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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세상/영화

영화 <허(her, 2013)> 감정의 진위를 판단할 수 있을까?

 


그녀 (2014)

Her 
8.4
감독
스파이크 존즈
출연
호아킨 피닉스, 스칼렛 요한슨, 루니 마라, 에이미 아담스, 올리비아 와일드
정보
드라마, 로맨스/멜로 | 미국 | 126 분 | 2014-05-22
글쓴이 평점  


 

 

 

 

운영체제(OS)와 사랑에 빠진 한 남자, 테오도르가 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편지를 대신 써주는 대필 작가로 현재 아내와 별거중이다. 별것 없는 어느 날, 한 운영체제를 만난다. 그녀의 이름은 사만다. 예민한 감각으로 자신을 잘 이해해주는 그녀에게, 주인공은 점점 사랑에 빠진다.

 

가당키나 할까? 우리의 하루하루는 수많은 디지털 정보로 차있다. 매일 아침은 앱이 요약 정리해주는 뉴스로 시작 한다. 물 마실 시간, 화장실 갈 시간, 고객과의 미팅, 친구와의 약속, 주요 일정 등을 알려주는 건 핸드폰이다. 사물간의 통신이 가능해지면서 내가 입력해 놓은 나도 기억 못하는 설정으로 핸드폰과 TV, 냉장고가 대화를 한다. 나는 그들이 전해주는 시그널에 반응하려 매일을 살아간다.

 

소프트웨어와의 사랑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 미래의 어느 한 지점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을 기계 혹은 컴퓨터, 소프트웨어에 골몰하게 한다. ‘편리성이라는 환상 속에 어쩌면 우리는 인간성을 상실하고 있는지도 모를 텐데도.

 

영화 <(her)>는 이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주인공의 애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만다에게는, 사실 테오도르처럼 관계를 맺은 상대가 여럿 존재했다. 대화하는 사람이 8천여명, 그 중 사랑에 빠진 사람이 6백여명에 이른다. 결국 자신만의 사만다가 아닌 것을 알게 된 테오도르는 상심에 빠진다.

 

이혼서류에 사인을 하는 날, 아내는 주인공의 변화를 눈치 챈다. ‘만나는 사람 생겼어?’ 주인공은 답한다. ‘나에게 정말 잘해주는 이 사람은 OS...’ 아내는 프로그램과의 데이트는 진짜 사랑이 아니라고 주인공을 비난한다.

 

과연 그럴까? 누가 그걸 규정할 수 있을까? 사람의 마음에 감정이 촉발되었을 때, 그 감정을 만들어 내는 개체가 무엇인지에 따라 그 감정의 진위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걸까? 어떤 기준으로?

 

세상에서 제일 먼 거리는 머리와 가슴사이의 거리라는 말이 있다. 이성을 관장하는 머리와 감정을 아우르는 가슴사이에는, 어떤 합의와 이해로도 좁혀질 수 없는 거리가 있다는 뜻이다. 영화 속 주인공은 그래서 혼란스러워 하는 것이다. 머리에 해당하는 운영체제의 존재’, 가슴에 해당하는 사랑의 감정의 간극 때문이다.

 

빅데이터를 통해 정의된 감정의 분류, 이를 수치적, 기계적으로 이해하는 건 우리가 앱에 기대고 사는 시간처럼 편리함을 줄지 모른다. 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미세한 감정 처음 만나는 - 속에서 답을 얻지 못해 방황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만다가 최소한... 당신의 감정은 진짜라는 거예요.’말하듯 그 혼란스러움도, 방황도 우리를 인간답게 하는 단초임을 알아야 한다.

 

영화 <(her)>는 뮤직비디오를 통해 각종 상을 휩쓸었던 스파이크 존스 감독의 작품이다. 음악과 그 안의 함의를 영상으로 만들어내는 데 힘썼던 감독인 만큼, 사람의 감정과 이를 통한 울림이 큰 영화다. 우리의 감정은 과연 옳은 걸까? 이에 답을 내릴 수 있을까? 그 감정의 근원은 어디서 온 걸까? 기계와 인간의 간극은 과연 존재하는 걸까? 차원을 가로지르는 물음으로 영화의 여운이 길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