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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담은 책장/북 리뷰

소설 <왕을 찾아서> 고통스러운 힘의 이야기

 


왕을 찾아서

저자
성석제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4-01-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 발간에 부쳐 한국문학의 ‘새로운 20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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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폴오스터가 있다면, 한국에는 성석제가 있었다. 영으로 시작해 억만으로 끝맺는 소재들의 유기성과 읊조리듯 담담한 어투는 어울리지 않아 더욱 매력적이다. 성석제 이야기의 심연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누군가를 올바름으로 인도할 심오한 성찰이 담겨있다. 

 

화자의 이야기는 286쪽에 압축되어 있다. 스물아홉. 남이 되었다. 나는 남이다. 스물여덟. 남의 발바닥이 되다. 성공. 스물일곱. 남 밑에 들아가다. 실패. 스물여섯. 공무원 시험. 미련. 미련함. 스물다섯. 도피. 떠남. 스물셋. 회피. 기피. 망각. 위선. 소심. 소문. 어물전의 천사.... 열일곱 살. 열세 살. 광자. 무릎베개를 해주고 노래를 불렀다....나는 몸부림을 친다.... 미끈거린다.

 

이름이 두 번정도 언급될까 싶은 주인공이 있다. 그는 마사오의 장래식에 찾아간다. 지역의 우두머리였던 마사오. 이 마시오도 아니고 저 마사오도 아닌, 그저 마사오로서 의미있는 마사오. 어린 '나'에게 마사오는 일종의 경외의 대상이었다. 마사오와 유신조, 조창용 그리고 나와 동시에 태어난 박재천. 이들은 모두 '왕을 찾는' 건달들이다.

 

이름이 두 번정도 언급될까 싶은 주인공이 있다. 그는 광자와 세희를 사랑한다. 마사오 옆에서 '흰 팔'로 등장했던 광자는 장례식에서 다시 만난다. 다른 건달들의 여자였고 모든 소문의 근원이었던 세희는 믿고 싶지 않을 만큼 경멸스러운 박재천의 여자가 된다. 건달들의 제물로써. 세희는 언제난 내 입 속을 멤도는 쓰라린 존재다.

 

286쪽에 드러난 '나'의 방황이 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왕을 찾으려는 건달들의 죽고 죽이는 이야기와 그들의 여자로서 팔고 팔림당하는 여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건달들보다 약간 잘생겼지만 그 여자들을 가질 수 없는 나의 이야기. 열일곱의 사춘기같은 고통스런 이야기. 마사오를 존경에 마지않던 어린 나와 재천은 마사오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인물은 저 혼자 인물로 나서 인물로 살다가 인물로 죽는가? 아니다. 처음부터 인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인물은 우리 각자가 만드는 것이다.(39p)' 그리고 그 존경을 성장통 삼아 재천과 나는 각각의 '인물'로 만들어진다. 재천은 처세라는 고답적인 언어로 점철된 태도로, 비극을 중화시켜 세상은 그렇게 끔찍하지 않다는 무지한 낙천주의 인간으로 자란다. 나는 그저 인간으로 자란다. 재천의 친구인. 마사오를 존경한. 세희를 갖고 싶어하는. 인간.

 

<왕을 찾아서>는 성장소설이다. 한 지역의 권력다툼을 시종일관 그려 자칫 영화 <비열한 거리>를 떠올리게하나, 내게 이 소설은 '나'의 성장소설이다. 권력이 세워지고 무너지고 또 지역을 차지하기 위한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혹은 참여하기도하면서 알아가는 세상의 어둠을그린 성장소설. 그래서 '나'는 이런 말을 하는게 아닐까? '나는 맨 나중에 이중창으로 들은 반말이 아니꼬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도 아니고 기뻐서도 아니고, 저렇게 맹랑한 아이들을 태어나게 하고 여태까지 밥 먹이고 숨 쉬게 하고 키워낸 세상이 한심하고 슬퍼서, 갑자기 외로워져서 얼른 내 친구들이 있는 자리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181p)' 자리로 돌아왔을 때는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길 바라면서,,,

 

그리고 <왕을 찾아서>는 인간의 비린내나는 속을 그대로 알리는 고발소설이기도 하다. 재천의 무지와 약삭빠름이 그를 권력에 앉혀놓듯, 조창용에게 세희를 건내며 '내 물건'의 엉덩이를 토닥이를 건낼 기회를 주는 것이 권력 양도로 표현되는 것처럼. 세상은 날랜 혀와 썪은 힘에 노예가 되었다. 그래서 성석제는 이런 말을 하는 것이리라. '그는 한때 지역의 왕이었다. 그때가 좋았든 나빴든 왕으로 군림했다는 사실 때문에 피지배자들에게 빚을 졌다. 빚쟁이들은 빚을 진 사람이 망하기 직전에 오는 법이다. 빚진 사람이 잘해나갈 때는 조용히 이자나 챙기지 결코 주변에서 얼쩡거리지 않는다. 그러나 망해가는 징조가 보이면 일가족과 친구, 친지를 대동하고 까마귀 떼처럼 몰려들어, 망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일을, 세계를 물어뜯고 쥐어뜯고 갉아서 완벽하게 망친다. 회생 불능으로 만든다.(318p)'

 

우리는 어쩌면 재천처럼, 조창용처럼, 황포처럼 인생을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인물'이 되겠다는 의지 하나로 내 사람을 팔아넘기면서, 내 가족을 제물로 바치면서, 내 생각을 남의 머리에 얹어주면서. 순식간에 빨아들이는 듯한 청조끼를 입은 외팔이 '마사오'를 기다려본다. 진정한 왕이 나타나 이런 내 혼란을 잠재워주길. <왕을 찾아서>는 이런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 만드는, 그런 소설이다.

 

** 기억할 구절 ** 

 

나는 내 인생에 전기를 가져올지도 모르는 모험이 바로 한 발짝 너머에 있음을 직감했고 사진으로만 본 월계사 소나무숲의 황홀한 달빛을 떠올리면서 충동적으로 거기에 몸을 던졌다. 158p

 

처세? 세상 살아가기? 암호 같기도 한 생경하고 고답적인 단어는 재천에게 안 어울리는 것 같다. 175p

 

소문이란 사소한 진실과 커다란 거짓이 뒤범벅되어 있는 탓에,,, 254p

 

그리고 땀을 닦는 동안 내 눈동자 속에 면허증도 없이 자신을 운전하고 들어와 눈도 깜박이지 않고 오래도록 머물러 있었다. 330p

 

나는 손목시계가 아닌데 세상의 시계탑과 시간을 맞출 필요가 있는가. 333p

 

 

- 2011년 7월 11일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