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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공부/칼럼읽고쓰기

칼럼쓰기9. [한겨레/사회칼럼] 국가의 과학적 근거

원문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86633.html

필자 :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요약]

과학계에서 한 이론이 인정을 받으려면 그 이론을 지지하는 근거들이 부정하는 근거들을 앞서야 한다. 국가 정책의 설정, 집행, 평가는 국민의 세금으로 이뤄지는 만큼 과학계에서 통용되는 근거 중심의 합리성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정책 권력은 증거기반정책을 등한시하고 있다. 천안함, 세월호, 그리고 공약뿐인 경제민주화가 이를 대변하고 있다.

 

[단상]

생명과학 전공 학생들이 가장 싫어하는 과목이 있다. 세포학 실습이다. 단언컨대 전공 필수 과목이 아니라면 반드시 폐강되리라.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세포를 공부해야 한다는 어려움?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세포학 실습의 필수 코스, 세포배양 실험 때문이다.

 

세포배양 실험은 한 학기 내내 이뤄진다. 첫 수업, 오리엔테이션이 끝나면 바로 조별로 세포가 주어진다. 각 조는 한 학기 동안 이 세포들을 잘 키워야 하고, 학기 종료 시점에 관찰되는 세포 개체 수와 그 품질에 따라 성적이 나뉜다.

 

세포가 잘 자라는 데 영향을 주는 요소는 온도(37), 습도(90%), CO2(5%) 등 셀 수 없이 많다. 말이 쉬워 온도, 습도, 이산화탄소지 이걸 온전히 지켜내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실험실 내에서 배양했다간 제 때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없다. 누군가의 집에서 키운다면 조별 과제를 한 명에게 떠넘기는 의미가 돼 태도 점수에서 마이너스가 된다. 어디 그 뿐이랴. 적당한 장소를 찾아 조원끼리 공평하게 세포를 배양하기로 했다고 치자. 이때부터는 매일 6시간 간격으로 돌아가면서 세포를 돌봐야 한다. 시간, 날씨, 계절별로 편차가 발생하는 온도, 습도 따위가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환경을 재조성 해줘야 한다. 관건은 조원간의 협력이다.

 

술 마시다 세포에게 뛰어가고, 시험공부를 하다가도 세포에게 가고, 나는 후배에게 대리 세포배양을 시킨 적도 있다. 이렇게 4개월간 4명의 조원이 6간 씩 돌본 세포는 그 보답으로 무럭무럭 자라 A를 안겨주기도, 자라지 않거나 모양이 변형되어 BC를 받게 하기도 한다. 치열하고 고단했다. 그 덕에 세포학 실습은 내게 가장 힘들었던 과목으로 각인되어 있다.

 

칼럼을 읽고 뉴스를 볼수록 우리나라에 산적해 있는 많은 문제들이 마음에 걸린다. 교육, 복지, 경제, 국제.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다는 표현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리라. 세포배양 실험에서 A를 받기 위한 학생들의 태도는 사뭇 진지했다. 졸음이 몰려와도, 싫어하는 조원이 있어도, 그 과목 성적을 포기했다 하더라도, 다른 조원에게 피해가 갈까봐 한 학기를 세포 배양에 힘을 쏟는다. 협력한다. 그런데 우리네 정책 권력자들은 조금 다른 모양이다.

 

한 사람의 치부는 당의 오점으로 표시된다. 그 사람의 낙마는 반대편의 승리를 의미한다. 믿을만한 인물이 없을 때는 당을 보고 뽑으라고 열을 낸다. 네 편, 내 편이 있을 뿐, 국가나 우리라는 개념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이러한 판국에 어떻게 효과적인 정책의 설정, 집행, 평가를 기대하겠는가. 대학시절의 세포 배양실험이 유독 많이 떠오르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