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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세상/영화

한국영화 <파수꾼(Bleak Night, 2010)> 유리잔



파수꾼 (2011)

Bleak Night 
9
감독
윤성현
출연
이제훈, 서준영, 박정민, 조성하, 이초희
정보
드라마 | 한국 | 117 분 | 2011-03-03
글쓴이 평점  



국사 시간이었다. 일분단 둘째줄 창가자리에 앉은 나는 훌쩍였다. 무슨 일 있어? 왜 그래? 선생님 목소리 사이로 건네는 친구들의 말이었다. 특별히 슬픈 일이 있진 않았다. 하지만 그 때 내 가슴에는 정체모를 응어리가 있었고 그 날의 국사시간은 유난히 슬펐다. 친구들의 말은 그저 소음같았다. '나 좀 그냥 내버려둬' 고등학교 2학년 때 일이다.

 

청소년기를 겪는 이들의 모습을 다룬 영화는 많다. 주로 기성세대들에 대한 분노, 사회에 대한 반감, 안정적이지 못한 가정사 등으로 보통 대립 구도를 이루는 실체가 명확하다. 그러나 <파수꾼>은 반대 쪽(?)이 드러나지 않는다. 단순히 고등학생들 내면의 움직임에 집중한다.

 

기태(이제훈)가 죽었다. 아들의 죽음에 슬퍼하던 아버지(조성하)는 아들 책상 서랍 속에 있는 사진을 발견한다. 사진 속에는 기태와 동윤(서준영)과 희준(박정민)이 있다. 하지만 학교를 찾아가 겨우 알아낸 사실은 한 아이는 전학을 갔고 한 아이는 장례식장에 오지도 않았다는 것 뿐이다. "난 너를 친구로 생각했던 적이 단 한번도 없다"는 말을 뱉고 희준은 전학을 가고, 동윤은 기태와 - 정확히 어떤 걸 말했고 전달했는지 알 수 없는 - 어떤 이야기를 "했냐?"고 되물으며 육탄전을 벌인다. 그리고 끝내 동윤은 "너만 없어지면 돼"라고 말한다. 

 

감독은 사건 - 이라 부를 수 있을지도 모호하지만 - 에 대해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왜 이렇게 남 신경쓰냐?"는 질문에 돌아온 기태의 무심한 답변에 그가 친구라는 존재를 자신과 어떻게 연결짓는지 추측할 뿐이다. 대신 영화 후반부에 줄곧 등장하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테이크를 통해 기태와 친구들의 마음을 '스스로의 것'처럼 읽을 수 있게 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고등학교 2학년의 국사 시간이 떠올랐다. 우리를 구성하는 것들이 단 하나도 완성되지 않았던 그 시절. 미완성됐기 때문에 아름다울 수 있는 그 때, 그 때 나는 그저 불안하고 불완전한 어떤 마음이 싫었던 것 같다. 기태가 자신의 치부를 무덤덤하게 말하는 것도, 친구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도, 약점을 드러낸 후 마음 속에 생길지 모를 불안한 기운을 미리 차단하기 위한 것 아니었을까.

 

학창시절은 유리잔같다고 한다. 너무 가볍고 약해서 어떻게 깨질지 모른다는 것을 에두른 말일게다. <파수꾼>은 '친구'라는 존재에 대한 가볍고 약한 고등학생들의 마음을 세밀하게 그렸다. 자신의 과거 어떤 기억을 담은걸까? 82년생 젊은 감독이 보여준 표현력은 유리잔 같았다.



- 2012년 2월 7일 0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