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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공부/100일 글쓰기

[78일][8월3일] 게라심 셋

게라심 셋

 

 

'심심해', '일하기 싫다', '집에 가고 싶어' 우리의 대화창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말이다. 대학교 친구 넷이 모인 이 대화창에는 일상의, 생각없이 떠드는 모든 말이 등장한다. 일명 쓰레기통. 회사에서 있었던 억울하고 속상한 일부터, 취업이나 이직, 결혼과 같은 삶의 대소사까지 모두 쏟아내는 곳이다.

 

"오늘 모여!" 네 명 중 한명이 오늘 아침 대화창에서 외쳤다. 순식간에  약속이 잡혔다.  송도에서, 진천에서,  강남에서, 강북에서. 서로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약속에 응했다.

 

저녁 8시 집결. 늦었다면 늦었고 이르다면 이른 그 시각 넷이 모였다. 학창시절부터 함께 추리닝 입고  밤새며 술이나 먹었지 퇴근 후 모인건 처음인듯 했다. 다들 이렇게 예쁘고 아름답다니! 직장인의 고달픔을 서로 공유했지만 직장인 복장을 하고 예쁘게 꾸미고 나온 여자 넷은 그 누구보다 멋졌다.

 

올 연말 결혼이 예정되어 있는 녀석이 입을 열었다. 예비 시댁과의 갈등? 부족한 자금? 예상가능한 일반의 문제가 아니었다. 녀석의 고민은 결혼 준비가 너무 빨리 끝났다는 것. 아직 결혼이 넉달이나 남았는데 청첩장까지 다 찍어 더 이상 할 게 없다고했다. 우리의 조언. '그렇다면 2세를 만들자!'

 

한바탕 신나게 웃고 떠들었다. 결혼을 앞둔 친구, 결혼을 하기 위해 양가에 인사를 다니는 친구,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려 소개팅에서 고군분투하는 친구, 그리고 나. 우리 넷이 모이면 얘기의 절반이 웃음으로 끝난다. 얼굴이 아플 정도로 웃다가 끝난다. 

 

오늘 우리는, 이번주 우리집 방문과 10월 라오스 여행을 계획하고 헤어졌다. 그냥 수다떨자고 만나서 해외여행까지 지르고 말았다. 그런데 너무 신나고 행복하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보다 쉼없이 즐거웠다는 기억이 더 크다. 이런 친구들이 옆에 있어 행복하다. 지난 주말 <이반일리치의 죽음>에서 봤던 게라심. 코치님이 물었다. "게라심과 같은 사람이 있나요?" 나는 세 명이나 있다. 난 복받은 사람이다.

 

(원고지 7.7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