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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공부/200일 글쓰기

[136일][10월7일] 글쓰기 욕망을 짚어보다.

 

글쓰기 욕망을 짚어보다.

 

 

소설 <동물농장>, <1984>로 유명한 조지오웰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책이 있다. 그의 산문 29편을 엮은 <나는 왜 쓰는가>이다. 이 안에는 어린 시절의 오웰을 비롯해 경찰로서, 부랑자로서 살아 온 그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는 1,2차 세계 대전을 직접 겪으며 당시의 현실과 사상을 의심했고 극복하려했다. 특히 여러 작품에서 당대의 계급의식을 풍자하는 모습을 자주 드러내는데 어둠의 세계로 침잠하기 보단 체험에 입각한 사실, 작가 특유의 유머와 비유로 나타난다.

 

인도의 아편국 관리의 아들로 태어난 오웰은 영국의 명문 세인트 시프리언스에서 유년기를 보냈는데 그의 글 <정말 정말 좋았지>에서 당시의 작가를 엿볼 수 있다. 절대 권력을 가진 교장 부부의 횡포 속에 매질과 질 낮은 의식주를 견뎌야했던 오웰은 기숙학교의 실상을 해당 글에서 고발한다. 경찰로 활동했던 시절은 <교수형>, <코끼리를 쏘다>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교수형>은 사형집행에 참여한 경찰의 눈으로 사형의 과정을 섬세하게 표현한 글이다. 인위적으로 행해지는 죽음 앞에 무감각한 동료들을 회의적으로 그려 당시 제국주의의 무심함을 처절하게 느끼게 한다. <코끼리를 쏘다>의 경우 자신을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원주민들의 무언의 압박에 못 이겨 코끼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겨야 했던 본인을 드러낸다. 해당 글에서는 식민지 환경에서 지배층 역시 피지배층의 감정적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는 씁쓸함을 표현한다.

 

사회가 어둡고 받아들이기 힘든 지배 사상이 팽배해있다면 조지오웰처럼 글을 쓸 수 있는 걸까. 그는 왜 글을 쓰는 걸까. 작가는 <나는 왜 쓰는가>에서 글쓰기 욕망을 네 가지로 분류한다. 첫째는 순전한 이기심이다. 똑똑해 보이고 싶고 사후에 기억되고 싶어 글을 쓰는 것으로 정치인, 법조인, 성공한 사업가 등 소위 최상층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형태다. 둘째는 미학적 열정이다. 예술가나 여행자의 글쓰기로, 아름다움을 기록해 타인과 나누고 싶은 욕구의 표현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셋째는 역사적 충동. 기자나 작가의 글쓰기 형태로 진실을 밝혀 후세에 전하고자 하는 욕망의 발로라고 한다. 마지막은 정치적 목적에 의한 것이다. 타인의 생각을 바꾸고 세상을 특정한 방향으로 밀고 나가고자 하는 욕망에 기인한 글쓰기가 이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작가는 어떤 글쓰기를 해왔던 걸까?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p.300)” 아마도 그는 정치적 목적에 가장 충실한 글쓰기를 주로 했던 모양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쓴다. 업무용 보고서 혹은 자신만의 일기일 수도 있다. 목적과 종류는 다르지만 모두 쓴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사람들은 왜 글을 쓰는 걸까. 매일 140자 트윗을 올리고 블로그에 포스팅을 한다하더라도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리라. <글쓰기의 최전선>의 은유 작가는 삶에 대한 사유를 통해 자신을 알기위해 쓴다고 했다. 하여 글쓰기란 자신과 삶의 한계를 흔드는 일로 물성을 가진 모든 것에서부터 타인, 타인과 자신의 시간이 남긴 의미까지 되짚어 보며 물음을 던지는 작업이라고 했다. 결국 자신을 내밀하게 보는 것이 곧 글을 쓰게 하는 동력이 된다는 것.

 

글을 읽는 자는 그 글을 읽기 전의 모습으로 절대 돌아갈 수 없다. 마찬가지로 글을 쓰는 자는 쓰기 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다. 덩어리진 감정 혹은 정보 안에서 특정한 무엇을 오롯이 파악하기 위해 분투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글을 쓰고 글로써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기를 욕망한다. 그 욕망의 근원을 조지 오웰을 통해 되짚어 봤다면 과장일까. 글을 쓰고 싶다면, 또는 글을 쓰는 자신을 이해하고 싶다면 꼭 한번 읽어야 할 책이 바로 <나는 왜 쓰는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