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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공부/200일 글쓰기

[101일][8월31일] 나는 왜 쓰는가

 

 

나는 왜 쓰는가

 

미친놈. ‘오전 7시 출근, 새벽 1시 퇴근이라는 법칙이 군림하던 시절, 갑을병정 세계에서 초 의 시스템 개발자였던 난, 매일 일기를 썼다. 그때 하루도 빼놓지 않고 적었던 단어가 바로 미친놈이다. 대상은 많았다. 여성개발자들 귀에다 바람을 불어넣으며 고객 입김은 꿀단지라고 낄낄거리던 고객님’, 이런 희롱을 방치하는 ‘PM’, 네 고통은 너의 몫이라며 난데없는 관용을 베푸는 팀장님까지. 그 때 나를 지탱한 건 다름 아닌 욕일기였다.

 

책에 본격적으로 입문한 것도 그 때다. 무릇 직장인이라면 뭐라도 좀 읽어 지식을 쌓아야 할 것 같았고, 이를 이끌어줄 무언가를 찾았다. 리뷰어 활동이었다. 정기적으로 책을 제공받아 리뷰 쓰는 일을 했다. 전공서적도 안 들고 다니던 내가 5백 페이지가 넘는 책을 들고 다니며 읽기 시작했다. 그 즈음해서 이런 질문들을 했던 것 같다. ‘어떻게 하면 글 잘 써요?’

 

생각과 느낌을 텍스트로 녹여 감동을 주는 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글처럼 요사스러운 것도 없는 법. 이렇게 써야지 생각하면 저렇게 써지고 핵심이 하나라고 생각하고 쓴 글은 중구난방으로 풀어지기 일쑤였다. 생각과 느낌의 시작점이 이고, 이걸 다시 글로 풀어내는 사람 또한 인데, 그걸 똑같이 표현해 낼 수 없다니. 막막했다.

 

정답에 가까운 답을 찾은 건 기자시절이었다. 취재하고 쓰고 까이고 다시 쓰는 무한루프 속 기자의 기사을 쓰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용이했다. 보도지침이 있어 정해진 틀 안에 글자만 끼워넣는 단순노동에 가까웠다. 기사와 비교되는 글의 심오함에 대해 한 선배가 말했다. ‘네 것이냐 아니냐, 네 생각에서 나온 거냐 아니냐 차이 아닐까?’

 

그때부터 나만의 글쓰기 지침을 만들었다. ‘를 쓰자고. 그 전에 를 알자고. 읽기와 쓰기의 공생 사이에 놓인 를 알아야 내 감정의 덩어리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 이게 글쓰기에 대한 첫 번째 마음이다.

 

자기 이해를 전문가에게 의탁하기보다 스스로 성찰하고 풀어가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으며 그중 가장 손쉬운 하나가 내 생각에는 글쓰기다. 글쓰기는 삶을 이해하기 위한 수공업으로, 부단한 연마가 필요하다. (p.43)’ 도서관에서 우연히 손에 든 <글쓰기의 최전선>에서 만난 문구다. 나만의 글쓰기 지침에 확신이 생긴 순간이었다.

 

욕일기로 시작해 기자라는 뜬금없는 직업도 경험하게 해줬던 글쓰기는, 이제 나를 또 다시 쓰게 하고 있다. ‘나 글쟁이 될거요!’라고 외치던 한 때의 패기는 사그라들었지만 글쓰기의 본질에 다가가고자 하는 마음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그 길이 운명처럼 만난 글쓰기 강의를 통해 조금은 더 확실해 지리라 기대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쓴다.

 

(원고지 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