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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공부/200일 글쓰기

[134일][10월4일] 들창코에서 스위치가 되기까지

 

 

들창코에서 스위치가 되기까지

 

 

, 들창코! 동물이름 붙이길 좋아하는 어린 시절 동무들은 나를 이렇게 불렀다. 하늘로 솟은 콧구멍, 눈과 눈 사이를 대평원으로 만든 낮은 콧대, 손가락 길이보다 짧은 콧잔등, 날렵하지 못하고 둥그스름한 콧볼이 만들어내는 오묘한 나의 코를 두고 하는 말이다. 들창코! 소리만 들리면 눈을 한껏 치켜떠 째려보고는 주먹질을 했다. 놀림 당하기가 싫었던 나는 들창코라 힘도 멧돼지같다며 그렇게 부른 녀석들을 있는 대로 패서 꼭 피를 보게 했다.

 

 

교복을 입기 시작하면서 들창코는 더 이상 내가 힘으로 제압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겨울 칼바람을 버티려 교복 치마 속에 체육복 바지를 입으면 단정치 못하다고 혼이 났고 여자라면 모름지기 다소곳하게 앉아서 얌전하게 말해야 한다고 배웠다. 같은 학교 남학생들이 들창코라 놀리면서 쑥덕대는 걸 알고 있었지만 더 이상 나는 주먹질을 하지 않았다. 과외를 해주던 친구네 언니는 자신의 얼굴이 빼어나지 않은 걸 능력으로 극복하겠다며 너도 그래야 한다고 내게 파이팅을 외쳐줬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던 즈음, 점을 보고 오신 엄마가 말씀하셨다. ‘우리 수술하자, ?’ 어릴 때부터 유독 콧대가 낮아 여자 얼굴이 이래서 어쩌나 못내 아쉬웠던 엄마는 용하다는 점집에서 콧대를 높여줘야 재물 복이 트이고 운수가 대통할 거라는 소리를 들으셨던 모양이다. 코 뼈 모양이 인생을 어떻게 결정한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그 소리에 기쁘셨던 것 같다.

 

쌍수를 비롯한 각종 성형을 고등학교 졸업선물로 받으며 친구들이 환골탈태를 시작했다. 엄마의 제안과 친구들의 변화는 나도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을 하게했고 재수를 확정하던 날, 나는 압구정동에 있는 이동락 성형외과 수술대에 누웠다.

 

이거 스위치야? 성형 지식이 해박한 여직원들이 단박에 알아보고 내게 묻는다. 그저 콧대를 높이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콧대를 세우는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었다. 일반 플라스틱을 끼워넣는 법, 골반 뼈를 깎아 넣는 법 등. 나는 그 와중에 스탠다드를 선택했고 추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스탠다드는 플라스틱과는 또 다른 인공 보형물을 삽입하는 방법이다. 시간이 흘러 코 주변의 기존 혈관들과 새로 이식된 뼈의 혈관들이 연결돼 원래 내 코인 양 변하는 뼈 삽입술과 달리 플라스틱과 인공 보형물은 결코 생체조직이 될 수 없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피가 통하지 않는다. 하여 술을 먹어 혈관이 확장돼 얼굴이 붉어지면 그 위에 놓인 코는 피를 통과시키지 못하고 새하얀 버튼이 돼버린다. 들창코에서 좀 벗어났나 싶었더니 이제 on/off 스위치가 돼버렸다.

 

수술을 하고 십여년이 흘렀다. 돈을 들여 수술 했지만 연애인처럼 확 바뀔 수 없다는 쓰린 경험을 하게했준 내 코. 생각해보면 콧대를 높여주라 했던 점쟁이의 예언은 내가 죽을 때까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약간의 자신감을 얻었고 (코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밥벌이도 꽤 잘하고 있다. 한 때는 들창코로, 현재는 가끔 스위치로 불리는 코, 나를 가장 나답게 해 주는 내 일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