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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세상/영화

한국영화 <만추(Late Autumn, 2011>] 시애틀의 여백 그리고 치유



만추 (2011)

Late Autumn 
6.8
감독
김태용
출연
탕웨이, 현빈, 김준성, 김서라, 박미현
정보
로맨스/멜로 | 한국, 미국, 홍콩 | 113 분 | 2011-02-17
글쓴이 평점  



잔뜩 멋을 내고 좋아하는 사람과 비싼 레스토랑에서 칼질을 하고 있어도 마음이 헛헛한 날이 있다.

기쁨 혹은 슬픔이라는 감정없이 '행복해야해'라는 의무감에 값싼 미소를 보내는 그런 날.

 


찰나의 시간일까? 영겁의 시간일까? 예전과 다른 사람들의 모습, 어머니가 남긴 집, 잘못 쓰여진 묘비명 그리고 레스토랑. 돌맹이가 수면에 닿으면 파동이라도 만들텐데, 사람들의 모습은 감정에 불구가 되어버린 애나를 흔들어 놓지 못한다. "난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요." 애나, 그녀는 '혼자'다.

 

멋진 옷과 악세사리로 치장해본다. 7년의 시간을 그리고 자신의 삶을 그렇게라도 보상받고 싶었으리라. 그러나 수감번호와 위치를 묻는 전화벨에 거짓된 화려함은 순식간에 빛을 잃었다. 晩秋. 푸르름에서 회색으로 변해가는 시절, 돌아갈 곳이 없는 애나는 훈을 만난다. "Do you want to me?" 헛헛함을 그렇게 잊으려 애쓴다.

 

"그저 함께 얘기를 나눴을 뿐이예요" 많은 사람들의 공허함을 채워줬던 훈의 말이다. 범버카에서 바라본 커플을 통해 애나는 점차 마음의 벽을 허물고, 그리고 훈의 '하오' '화이'의 장난스러움, '당신이 기다리지 않을 거란걸 알아요.'의 여유로움으로 가장 밑에있던 감정들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결국 애나는 소리친다. "왜 그 사람의 포크를 사용했어요!" 사랑의 배신이 아프다는 걸, 자신은 많이 외롭다는 걸 그리고 힘들다는 걸, 포문을 열면 쏟아지는 물처럼 쏟아낸다.

 

감정 중 가장 잔인한 것은 자신의 침잠을 허락하는 '즐기는(혹은 당연시여기는) 고독'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만추]는 해피엔딩이다. 마지막 장면은 애나 스스로 제한했던 '고독'이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으로 변했다는 걸 증명하니까. "우리 여기서 다시 만나요."라는 약속은 지켜졌다.  


영화를 보기 전, '어떻게 탕웨이와 현빈을 캐스팅 할 생각을 했을까?' 했다. 마음의 불구인 애나와 마음을 나누고 싶은 사람들을 달래주는 훈. 영화를 보고나니, 훈과 애나를 이렇게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배우들이 또 있을까 싶다. 김태용이라는 감독, 대단하다!

 

[만추]는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많은 영화인들의 찬사를 받았지만 흥행성에 대한 논란으로 개봉 되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지금 관객들에게 선을 보이는 건 분명 '현빈 신드롬'이 한 몫 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배급사와 관계자들이 괘씸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 [만추]는 꼭 봐야 할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화려한 액션이나 슬픈 감동을 기대한다면 이 영화가 지루하겠지만 처절한 외로움이나 고독감을 느껴봤다면, 그래서 시종일관 먹먹하다는게 어떤 것인지 안다면, 이 영화는 감히 '최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남녀 사이의 사랑보다 '사람으로 인한 상처를 사람으로 치유하는 감정의 회복'을 얘기하는 영화 [만추]. 아, 추가 감상평 한 가지 더[만추]에서의 현빈은 <시크릿 가든> 주원이보다 근사하고 <그들이 사는 세상> 지오보다 더 섬세하다. 그리고 탕웨이는 더더더 대단하다. 



- 2011년 2월 20일 02:16 




3년 전에 내가 이런 리뷰를 썼었구나.

2014년, 만추를 통해 인연을 맺은 김태용 감독과 탕웨이는 결혼을 한다고 한다.

찰나의 시간.

그 덧없음.


- 2014년 8월 23일 2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