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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세상/영화

한국영화 <설국열차(Snowpiercer, 2013)> 폐쇄된 생태계



설국열차 (2013)

Snowpiercer 
7
감독
봉준호
출연
크리스 에반스, 송강호, 에드 해리스, 존 허트, 틸다 스윈튼
정보
SF, 액션, 드라마 | 한국, 미국, 프랑스 | 126 분 | 2013-08-01



본 영화의 대항마라는 [더테러라이브]를 너무 괜찮게 봤다. 또 개봉 전부터 13년도 하반기 기대작이라는 소문이 자자했기 때문에 기대가 컸다. 그랬던 영화 [설국열차]에 대한 나의 감상은 세 단어로 요약된다. 패션쇼, 타나토노트, 북극의 눈물.  

 

길쭉한 모델들이 아방가르드한 옷을 걸치고 눈빛과 몸짓으로만 말하는 패션쇼를 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든다. 과연 저 옷들을 평소에 입을 수 있을까? 저 옷들을 사는 사람이 있을까?  실용성 면에서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느낌, 이게 바로 패션쇼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봉준호, 박찬욱, 김지훈 등 소위 말하는 '세계에서 인정하는' 감독들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든다. 작품성이 뭘까? 주제는? 그 장면에서 감독이 말하고자 한건 뭘까? 어딘가 어렵고 복잡하지만 감독들의 명성에 걸맞게 '굉장하다'는 표현을 해야할 것 같다. 하지만 내 머리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시나리오와 결말. 그런 의미에서 [설국열차]는 내게 패션쇼다. 

 

베르나르베르베르의 소설 <타나토노트>는 사후세계를 다룬다. 죽음을 다룬 이야기 중에서 유독 <타나토노트>가 인상적인 것은 '모흐'라는 죽음의 단계에 대한 묘사때문이다. '모흐1'이 영계로 진입하는 문이라면, '모흐2'에서는 어두운 기억과 맞닥드린다. 그리고 성, 본능의 단계들을 지나 당도하는 '모흐7'에서는 후생을 결정할 천사들을 만난다. <타나토노트>에서는 이렇게 '죽음'을 세밀하게 분절해 표현했다. 영화 [설국열차]도 마찬가지다. 기차의 각 칸마다 서로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단백질 블럭을 먹고 거렁벵이처럼 살아야 하는 꼬리칸, 다른 칸은 조리실, 또 다른 칸은 클럽, 또 다른 칸은 호텔, 또 다른 칸은 병원... 즉 각 칸들은 인간 세상의 모습들을 하나씩 표현한다. 주인공이 꼬리칸에서 앞 칸으로 전진할수록 만나는 열차의 각 칸들의 모습은 사후세계로 접어드는 모흐들을 묘사한 <타나토노트>와 닮았다.  

 

예전에 북극의 자연과 원주민의 삶을 통해 지구 온난화의 위험을 알려준 <북극의 눈물>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있었다. 녹아가는 북극에서 살기 위한 동물들의 모습이 매우 생생했는데 그 중 북극곰이 바다코끼리를 기다리는 장면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북극곰이라면 텔레비전으로 봤던 활달한 코카콜라 북극곰이 다였기 때문일까? [설국열차]에도 곰이 등장한다. 주요 장면에 등장하는 곰은 바다코끼리의 갈급함도, 코카콜라의 활달함도 보이질 않는다. 오히려 생명과 따뜻함의 메타포로 등장한다. 눈 위의 북극곰, '동일한 존재'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 참 재밌다.  


요나와 살인마가 등장한다. 존재나 행위의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없는 두 인물이다. 요나의 능력은 설국이 녹아내린 후 인류를 알아볼 수 있는 힘을 주기 위해 감독이 부여한 듯 한데, 끝까지 살아남을만큼의 개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존재했어야 하는 인물이었나란 생각이 든다. 또, butcher - 아군도 죽이므로 - 가 등장하는데, 이름도 알 수 없는 이 인물은 불사신처럼 살아나 공격하고 또 공격하기를 반복한다. 이유도 의미도 없는 살인에 지나지 않아보인다. 남궁민수의 계획을 실현할 시간을 벌게 하기 위해 싸울 적이 필요했다면 이 살인마보다 윌포드가 적합하지 않았을까? 윌포드가 안된다면 윌포드의 비서라도?  


[설국열차]의 시나리오에는 상반된 두 가지 면이 존재한다. 초반의 빠른 호흡 속도와 후반의 루즈함이다. 꼬리칸 사람들이 분노를 느껴 앞으로 나아가기까지의 과정은 여느 스릴러 영화보다 더 현란하고 폭력적이다. 그들의 설움이 전달돼 주인공을 마음속으로 지지하기 까지한다. 반면 후반으로 갈수록 꼬리칸의 실상과 동떨어진 모습을 설명없이 보여주기만 한다. 더 나아가 피날레는 허무하기 까지 하고. 초반의 빠른 호흡을 끝까지 이어갔다면 관객입장에서 숨이 가빴을까? 열차의 줄어드는 혹은 줄어들 속도를 반증하기 위한 장치였을까란 의구심도 들지만, 후반부에 지루함을 느낀 관객으로서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궁금해서 기대가 컸다. 한국의 대표 감독, 봉준호 감독의 디렉션에 헐리웃 배우들이 어떻게 움직였을지 궁금했고 그 사이에서 송강호와 고아성이 존재감을 표현하는 방법도 궁금했다. 궁금증은 해소됐다. 그러나 내용은 어렵다는 생각은 떨칠 수가 없다. 몇 장면과 인물들에 대한 감독의 의도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 마디로 '너무 먼 당신'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별점을 뺐다. '작품성'있다는 영화... 언제쯤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그래도 반전은 꽤 흥미롭다)


- 2013년 8월 4일 0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