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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공부/200일 글쓰기

[104일][9월3일] 개발자와 욕일기(글쓰기로 가는 길 1탄)

 

개발자와 욕일기

 

 

나는 욕일기로 시스템 개발자로서의 설움을 이겨내왔다. 동료들과 함께 하는 여느 직장인과 달리, 현장에 파견나가 고객과 직접 대면하며 시스템을 구현하는 SI(System Integration, 시스템 개발 업무를 통칭) 특성상, 모든 것은 혼자 처리해야 했다. 일명 각개전투.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요구사항을 뽑아내 개발가능성을 타진하고 시스템을 설계, 구현했다. 얼굴만 보면 욕부터 나오는 고객님들과의 미팅이 아니면 회사에 있는 시간 동안 내가 말 걸 수 있는 상대는 모니터 뿐. 화장실에서 울다 울다 그래도 해결안된 억울함은 모니터 뒤에 숨어 파일에다 욕을 쓰며 풀었다. 하루하루 매일 빼놓지 않고 나는 미친놈이라는 글자를 썼고 연차가 쌓이면서 파일 수는 늘어갔다.

 

스마트폰 SNS 모듈을 개발할 때였다. 미국판매용 모델이었는데 국내 테스트를 거쳐 미국 현지 테스트를 진행하는 중이었다. 미국인 테스터가 현지에서 핸드폰의 여러 기능들을 테스트 하고 한국으로 에러를 리포팅 하면, 개발자는 즉각 조치를 해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즉각 조치란, 한 시간 이내에 에러를 고쳐 미국인 테스터가 바로 재테스트 할 수 있도록 모듈 버전을 업그레이드해 재배포 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 상황을 대응하다보니 당연히 밤낮은 바뀌었고, 짬안되고 상대적으로 젊었던 나는 거의 모든 밤근무를 도맡아야했다. 문제는 이상하리만치 에러가 없었다는 것.

 

밤을 샌 후 쪽잠을 자고 출근한 어느 날, 결국 폭탄이 터졌다. 개발팀에 상주하는 고객직원에게 경고메일이 날아든 것이다.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미국인 테스터가 리포팅하는 A페이지가 있는데 우리 모듈 고객님께서는 B페이지를 보고 계셨고 이를 모듈 개발자들과 공유한 상태였던 것이다. 결국 A페이지의 존재조차 몰랐던 나는 20개가 넘는 에러를 방치, 즉각조치는커녕 핸드폰 모델 출시에 장애를 주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나보다 두 살 많던 신삥 고객, 일명 미국개’ - 미국에서 대학을 나와 영어로 업무를 지시하고 고객은 왕이라 개발자 여직원은 자신을 위한 기쁨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 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OO대학 나온 애 맞어? XX에는 어떻게 들어왔어? 밤에 일안하고 놀았어? 사무실로 애인 불러 놀았냐? 일안하고 돈버니까 좋지? 머리가 안좋아도 그렇지 페이지는 똑바로 봐야 할 거 아냐! 일은 하면서 돈 받아처먹으라고! 폭언이 쏟아졌다. 200명 정도 되는 개발자들이 벌레처럼 모여있는 프로젝트룸은 삽시간에 조용해졌고 나는 날아오는 폭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다. 화장실에서 휴지를 입에 물고 울다가 퉁퉁부은 눈으로 나는 조퇴를 했고 200명 중 5명인 자사 선배들은 회의에 들어갔다.

 

(원고지 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