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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세상/영화

한국영화 <참을 수 없는(Secret romance, 2010)> 이 세상의 모습



참을 수 없는. (2010)

Secret romance 
7.9
감독
권칠인
출연
추자현, 정찬, 김흥수, 한수연, 박성택
정보
로맨스/멜로, 드라마 | 한국 | 110 분 | 2010-10-21
글쓴이 평점  




세상에 참을 수 없는 일이 과연 몇 가지나 있을까. 사실 참을 수 있는 일보다 없는 일이 더 많을 듯도 하다. 어쨌든 그 수를 막론하고 가장 해결하고 싶지만 그게 잘 안되서 참기 힘들지만 반드시 참아야 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 아닐까 싶다.

 

두 여자 주인공은 세상에서 만나는 딱 두 부류의 여성을 대표한 것 처럼 보인다. 작가를 꿈꾸는 출판사 직원 지흔. 폭탄주를 즐기며 입에 걸레를 문 듯 걸걸한 욕을 마음껏 구사하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애가 없다'는 이유로 출판사에서 제일 먼저 짤리고 7년 연애한 남친마저 뜨뜨 미지근하다. 술김에 놀린 술병 덕에 말 그대로 알거지가 된다. 경린은 그야말로 딱 - 소위 말하는 현모양처 - 아내이다. 남편의 아침상을 차리고 넥타이를 정갈하게 매주며 후세 양성에 힘쓴다. 잘 나가는 남편 덕에 편안하고 안정된 삶을 살지만 반복의 지겨움을 느낀다.

 

이 두 여성의 삶은 두 남자의 등장으로 복잡해진다. 이 시점에서 약간 짜증이 난다. [싱글즈] [뜨거운 것이 좋아] 등의 작품을 통해 지속적으로 여성 이야기를 다루고자하는 권칠인 감독의 의도는 매우 높이 사나 그가 여성을 말하는 방식은 지극히 - 개인적으로 -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리고 와닿지 않는다! 항상 여자의 삶의 방향성은 '남자' 혹은 '아이'에 의해 결정된다.(출판사 권고사직 사유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주체적'으로 뭔가를 이루고 꾸미고 변화하는 '여성'의 모습도 결국 '남자'라는 테두리 안에 있어야 의미가 있다고 여기는 걸까?

 

여튼 이 영화에서도 경린은 남자로 인해 안정궤도에 있던 삶을 뿌리채 흔든다. 그리고 이것이 주인공 네 명의 삶을 바꾸는 시발점이 된다. 서로 실타래처럼 얽힌 관계는 '이제 행복하지?'라는 지흔의 질문과 '좋아보이는 미소'를 짓는 경린의 대답으로 마무리된다. 파국으로 치닫을 줄 알았던 영화가 의외로 소소한 해피엔딩으로 끝나서 김이 새기도 한다. 여기서 잠깐, 꽂힌 대사를 한번 살펴보자.

 

싫으면 싫고 좋으면 좋은 뭐든지 확실한 지흔에게 명원이 '지흔씨는 참 열심히 사는 것 같아요.'라는 말을 한다. 이에 대한 지흔의 대답. "열심히 사는 거 자랑 아니예요, 열심히 안 살아도 잘 사는게 자랑이지." 그래, 맞다. 열심히 하지 않아도 잘 산다는 거. 뭔가 밑도 끝도 없이 대박을 꿈꾸는 철부지의 희망사항 같지만 더럽고 치사해도 세상에 이런 일은 다반사로 일어난다. 열심히해도 안될 때가 있고 노력하지 않았는데 어쩌다 갑자기 타이밍이라는 이름으로 뭔가가 뚝 떨어질 때. 사랑도 연애도 결혼도 그런건가? '열심히 하지 않아도 잘 하면 좋은' 그런거.


명원과 게임 후 지흔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나 하나만 입 다물면 모두 다 행복해 지는 건가." 얼마 전, 친구에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내가 입 열면 한 둘 다치는게 아냐." 역치가 낮은 까닭에 나는 안 봐도 될걸 봤고 안 들어도 될걸 들었고 몰라도 될걸 알았다. 뭐,,, 내가 알고 있는 사실보다 더 어마어마한 일들이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건 엄청나게 불편한 진실이다. 그리고 그런 사실들은 꼭 민감도 높은 몇 사람에게 몰리는 경향이 있다. 당사자들의 번잡한 마음도 모르면서. 바로 나처럼! 지흔도 마찬가지. 크~ 고달픈 인생이여~

 

'참을 수 없다'는 평이 대부분이라 정말 기대없이 본 영화였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작가적 삶'을 사는 지흔의 모습을 통해 반면교사 삼을 수 있고 남녀관계의 정점으로 점철되는 결혼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어 매우 흡족한 영화였다. 게다가 마음에 드는 대사도 많았던,,,,,,. 김흥수의 야생마 눈빛과 추자현의 자유로운 모습이 오랜 여운을 남기는 영화 [참을 수 없는.], 난 기꺼이 참을 만 했다. 


- 2010년 12월 30일 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