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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세상/영화

한국영화 <연애의 온도(Very Ordinary Couple, 2012)> 어는점과 끓는점 사이



연애의 온도 (2013)

Very Ordinary Couple 
7.8
감독
노덕
출연
이민기, 김민희, 라미란, 최무성, 김강현
정보
로맨스/멜로 | 한국 | 112 분 | 2013-03-21
글쓴이 평점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이라는 말이 있다필수적이지는 않지만 해당 요소가 존재한다면 삶의 질이 나아질 수 있다는, 나아가 때에 따라서는 급격하게 향상될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는 표현이다. 한 때 내게는 연애가 그랬다. 학창시절, 그저 남자가 좀 많은 학교에 다녀 다양한 부류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음을 알던 시절, 그래, 그 때 그러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냐 묻는다면 - 좁아진 인간관계를 차치하더라도 - 연애는 내게 필수불가결한 요소라 답하리라.  

  

동희(이민기)와 정(김민희)은 사내연애를 한다. 그것도 은행에서. 싸우다 헤어지고 만나기를 반복하는 그들에게는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오묘함이 있다. 동희에게 다른 여자가 생긴듯하면 정이는 동희로 빙의해 새 여친구와 채팅을 나누는 과감함을 보인다. 정이 다른 남자와 사이좋게 대화라도 하면, 동희는 그 남자 앞에서 정이를 망신주는 대담함도 보인다. 내가 줬던 그 물건 돌려달라는 말로 으르렁거리지만 그가 잘 되고, 그녀가 잘 지내는 모습을 보면 이상하게 배가 아프다. 사랑일까. 알 수 없다. 

 

그들의 오묘한 감정은 직장 워크샵에서 절정에 달한다. 정이와 잘 지내고 있다는 한 차장이 정이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사람들에게 자랑삼아 보여주고 다닌다는 것. 동희는 자신이 그녀의 애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기도 전에, 차장을 혼쭐내준다. 동희도 알 수 없는 자신의 반응. 네가 뭔데 그렇게 하냐는 정이의 모진 응답이 돌아온다. 이것도 알 수 없다. 사랑인지 미움인지.  

 

직장 동료들 앞에서 망나니 짓을 하고 머뭇거리는 발길 속에 동희와 정이는 서로에게 '또 다시' 이끌린다. 함께 집으로 가는 길, 알 수 없는 오묘함에 휩싸인다. 처음같은 설레임, 잃었던 누군가를 찾은 안도감, 다시 함께라는 행복감이 혼재된 감정 말이다.  

 

문제는 그 전과 다름없으리라 여겼던 데이트 현장에서 드러난다. 불안함. 밖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둘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굳이 빗속을 해치고 놀이공원으로 향한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이벤트에 당첨돼 쓰려했던 놀이공원 입장권은 기간만료. 우산을 쓰고 기구를 탄다. 카메라의 스~마일 음성이 무색하게 떫떠름한 표정으로 인증샷을 남긴다. 아침일찍 일어나 정이가 만들어온 도시락을 먹는다. 불안함. 답답함. 서운함. 또 다른 오묘함 속에 정이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바로 여기다. <연애의 온도>를 나타내고자 하는 감독의 세밀함이 돋보이는, 그래서 이 영화를 봐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 앞서 말했듯 하면 좋고 안해도 그만인게 연애라 했다하지만 그 연애가 '처음'일 때는 설레임으로 가득하지만, '다시 시작한 연애'일 때는 아슬아슬함과 안간힘이라는 감정으로 드러난다. 서로 잘 아니까. 변하지 않을테니까. 변하지 않을 것을 알고있으니까. 그래서 위태롭고 힘들다. 동희와 정이에게는 그 지점이 바로 놀이공원의 데이트 였다.   

  

우리 연애는 몇 도일까라는 질문에 끓는점 넘어서 이미 수증기지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헤어진 적이 없다는 점, 눈치를 보지 않는 다는 점(나만 그럴지도 모르지만), 다른 사랑을 꿈꾸지 않는다는 점(역시 나만 그럴지도 모르지만)에서 그의 답이 맞을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희와 정이의 온도가 이해가 되는 건,수증기였던 사랑이 물을 거쳐 어름으로 변하는 순간을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 2013년 4월 15일 1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