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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공부/100일 글쓰기

[83일][8월8일]어른이라고 하기엔 아직 이르다.


어른이라고 하기엔 아직 이르다.


 

<서른 살엔 미처 몰랐던 것들,,,> 지난 나를 돌아보며 하나부터 열까지 따지고 분석하던 내게 이 책의 제목은 좀 당황스러웠다. 나중에 더 큰 어른이 되어도, 그 때에도, 후회되는 것들이 있다는 말인가? 연륜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지 않는 그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사람이란 언제, 어디서나 '고민'이란 것을 한다지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사실을 끄집어 낸 책 제목이, 조금 슬펐다.

 

저자는 책과 관계된 일을 하면 좋을 것 같다는 막연한 바람으로 출판계에 입문했다. 그러다 문득 '나를 위한 좋은 생각'을 해보자는 마음에 오랜 시간 몸 담았던 회사를 그만두고 자신의 회사를 연다. 결과적으로 지금, 그녀의 손에 있는 것은 마이너스 통장과 잡지 25권 뿐 이다. 하지만 책 속 그녀는 참 당당하다. 아마 그 십여 년의 시간 동안 두둑한 통장보다 더 값진 깨달음을 얻었고 잡지 25권보다 더 많은 글을 뽑아낼 내공을 쌓았기 때문이리라.

 

<서른 살엔 미처 몰랐던 것들>은 저자 김선경이 40이라는 숫자를 얻기까지 깨지고 아팠던 경험, 반성, 후회들을 담았다. 여행을 가고 싶지만 따지고 생각하느라 못했던 그 때 그 여행, 왜 가지 않았을까?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엄마의 말은 거짓이었다. 세상은 나쁜 사람들의 손을 더 잘 들어주잖아! 불평과 후회는 습관이라는데 한 달에 한번 씩 윈도드레싱(주식투자를 하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는 주식들을 팔아 정리하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스무 살과 서른, 그 젊은 날 나는 나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 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자칫 불평만 쏟아내다 끝내는 그런 따분한 인생은 되지 말자는 다짐이다. 얼마나 따분한가. 멈춰 서는 것, 끝내는 것, 닳지 않고 녹스는 것, 사용하지 않아 빛을 내지 못하는 것. (248p)


나는 자서전 혹은 에세이라는 장르의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저자처럼 살지 않았다간 루저가 될 것 같고 책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고 깨달아야 할 것 같은 강박이 독서하는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다르다. '이렇게 해라. 안 그러면 넌 망할걸!' 이라는 조언이 없고, '나 이렇게 했더니 부자 됐어. 너도 따라해.'라는 자랑이 없다. 담백해서 좋다. 게다가 사람들의 사연을 '체 거르듯' 했다는 저자의 전적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 책에는 마음에 새길 만한 좋은 얘기들이 참 많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은 얘기 한 토막.

 

대학에 가지 않으면 인생이 망하는 줄 알던 시절, 영애라는 친구가 '대학 포기'선언을 했다고 한다. 왜 그러냐는 질문에 대한 그 친구의 대답. "언젠가부터 내가 왜 대학에 가려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들었어. 그런데 이유를 모르겠더라고. 솔직히 공부하는 것도 싫고, 명문대 갈 만큼 성적이 좋은 것도 아니고 말이야. 우리 집 형편 안 좋은 건 너희도 알잖아. 어쨌든 지금은 내가 꼭 대학에 갈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사람들이 말하는 옳은 길이 당연히 지름길이라 생각하던 그 때, 그 친구의 대답에 많은 사람들이 동정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마흔이 된 저자는, 그 친구를 회상하며 말한다. "열아홉 살 우리는 경주용 말처럼 눈가리개를 한 채 앞만 보고 달렸다. 그런데 영애는 눈가리개를 과감하게 벗어 버렸다. 왜 그때 우리는 그 생각을 못했을까. 남과 다른 선택을 하면 왜 불행해질 거라 생각했을까. 꼭 그 길이 아니어도 된다는 것, 그리고 다른 길로 들어서면 그게 인생의 또 다른 기회를 만들어 간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그 영애라는 친구가 신의 직장에 있기 때문에 저자가 이런 말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발자국을 내서 질척거리는 진흙을 밟을 바에, 발목까지 눈이 차더라도 뽀드득 거리는 눈길을 걷는 것이 더 큰 쾌감을 준다는 걸 저자가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난 생각한다. '기회라는 이름으로 주어지는 길, 그 길은 모든 사람들이 인정할 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언젠가 마음이 심란하고 빨리 가는 시간이 원망스러울 땐 처세서나 자기계발서를 읽으라는 조언을 들은 적이 있다. '명색이 책이라면 플롯이란게 있어야지!'라며 코웃음 쳤던 내 편견은 이 책을 통해 깨졌다. 인물은 저자 한 사람, 갈등은 저자의 내적 갈등, 사건은 마흔가지 깨딜음이 전부지만, 난 이 책을 통해 조금 정화가 된 듯 하다. 나아가 내가 마흔 살이 되었을 때 조금은 덜 후회하기를, 조금은 더 행복하기를, 그리고 지금보다 더 큰 진짜 어른이 되있기를 바래본다. 난 어른이라고 하기엔 아직 이르다.


 

(원고지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