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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담은 책장/북 리뷰

에세이<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 사고의 근원을 흔드는, 그래서 무서운 이야기



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

저자
해릴린 루소 지음
출판사
책세상 | 2015-04-15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의 놀라움에 대하여 장애인 페미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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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한 사람은 불행한가요? 가출하지 않고 집에 있는 사람이 반드시 행복한가요? 가출 청소년들에게 왜 집에 돌아가라고만 하나요? 혹시 집보다 길이 더 안전해서 나왔을 거란 생각은 해보셨나요? 무엇을 근거로 한 사람의 선택, 집을 나온 선택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가출 청소년들의 자립을 돕는 곳에서 일하는 분이 말씀하셨다. /불행의 잣대, 그 학습된 기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나를 돌아보게 하는 질문들 속에, 집에서 나왔으니 당연히 위험할 것이고 자연스레 어렵고 험한(혹은 나쁜) 길로 빠지리라 예상했던, 고지식하고 뻔한 사고를 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됐다.

 

내 사고는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가출 청소년들에 관한 질문들과 어우러져 내 사고의 근원을 되짚어 보게 한 책이 있다. 해릴린 루소의 <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 1946년 생으로 미국의 장애인 인권 운동가이자 여성 운동가, 심리 치료사, 작가, 화가인 저자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장애와 여성, 보편적 사고로 나쁜조건을 갖췄다고 볼 수 있는 저자는 자신의 일생을 관통한 장애를 차분하게 설명한다. 그 안에는 여러 가지가 녹아있다. ‘뭐가 잘못돼 장애를 갖게 된 건지묻는 무지한 사람들, 육체적 장애를 거부한 자신과 가족, 거울 속의 자신을 똑바로 보기까지의 여정,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기까지의 고단함, 나아가 장애를 받아들이고 수용하게 된 데까지의 오색찬란한 감정의 결까지. 하여 이 책은 한 사람을 아우르는 물적, 영적인 것들을 모두 설명하고 있어 언뜻 자서전을 보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해릴린의 생각 중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장애에 대한 인식 변화다. 부정하고 감추기에 급급했던 장애를 해릴린은 심리치료사를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장애를 인정하기 꺼렸던 주된 이유가 장애 자체가 아니라 장애에 대한 내 태도에 있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내 태도를 어떻게 고칠 것인가?(p24)’ 태도. 자신을 대단하다고 하지 말라는 저자를, 그래도 당신은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 바로 여기 존재한다.

 

인간은 모두 장애를 갖고 있다. 저자와 같은 육체적 장애일 수도, 학벌, 취업, 직장, 돈에 대한 비교우위, 피해의식 하물며 정치이슈에 대한 무조건적 비판과 같은 정신적 장애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삶의 결을 선명하게하고 자신을 분명하게 밝히는 단초가 된다는 점에서 누구나 자신의 열등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실천은 전무하기 마련. 그렇기 때문에 해릴린이 장애를 이해하기 위해 태도를 문제 삼는 부분에 우리가 집중해야 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나는 가출청소년들이 왜 불행할거라고 생각했을까? 내가 가출을 하지 않아서? 행복하니까? 아니, 그보다 미디어의 영향이 컸으리라 짐작한다. 가출한 사람을 알지도, 내가 경험해보지도 못했으니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여러 시사 프로에서 가출한 청소년들이 거리에서 여러 폭력에 노출되는 걸 수없이 봐왔다. 그렇다면 또 이런 물음에 닿는다. 나는 왜 미디어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했던 걸까. 정부의 정책일 수도, 비난하고 싶지 않은 내 귀차니즘에 기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해릴린과 가출 청소년은, 삶에 대한, 여러 가지를, 내 태도를 자꾸 되짚어보게 한다. 내가 믿어왔던 보편적 기준들이, 사실은 나만의 착각이었음을, 학습된 결과물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삶의 뿌리를 흔든다는 측면에서 <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는 그래서 무서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