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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공부/200일 글쓰기

[145일][11월16일] 홍제동 우리집

 

 

홍제동 우리집

 

 

내리막길 스무걸음 걷다보면 왼쪽에 공방, 오른쪽에 세탁소, 세탁소를 지나 30m 정도 걸으면 새벽기도 하고 나오시는 분들이 있는 교회, 교회를 우측에 두고 직진으로 50m 정도 걷다보면 좌측에 세븐일레븐, 그 앞으로 쭉 걸으면 마을버스 정류장. 출근길 어스름에 보이는 우리 동네 모습이다. 2년 가까이 살아온 이 동네를 이렇게 지날 일도 이제 두 달 밖에 남지 않았구나.

 

그 집 한번 가봐. 엄마 친구가 아들 집으로 알아보던 집인데, 그 아들은 더 높은 층 집으로 했대.’ 결혼을 준비하던 2013년 겨울, 신랑과 나는 집을 알아보는 데 혈안이 돼있었다. 매 주말, 서울과 경기일대를 휘젓고 다녔다. 자금에 맞추자니 집이 마음에 안들고, 집에 돈을 맞추기에는 빚이 너무 커졌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엄마 친구가 알아봤던 집이라며, 꼭 한번 가서 보기나 하라고 엄마가 말씀하셨다.

 

대한민국에서 필요한 주거 비용의 어마무시함에 질려가던 차, 퇴근하고 신랑과 나는 홍제동으로 향했다. 홍제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면 된다고 했다. 지하철 역에서 나와서 둘러본 홍제역 일대는 암울했다. 건물은 낮았고 보안도 취약해 보였다. 공원도 안보이고 공기도 나쁜 것 같다며 투덜투덜 댔다. 그런 내 태도를 본 신랑은 이 집 계약안하겠네라고 말했다.

 

부동산에 들러 해당 집을 보러 갔다. 아오리 사과색 벽지였다. 안방은 꽃분홍, 작은 방은 남자아이 방답게 자동차가 수놓아져 있었다. 깨끗했다. 화장실은 새하얗고 물 때 하나 보이지 않았다. 해 안 들어오는 반지하 또는 침대가 들어가면 꽉 차는 방 하나뿐인 빌라만 보다가 온 지금의 이 아파트는 낙원이었다. 널찍한 배란다, 안방과 작은방, 복도식 아파트의 맨 끝집, 게다가 회사로 바로 가는 버스도 있었다. 이 집이다 싶었다. 바로 그 다음주에 와서 계약서를 썼다. 그와 나만의, 우리의, 첫 번째 집이었다.

 

아파트는 인왕산과 홍제천을 곁에 두고 있었다. 인왕산 진입로가 아파트에 있었고, 우측으로는 데이트 장소로 유명한 개미마을, 집 앞에는 깨끗하지 않았지만 홍제천이 흘렀다. 우리 둘이 친환경 페인트를 사다가 집을 칠했고 가구를 사서 집을 꾸몄다. 점점 아늑한 우리 보금자리가 완성됐다.

 

지난 주, 우리의 첫 번째 보금자리, 홍제동 집을 세주는 계약서를 썼다. 우리처럼 새로 시작하는 신혼부부였다. 새로 우리집에 들어올 사람들은 우리를 부러워했다. 어떻게 이 집을 사게 됐냐 물었다. 집을 알아보며 찬 겨울 바람을 얼굴로 가르던 그 시절이 떠올라 그와 나는 웃었다. 겨울의 추억, 집에 대한 첫 사랑을 심어준 이 집, 이 집을 떠나기까지 이제 두 달 남았다.

 

우리가 또 이 집에 돌아올 수 있을까? 아끼고 좋아했던 물건을 나도 모르는 새 먼 곳에 두고 온 안타까움이 이런걸까. 내일 아침 다시 보게 될 우리 집 주변은 또 어떤 모습일까. 눈에 담을 수 있는 만큼, 그득하게 담아둬야겠다.

 

(원고지 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