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끝없는 공부/100일 글쓰기

[88일][8월13일] 글, 이제 쓰면 될 것 같다.

 

, 이제 쓰면 될 것 같다.

 

다섯 달 만이다. 혼자서도 잘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무엇을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쉬이 하지 못했다. 나는 약간 기가 꺾여있었다. 여러 학습모임을 거치면서 생각이 깊지 못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당연히 글도 수박겉핥기식에 그쳤다. 그러던 중 우연히 <글쓰기의 최전선>을 읽었다. 출장을 핑계대고 찾은 도서관, 그 많은 책 사이에서 빨간색 글쓰기 책을 손에 들다니. 어색하고 웃겼다.

 

글쓰기를 이렇게 풀어낼 수도 있구나’, ‘이 사람 정말 대단하다감탄했다. 눈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은유라는 작가... 원래 일반 직장인이었단다. 꿈틀꿈틀... 없어졌다 싶었던 무언가가 움직였다. 내가 꿈꾸는 지점을, 내가 바라는 방식으로, 밟아나간 분을 만난 것 같았다. 흥분됐다.

 

알겠더라. ‘나 작가 될거요!’라고 외치던 한 때의 패기는 사그라들었지만, 난 아직 글쓰기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걸. 손에서 놓을 수도 없다. 독서 혹은 글쓰기를 평생 하고 싶다. 그냥 말고 잘. 이왕이면 밥벌이로? 몇 주간을 갈팡질팡하던 마음이 스쳐지나가는 바람이 아닌 것 같다.

 

그 시작이 서평쓰기다. 글을 써보자 했던 첫마음’, 그게 서평이었다.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 고향을 찾아가듯, 이런 저런 글을 만났지만 내 마음은 맨 처음의 시작으로 향했다. 흥분되고 기대됐다.

 

첫 책은 어렵고 불편했다. 소설 꽤나 좋아한다면서 한 번도 읽지 않았던 도스토옙스끼의 책 <지하에서 쓴 수기>. 적은 분량이라고 만만하게 봤는데, 화자의 생각, 화법 어떤 것도 편하게 넘기질 못했다. 통독, 발췌 후 서평을 썼다. ‘작가가 자신이 체득하게 된 관념 인간은 비이성적이다 을 말하고 있다가 내가 생각한 뼈대였다.

 

서평시간, 칼질이 시작됐다. 매운 칼질을 부탁했다. 지적받은 사항은 ‘‘화자=작가로 오해 하고 있음, 시대나 작가에 대해 단정적으로 말함, 책에 대한 개괄적인 면을 알 수 없음, 주제를 제시하지 못함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맥을 못 짚었다는 데 있었다. 반복된 실수였다. 동일한 지적을 여러차례 받아왔다.

 

난관에 봉착했다. 어떻게? ‘은 책을 읽는다고 캐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잘 읽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잘 읽지? 해당 책에 대한 해설서를 먼저 읽어보라는 가이드를 받았다. 내 생각이 생기기 전, 선입관에 사로잡힐까 우려되지만, 한번 시도해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한 번의 수업을 거쳤는데 여러 고민이 생겼다. 책을 제대로 읽는 방법을 어떻게 터득할까? 생각하는 바를 글로 그대로 옮길 수 있을까? 단정적인 어투를 벗어난 섬세한 글을 어떻게 적을 수 있을까? 그나마 기특한 건, 내가 이 고민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무언가 성장하는 느낌이 들어 기뻐하고 있다.

 

일을 하다 인터넷 서핑을 했다. 회사 근처, 내가 좋아하는 맥주마시는 서점블로그에 새 글이 올라왔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손에 들었던 <글쓰기의 최전선>을 소개하고 있었다. 매일 마음에 그리던 사람을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우연히 만난 기분. 그 글에는 너무 좋아서 그냥 퍼옵니다라는 멘트와 함께 은유 작가의 인터뷰 글을 덧붙였다. 읽었다. 역시... 설렌다. 글을 읽는 즐거움이 이런걸까? 나도 너무 좋아서 퍼왔다. (은유 비밀글만 쓰면 글은 늘지 않는다 http://ch.yes24.com/Article/View/28118)

 

어제 썼던 서평을 다시 읽었다. ‘삶이란 타자에게 빚진 삶의 줄임말이고, 나의 경험이란 나를 아는 모든 나와 나를 모르는 모든 나의 합작품인데, 누구도 삶의 사적 소유를 주장할 수 없다고 은유 작가는 말했다. 내 글 속에 있는 도스토옙스끼의 삶은, 너무 단정적이다. 그의 경험은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과 그의 생각들과 그 자신,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의 합작품일텐데, 내가 감히 그의 생각을 마음대로 판단했다니. 도선생에게 죄송스럽다. 하지만 이 마저도 내가 글을 잘 써 나가는 데에 하나의 단초가 될 터. , 이제 쓰면 될 것 같다.

 

(원고지 12.4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