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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세상/영화

한국영화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2012> 날랜 혀 전성시대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2012)

Nameless Gangster : Rules of Time 
8.2
감독
윤종빈
출연
최민식, 하정우, 조진웅, 마동석, 곽도원
정보
범죄, 드라마 | 한국 | 133 분 | 2012-02-02
글쓴이 평점  



"80년대 건달들을 표현하기 위해 은갈치 양복을 대량으로 맞췄다고 하던데"

 

영화를 보러가는 길, 누군가 던진 말이었다. 은갈치, 건달, 80년대,,, 친하지 않은 단어들이 늘어선 이 한 문장이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전부였다. 팝콘과 콜라를 손에 들고 극장으로 들어가는 찰나, 하정우의 얼굴이 아로 새겨진 영화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올레~'

 

최익현(최민식)은 세관 공무원이다. 비리를 눈감아 주고 입막음용으로 일정 금액을 용돈으로 챙기는 그렇고 그런 부류의 사람이다. 먹여살릴자식이 가장 적다는 이유로 총대를 메야하는 입장에 처한 최익현에게 어느 날 백색가루가 손에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경주최씨 충렬공파'의 핏줄을 이은 - 언제 나오시려나 노심초사했던 - 최형배(하정우)를 만난다. 익현은 형배의 조직을 등에 업은 익현은 마치 2인자라도 된양 건달들의 세계에서 으쓱대고 공무원 생활을 통해 얻은 '끈'을 빌미로 형배에게 큰 이익을 안겨준다. 이것이 최씨가문 두 인물의 파트너쉽의 시작이자 건달과 평민 사이의 낀 존재, 익현의 또 다른 인생의 시작이다.

 

여기까지가 1막이다. 2막에는 판호가 등장한다. 형배의 아우였으나, 형배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조직을 키운 판호. 익현의 얍쌉한 두뇌 회전에 영역을 점령당한 판호는 형배에게 기세좋게 달려든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쏟아지는 하정우의 명대사 "불 좀 붙여봐라". 은근히 건네는 그 목소리에는 호기로운 판호의 목을 죄어오는 날카로움이 있다. 그 눈빛, 그 목소리, 그 억양. 마지막은 맥주병과 판호 머리가 빚어내는 하얀 거품의 향연이다. 치졸하게 얽혔던 판호와 형배사이에 '돈'과 '이익'을 향한 익현의 또 다른 노림수가 개입된다. 그리하여 가족도 친구도 의리도 없던 '나쁜 놈들'의 세계에서, 판호는 취조실로, 익현은 부아가 치미는 모욕으로, 형배는 옆구리에 깊이 박힌 칼로 관계를 청산하는 듯 했다. "다시는 이 세계에 발 들이지 마십시오, 대부님"라고 형배가 익현에게 말한다.

 

3막이다. 3막의 히어로도 익현이다. 대통령이 선포한 '범죄와의 전쟁'에 발맞춰 검찰은 범죄 조직 소탕으로 의기를 드높인다. 형배와 익현의 무대인 부산도 예외는 아니다. 졸개잃은 판호가 잡혀들어가면서 익현이 조범석 검사에게 체포된다. 형광등 불빛만이 가득한 취조실에서 최익현은 조검사에게 히든 카드를 내민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익현은 형배에게 말한다. "내가 이깄다"

 

거친 건달들의 이야기다. 짝이 됐다가 등에 칼을 꽂는다. 쇠파이프가 날아다니고 거친 욕설들이 난무한다. 서열에 따라 움직이고 맞는다. 복종과 지배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 건달들을 좌지우지 한건 깡패도 아닌, 그렇다고 평민도 아닌, 조검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반달'인 최익현이다. 날랜 입과 지능과 관계없는 잔머리로 족제비처럼 살아남는 최익현이다. 

 

피가 낭자할 것 같은 이 영화에 예상외의 유머가 있다. 때리고 싶을 정도로 밉살스럽다가도 가슴 한켠에 연민이 스미는 익현에 대한 마음이 바로 이 유머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그리고 이 영화에는 포복절도할 만큼의 코미디도 있다. 영화가 개봉하자 애국지사의 이름을 악랄한(?) 주인공에게 붙였다는 이유로 광복회에서 제작사에 항의를 했다고 한다. 또 경주최씨 충렬공파 쪽에서도 해당 가문에 대한 불편한 묘사에 불만을 표했다고 한다. 유재석이 신나게 외치는 한 대목이 떠오른다. 꽁트는 꽁트일 뿐, 오해하지말자~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가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얄미운 최익현을 연기한 최민식, 칼맞아도 멋있는 최형배를 연기한 하정우 때문만은 아닐게다. 이 영화에는 낯익지만 이름은 가물가물한 하지만 꽤 괜찮다고 생각해왔던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 첫번째는 조범석 검사를 연기한 곽도원이다. 두번째는 뽀글이머리, 185cm, 98kg의 건장함을 과시한 김판호 역의 조진웅이다. 이 분은 암만봐도 너무 괜찮다. 마지막은 박병은이다. 영화를 같이 본 일행 중 그 누구도 이 사람을 기억하지 못했고 심지어 영화 소개글에서도 우정출연 코너에 밀려있지만 난 이 분을 기억했고 찾아냈다. 여리여리한 외모에 섬뜩한 눈빛으로 살기를 표현했던 이 배우, <아이들>에서 사이코패스로 나왔던 박병은이다. 이 배우는 최익현의 아들 최주한으로 등장했다.

 

'남성성'을 주제로 삼길 좋아하는 윤종빈 감독다운, 땀 내 나는 수컷들의 이야기지만, 유쾌하고 즐거웠다. 한 마디로 배우들의 연기, 음악, 러닝타임마저 꽉 찬, 배부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범인의 눈을 따라가는 스릴러의 테이크를 담은 마지막 장면은 섬뜩하고 강렬하다. 오랜만에 본 참 괜찮은 영화, 별 네개 반!


- 2012년 2월 12일 2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