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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공부/100일 글쓰기

[46일][7월2일] 목숨의 경중


목숨의 경중


 

중국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태운 버스 추락 사고가 발생했다. 한국 언론은 골든타임을 놓친 중국의 늑장대처를 질타했다. 그리고 공무원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것에 분개하며 그들의 나이와 소속을 일목요연하게 보도했다.

 

격세지감을 느꼈다. 144, 우리는 세월호를 경험했다. 당시에도 비슷한 종류의 보도가 있었다. 정부가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것, 300여명의 생명이 잦아들고 있다는 것이 골자였다. 차이가 있었다면 골든타임을 놓친 주체와 사망자들에 대한 시각이었다.

 

세월호 유족 25명의 이야기를 담은 <금요일엔 돌아오렴>의 매 토막마다 동일하게 드러나는 서글픔이 있다. 언론이 최초 보도했던 ‘전원구조’는 사실이 아니었으며 아이들은 그 이후 몇 시간, 아니 몇 달이 지나도 돌아올 수 없었다는 내용이다. 혹 아이들의 사체가 발견되더라도 정부 측이 혼선을 빚어 유족들을 더 곤혹스럽게 했다고 한다.

 

이에 반해 이번 사고 피해자들에 대한 정보는 구체적이었다. 빠르게 인지하고 대처하는 느낌이었다. 26명의 목숨에 이렇게 철두철미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면, 300여명의 목숨은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대했느냐 묻지 않을 수 없다.

 

30여년 간 목숨에는 경중이 없다 배워왔다. 그런데 중국의 사고와 지난해의 일을 비교해 보면 나라에서 생각하는 목숨에는 분명 경중이 존재했다. 내가 어느 쪽에 속해 있는 지는 중요하지 않다. 생명이라는 원초적 권리를 누군가 높고 낮음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힘이 빠진다.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가장 마지막의 울타리라는 정부가 정말 존재하는지 의심하게 되는 일이다

 

 

(원고지 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