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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세상/영화

한국영화 <늑대소년> 영원할 것 같은 아름다운 사랑



늑대소년 (2012)

8.6
감독
조성희
출연
송중기, 박보영, 이영란, 장영남, 유연석
정보
드라마 | 한국 | 125 분 | 2012-10-31


"고등학교 때 좋아하던 영어 선생님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선생님이 결혼을 한다는 거예요. 너무나 완벽했던 그 선생님의 남편될 사람이 대머리 였어요, 그래서 친구들하고 어린 마음에 얼마나 욕을 했던지,,," 직장 동료의 첫사랑 얘기를 듣다 문득. 송중기가 생각났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차칸남자 강마루 였는지 화가 나면 헐크로 변신하는 늑대소년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때 내 머리 속에 등장한 사람은 항상 해맑고 고운 남자, 송중기였다.

 

할리퀸 소설이지 않을까 했다. '너를 지켜줄께'라는 문구는 백마탄 왕자님이 못난이 여주인공을 엄호할 때 내뱉는 간지러운 대사와 매한가지일 테고, 박보영의 귀여운 청순함은 그 여주인공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늑대 소년이라는 제목도 그러했다. 그냥 늑대라면 차라리 다른 방향으로의 상상이라도 되련만, 늑대와 붙은 '소년', 또 그를 연기하는 사람이 '미소년' 송중기라니, 못난이 주인공 '박보영'과 그를 지켜주는 소년 '송중기', 그래서 할리퀸 소설같겠거니 했다.

 

그렇다면 관람이 끝난 후의 느낌도 할리퀸,,, 이냐 라고 묻는다면, 올곧이 할리퀸은 아니라고 답하겠다. 선악이 분명한 흐름, 소리로만 연기하는 송중기 그리고 47년의 시간 포인트, 이 요소들이 바로 할리퀸으로 치부하기엔 꽤나 세련된 영화라고 하겠다.

 

우선 송중기의 연기. 혹자들은 '참 편하게 영화찍었네'라는 말도 한다. 표면적인 대사가 적은 데 착안한 생각이리라. 하지만 난 그렇게 보지 않았다. 똑 부러지는 대사는 없지만 늑대소년인 송중기는 줄곧 '음' '크르릉' 따위의 소리로 감정을 표현해야 했고, 무엇보다 소녀와 헤어질 때 심봉사가 눈을 뜨는 것 같은 쾌감과 동시에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아픔을 짬뽕시켜 던지는 늑대소년의 표현은 '송중기가 아니면 누가?!'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송중기는 참 힘들게 연기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 다음은 선악구도. 늑대소년과 소녀만 있으면 됐지 무슨 선과 악이냐 했다. 그런에 이 '악'이 없었다면 얼마나 밋밋한 시멘트 바닥 같은 느낌이었을까 싶다. 유연석이라는 배우가 연기했다는 그 나쁜X은 정말 나빠서 화가 날 지경이다. 차라리 명석한 나쁜X이었다면 소름이 돋았을텐데 이 나쁜X은 치졸하고 이기적인데다가 멍청하기 까지 하다. 그래서 더 밉다. 이 나쁜X는 영화 상에서 시종일관 늑대소년을 자신의 라이벌로 인식하는데, 안타깝게도 그는 힘으로 보나 지력으로 보나 매력도로 보나 소년에게 상대가 되질 않는다. 하지만 심심할 수 있는 로맨스에 적절한 양념칠을 했다는 점에서 이번 나쁜X은 그다지 나쁘지 않은 것으로 결론.

 

마지막 47년이다. 뭐 이런 숫자를 이렇게 대뜸 내미나 했는데, 생각해보면 47년 만에 머리가 그렇게 하얗게 샐 리도 없건만, 57년이나 37년이 됐으면 마지막 장면의 아득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리라. '기다려. 꼭 돌아올께'라는 종이 쪽지를 들고 창고를 지킨 훤칠한 늑대와 할머니가 되버린 소녀의 만남은 그래서 더 아름답다. 그 와중에 궁금한 것 한 가지. 늑대는 그 시간 동안 무엇을 먹고 살았을까.

 

송중기 '빠'인 사촌동생의 등살에 못 이겨 본 영화였다. '이런 영화를 보기엔 언니는 너무 때가 탔단다'라고 타일렀건만. 그래도 때 묻는 삼십한살 소녀는 눈물 범벅이 되어 극장을 나왔고 동료의 첫 사랑 타령에 늑대소년을 떠올렸다. 아마도 그건, 아저씨가 되어버린 동료의 고등학생 시절이, 늑대소년이 기다린 47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처럼 허망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눈사람을 만드는 소년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 영화 <늑대소년>, 첫사랑을 헤집어놨던 <건축학개론>보다 더 애틋하다고 평하고 싶다.        


- 2012년 11월 18일 2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