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 내장들과 뒤섞여 버려진 아이, 장바티스트 그르누이가 있다. 첫 울음을 울기도 전 엄마로부터 존재를 부정당한 그에게는 무시할 수 없는 특징이 있다. 발달된 후각이다. 사람, 생선, 꽃, 공기, 물, 그는 모든 것을 냄새로 인지한다. 어느 날, 한 소녀가 나타난다. 그녀의 향기에 심취해 살해를 저지르고만 그르누이. 그는 비탄에 빠진다. 소녀의 향기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때 그르누이는 인간의 향기를 ‘창조’하기로 마음먹는다.
소설 <향수>는 그르누이의 일생을 다뤘다. 1부에서 주인공의 탄생과 향수 제조의 기본을 배우며 성장하는 과정을 그렸다면, 2부에서는 세상과 고립된 채 산속에서 살아가는 주인공을 담고 있다. 자연이 만든 냄새의 왕국에 살던 그는 어느 날 큰 충격을 받는다. 온전히 자기 자신의 냄새에 파묻혀 있는데도 어떤 방법으로도 그 냄새를 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존재 가치의 기준이 되는 ‘그것’이 없었던 것이다.
무취의 공포를 깨닫고 그는 ‘사람의 향기’를 만들어 나간다. 그 과정이 3부에 담겨있다. 여성이 한 명씩 살해될수록 그의 향수병은 조금씩 채워진다. 결국 25명을 살해하고 처형대에 올라온 그르누이, 바로 그 때 그가 완성한 궁극의 향기가 뿜어져 나온다. 그를 처형하라고 외치던 관중들은 환락에 빠지고 자신을 찢어 죽이려던 처형관은 무릎을 꿇었다. 그는 웃었다. 작가는 이 웃음을 “완벽하게 승리했음을 과시하는, 그리고 사람들을 철저하게 경멸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비웃음(p.358)”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동시에 주인공은 예상치 못한 감정의 변화를 일으킨다. “그 향기를 사랑 하기는 커녕 증오(p.359)”하게 된 것이다. 향수의 마법이 사형장을 사로잡았지만 이에 걸려들지 않는 단 한사람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 “이 향수를 느낄 수가 없으니 그걸 바르고도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면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일까?(p.374)”
향기의 마법에 포함될 수 없다는 건, 주인공이 세상에 녹아들 수 없음을 의미했다. 즉, 죄로부터 구원받고 사람들로부터 찬양받지만 그것은 ‘향’의 마법에 걸린 것 일 뿐, 만인이 무취인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는 다른 것. 그르누이는 그것을 알았기에 어렵사리 완성한 그 – 껍데기에 불과한 - ‘향’을 증오하게 된 것이다.
산에서 은둔하다가 자신의 냄새가 없음을 깨닫고 세상으로 나온 주인공이었다. 사람의 향을 만들어 자기를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떤 향이 세상을 지배하더라도 자신은 그 속에 포함될 수 없었다. 냄새가 없기에, 자신은 세상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는 공허했을 것이다. 아무도 축복해주지 않고 쓰레기 취급을 받았던 자신. 그 숙명을 벗어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무취’의 자신이 스스로 증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줄곧 아무런 욕심이 없는 소년으로 묘사된다. 오히려 ‘향’ 하나에만 집착하는 모습은 순수한 어린아이 같다. 그르누이는 사랑받고 싶었다. 그 방식이 향을 만드는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향기는 자신을 사랑이라는 존재의 감정으로 이끌어 주지 못했다. 이것이 그가 죽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책의 마지막은 주인공의 결말을 보여준다. 주인공은 마지막 한 방울을 자신에게 쏟아 붓는다. 그토록 갖고 싶었던 향기들은 그르누이를 물들이고 이 향기에 도취된 빈민들은 그에게 하이에나처럼 달려든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 주인공, 울음을 울기 전 생선 내장과 뒤섞여 존재를 알 수 없었던 자신의 탄생을 닮은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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