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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세상/영화

스페인영화 <줄리아의 눈(Los ojos de Julia, Julia's Eyes, 2011)> 동공에 응축된 고통, 두려움, 고독



줄리아의 눈 (2011)

Julia's Eyes 
8.4
감독
기옘 모랄레스
출연
벨렌 루에다, 루이스 호마르, 파블로 데르키, 프란세스크 오렐라, 요안 달마우
정보
스릴러 | 스페인 | 117 분 | 2011-03-31
글쓴이 평점  



리스닝은 전혀 되지 않았다.  두 시간 동안 들을 수 있었던 말은 'por favor'와 'si' 뿐이었다. 네이티브의 속도는 상상 그 이상이었고, 동사 변형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줄리아의 눈]을 통해 얻은 개인적인 교훈이 있다면 '아직 스페인어를 구사하기엔 부족하다'라 할 수 있겠다.

 

참 정직한 영화다. 용두사미, 밑도 끝도 없는 반전으로 마무리 하는 한국형 스릴러에 비해 깔끔하다. 스릴러 답게 컴컴한 장면들이 주를 이루고, 청소년 관람불가답게 피가 낭자 하며, 공포영화답게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음악이 계속된다. 시나리오, 음악, 연기라는 삼 박자가 잘 어우러졌다.

 

언니의 죽음을 추적하는 동생, 줄리아의 이야기다. 언니의 자살에 의심을 품은 줄리아는 남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언니의 죽음을 추적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웃들의 등장,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남편, 줄리아의 말을 믿지 않는 경찰들 속에서 그녀의 노력은 점점 진실에 가까워진다.

 

[죠스]에 나왔을 법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옆 사람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할 때,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가 눈 앞을 지나간다. 날카로운 음악이 가슴을 후벼판다. 둔탁한 음악은 너무 솔직해서 마음의 준비를 하게 만든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연출 기법은 정말 대단하다. '시각'을 소재로 '인식'과 '의식'의 미묘한 선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카메라의 '터짐'을 통해 '보이지 않는 공포'를 아주 적절하게 보여준다. 이런 방식을 어떻게 생각해 냈을까. 미술학을 공부한 감독이라 가능했던 걸까. 인물을 등장시키는 방법도 예사롭지 않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얼굴을 볼 수 있는 등장 인물은 단 몇 명에 지나지 않는다. 시종일관 뒷 모습과 옆 모습만 보여줌으로써 모든 인물을 의심하게 한다.

 

심리 묘사도 눈여겨 볼 만 하다. 범인을 추적하는 줄리아에게 한 노인이 이런 말을 한다. '그 자는 자신을 숨기는 법을 알고 있어. 눈에 분노가 가득하지만, 공허한 듯 존재가 드러나지 않아.' 영화 후반부에 가면 분노와 공허가 뒤범벅된 자아를 대략 삼분 정도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다. 소름이 끼친다. 고통, 두려움, 외로움, 고독 따위가 동공에 응어리져있. 소외된 사람의 눈에서 느껴지는 negative effect는 바로 이런 것이리라.

 

'원석'같은 영화다.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솔직하다. 스페인어 공부를 하려고 본 영화였는데 '타인에 대한 존중'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가족의 의미'와 같은 따뜻한 교훈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well-made 영화! 앞으로 기옘 모랄레스 감독을 눈여겨 봐야겠다.  


- 2011년 4월 30일 2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