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남해금산. 경상도 남해군에 있는 기념물 제18호, 해발 681m의 산이다. 바다를 면하고 있는 이 산에는 불툭 튀어나온 상사바위가 유명하다. 이성계가 왕이 되기를 빌기도 했다는 이 바위에는 특별한 전설이 있다. 주인의 딸을 사랑하다 죽은 돌쇠의 이야기다. 돌쇠는 죽어 뱀이 되어 딸의 방으로 들어간다. 딸의 몸을 친친 감고 풀어주지 않는 뱀을 위해 주인은 꿈에서 본 노인의 말대로 금산에서 제일 높은 벼랑으로 딸을 데리고 가 굿을 한다. 한참을 버티던 뱀은 결국 벼랑 아래로 떨어져 죽는다. 이성복 시인은 그 돌쇠의 혼을 본걸까. 시 <남해금산>에는 ‘돌 속에 묻힌 여자’와 ‘혼자 남긴 자’의 사랑이 읽힌다.
시에서(시인은) ‘치욕은 달다’(p18)고 말한다. 돌쇠는 주인의 딸을 사랑했다. 남자로서 사랑하는 여인을 바라보는 마음은 달콤했으리라. 하지만 주인과 머슴이라는 벽 안에서 내뻗어진 굴레는 치욕으로 다가왔을 터. 그렇기 때문에 달던 치욕은 ‘꿈꾸는 일이 목 조르는 일(p23)‘이 되었던 것 아닐까. 돌쇠와 주인 딸은 이런 벽을 넘어 ‘카타콤’(p15)에 닿고 싶었을지 모른다. 공기가 더럽고 아프지만 기계처럼 튼튼한 기억의, 사랑의 기억이 가득한 카타콤. 이곳은 높은 나무 잎새들이 떨리고 늙은 여인들은 집에서 울다가 잠이 드는 곳과 먼 ‘약속의 땅’(p24)이리라.
<남해금산>에는 90여편의 시가 실려있다. ‘철저히 카프카적이고 니체적이며 보들레르적’이라고 평해지는 이성복 시인은 그 안에 개별적인 시들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그 유기성은 두 가지 층위를 드러낸다. 애닲은 사랑과 공포적으로 다가오는 가족의 이야기다. 애닮은 사랑이 돌쇠와 주인딸의 이야기라면, 가족의 이야기는 ‘낮게 소리쳤다 치욕이야, 오빠, 치욕이야! 내가 몸 비틀면 누이는 날아가버렸다’(p20)와 ‘아버지, 거짓말같이, 아버지....(p26)’에서 볼 수 있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남해금산>을 두고 ‘이성복적 공간에서 이성복적 풍경이라 부를 수 있는 것들을 구성했다’라고 했다. 이성복 시인의 기억 속에 있는 어떤 감정들의 풍경이 거칠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만의 해석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그는 강조한다. 행간에 숨은 문장, 단어에 놓은 여러 의미. ‘시’를 대할 때 꼭 찾아야 한단다.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시가 심상이라는 것, 작가의 일생을 투영한다는 것을 배워왔기 때문 아닐까. 이성복 시는 알 듯 모를듯한 장면들을 많이 보여준다. 이것이 문학평론가 김현이 말하는 이성복적 공간일 터. 나는 그 안에서 돌쇠와 주인딸의 슬픈 사랑이야기, 감히 물어볼 수 없는 가족사를 느낀다. 어렵게 보이는 시가 내 안에서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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