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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일][8월1일] 소설 <이반일리치의 죽음> 발췌, 죽어가는 한 남자 이야기


소설 <이반일리치의 죽음> 죽어가는 한 남자 이야기

 


이반 일리치의 사망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올린 생각은 이 죽음으로 인해 발생할 자신과 동료들의 자리 이동이나 승진에 대한 것이었다. (p.8~9)


사망 소식을 듣고 이들의 마음속에 떠오른 생각은 그로 인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자리 이동과 보직 변경 등에 대한 것만은 아니었다. 아주 가까운 사람의 사망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누구나 그러듯이 그들도 죽은 게 자신이 아니라 바로 그라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p.10)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 지인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가. 추후 어느 날, 나의 '부고'가 사람들에게 당도했을 때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인생의 문제를 심각하지 않고 가볍고 적당하게 대하는 것으로써 이런 불유쾌한 상황을 벗어나려고 했다. (p.32)


결혼생활이라는 것이 삶에 편리함을 주는 점이 일부 없지 않지만 본질적으로 아주 복잡하고 힘겨운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p.33)


오직 연봉 5000의 자리를 얻어내는 것, 그것이 여행의 목적이었다. (p.39)

이런 모든 것들은 이반 일리치가 피고인들을 대하면서 멋지게 수천번도 더 써먹었던 그런 방법이었다. 의사 역시 안경 너머로 자신의 피고를 바라보며 얼핏 명랑하게도 보이는 엄숙한 표정으로 멋지게 자신의 결론을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p.53)

잠시도 쉬지 않고 고통스럽게 찾아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통증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의사의 말과 함께 전과 달리 더욱 심각한 의미로 다가왔다. 이반 일리치는 새삼 무거운 마음으로 통증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되었다. (p.55)


혼자 남은 이반 일리치는 자신의 인생에 독이 스며들었고 이 독이 다른 사람의 인생에도 번져가고 있는데, 그것이 약해지기는커녕 몸속으로 점점 더 깊이 파고들어가고 있다는 뼈아픈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p.62)


아내는 정말 사태를 파악하지 못했다. 그녀는 일어나서 바닥에 넘어진 촛대를 세워 불을 붙여주고 서둘러 방을 나갔다. 손님들을 마저 배웅해야 했다. (p.70)


이반 일리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 중 하나는 거짓이었다. 그가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병이 들었을 뿐이고 안정을 취하고 치료만 잘한다면 곧 아주 좋아질 것이라고 모두들 빤한 거짓말을 해댔다. (p.70)

우린 모두 언젠가는 죽습니다요. 그러니 수고를 좀 못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p.84)

 

그 주변의, 그리고 그 자신의 이런 거짓말이 이반 일리치의 생의 마지막 순간들을 해치는 가장 무서운 독이었다. (p.85)


모두들 떠나자 이반 일리치는 훨씬 편안해진 느낌이었다. 거짓말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 거짓말을 사라졌지만 통증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여전히 계속되는 통증과 여전히 계속되는 공포, 그 모든 것은 더 힘들어질 것도, 더 가벼워질 것도 없었다. 사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p.98)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그는 해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자신이 제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찾아들었지만 그는 자신의 삶은 올바르고 정당했다고 강변하며 그 이상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털어내버렸다. (p.104)

그는 그들에게서 바로 자기 자신을,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삶의 방식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 모든 것이 삶도 죽음도 가려버리는 하나의 무시무시하고 거대한 기만이었다는 점을 분명히 깨달았다. 이런 의식은 육체적 고통을 몇 배, 몇십배 가중시켰다. (p.112)


(원고지 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