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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공부/200일 글쓰기

[133일][10월3일] 건강하고 싶다.

 

 

건강하고 싶다.

 

 

사방이 TV로 둘러싸인 캄캄한 수술실. 푸른색 마스크에 수술 장갑을 낀 의사들이 몇 명인지도 모를 만큼 서있다. 그들의 눈동자가 하나같이 나를 내려다본다. 하나, , . 몇 까지 셌는지도 모르겠는데 내 의지와 상관없이 수 세기를 멈춰야했고 눈을 떴을 때는 병원 침실이었다. 병원에 있는 동안 한 무리의 의사들이 내 병실에 올 때마다 옷을 홀딱 벗고 그들 앞에서 빙그르르 돌아야했고 맨 앞에 선 우두머리 의사는 앞으로 또 벗겨놓고 이런 거시키면 안한다고 하라며 웃었다. 차갑고 무서웠던 수술실 기억, 기분 나쁜 우두머리 의사, 몸에 남은 수술 흔적과 어울리지 않게 사는 동안 전혀 궁금하지 않던 5살 때 겪었던 수술 경험에 대해 나는 꽤 시간이 흐른 후 듣게 되었다. 선천성 심장 판막증이라고 했다.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요가를 시작했다. 학생 대상으로 저렴하게 해주는 요가학원이 학교 앞에 생긴데다가 스포츠과학부가 A를 휩쓴다는 요가수업에 덜컥 신청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오전 5:30에 일어나 눈곱만 떼고 6시 요가수업을 들으며 4년을 보냈다. 요가에서 시작한 묻지마 수강신청은 스노우보딩, 수영, 골프 등으로 매 학기 이어졌다. 학점은 매번 참패였다.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친구들은 굳이 왜 그 과목을 듣는지 물었고 나는 건강도 챙기고 학점도 따면 12조 아니겠냐 너스레를 떨었다.

 

사실 나는 건강하고싶었다. 매우, 무척, 건강하고 싶었다. 건강하지 않으면, 쓰러질 것 같았고, 쓰러지고 나면, 학교도 못 다니고, 연애도 못 하고, 더불어 나를 내려다보는 온기 없는 여러 눈동자들을 또 응시해야 할 것 같았다. 또 그들 앞에서 알 수 없는 부끄러움에 시달리며 빙그르르 돌아야 할 것도 같았다.

 

회사에 다니면서 건강에 대한 욕망이 더 커졌다. 거의 매일하는 철야에 동료들이 거품을 입에 물고 쓰러졌다. 구급차가 오면 잠깐 소란스러울 뿐 남은 이들의 관심사는 오직 업무 공백. 사람이 픽픽 쓰러져 나갈 때마다 대체인력을 또 어떻게 구하냐는 곡소리가 났다. 병원에만 수술대가 있는 건 아니구나 싶었다.

 

일이 바빠지면서 요가를 쉬었고 살이 불었으며 얼굴에서도 예전만큼 웃음이 만발하지도 않는다. 작은 일에도 화를 내고 회사에서는 불평, 불만을 잔뜩 늘어놓기 일쑤다. 마음의 병에는 쓸 약도 없다고 한다. 문제는 마음의 병이 만병의 근원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