를 대표하는 진짜 인간을 묘사한 첫 번째 사람이라는 데에, 그리고 이 인간의 추악하고 비극적인 측면을 처음으로 드러낸 사람이라는 데에 긍지를 느낀다. 비극은 추악함을 의식하는 데 있다. 고통, 자기 처벌, 더 나은 것을 의식하지만 그것을 성취할 수 없다는 불가능성,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모든 이들에게 있어서 마찬가지일 것이며 따라서 개혁을 하려고 노력할 가치도 없다는 명백한 확신으로 되어 있는 지하실의 비극을 나는 홀로 묘사했다.”

 

<지하에서 쓴 수기>를 두고 저자가 한 말이다. 도스토옙스키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이 책을 통해 그의 근저를 살펴본 기분이다. 그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