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의심이라는 말이 있다. 보고, 들은 일을 그저 믿기보다 개연성을 따져가며 이면의 숨은 뜻을 한 번 더 따져본다는 의미로 쓰인다. 여기 끊임없이 의심해야 하는 작품이 있다. <셜록 홈즈 : 모리어티의 죽음>이다.
홈즈와 모리어티가 죽었다는 소식이 대대적으로 보도된다. 영국 최고의 탐정 셜록홈즈와 그의 숙적 모리어티다. 그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왜 그곳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라이헨바흐 폭포에서 발견된 모리어티의 시체를 통해 둘 간의 우격다짐이 있었으리라 미루어 짐작할 뿐. 여기서부터 합리적 의심이 시작된다.
사건 현장에 두 명의 주인공이 들이닥친다. 프레더릭 체이스 그리고 애설니 존스다. 체이스는 미국 뉴욕의 핑커턴 탐정 사무소의 수속 탐정이다. 애설니 존스는 영국 경찰 지휘 본부인 런던 경시청 소속 경감이다. 기존의 홈즈 시리즈가 왓슨 박사의 시선으로 이뤄졌다면 이번 책은 이 두 명의 주인공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편지가 발견된다. 첫 번째 실마리다. 복잡다단한 내용이 암호화 돼있다. 카페로 간다. 꼬마 아이를 만난다. 저택으로 간다. 살인이 발생한다. 런던 경시청으로 향한다. 이번엔 이발소로 간다. 서기관을 만난다. 정육시장으로도 간다. 캄캄한 어둠.
체이스는 미국 최고의 악당 클래런스 데버루가 모리어티 교수와 연관되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해 유럽으로 넘어온다. 반면, 존스가 모리어티의 사건 현장으로 온 이유는 짐작할 수 없다. 그저 홈즈의 추종자로서 홈즈의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왔다고 추측할 뿐이다.
400페이지가 넘는 내용이다. 그 안에는 단서와 추론, 음모와 전략이 있다. 홈즈와 왓슨은 등장하지 않지만 그들의 사건 해결 방식과 많이 닮아있다. 전작과의 연결성을 고려한 구성이리라. 새로운 주인공들은 홈즈-왓슨 콤비 못지않은 활약을 한다. 특히, 주목할건 존스다. 홈즈 따라잡기가 생애 목표였던 그가 홈즈와 비등한, 어찌보면 홈즈를 뛰어넘었다고 할 수 있는 추리를 해내기 때문이다.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몰입도 높은 영화를 본 느낌이다. 여름과 어울리는 스릴러 한 편이다. 악당이 있어 잔혹하고 살인이 있어 끔찍하다. 그러나 합리적 의심으로 매 장면을 따라가다 보면 깨달음에 무릎을 탁 치는 순간이 발생한다. 그 후, 나의 합리성과 작가의 구성력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앤터니 호로비츠의 작품이다. 영국에서 올해의 작가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고 코난도일재단에서도 인정한 명실상부 홈즈 대표 작가다. 코난 도일이 홈즈 시리즈를 끝내기 위해 등장시킨 인물이 모리어티였다. <셜록홈즈 : 모리어티의 죽음>에서 그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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