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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따라 저멀리/다녀온 곳

[13.08.28~13.08.31] 끝여름 제주 이야기



제주도에 다녀왔습니다. 하루라도 자리를 비우면 큰 일 날 것 같은 회사를 뒤로 하고... 떠났습니다. 작년이었습니다. 어색하게, 조금은 불편하게,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멤버로 구성된, 현재는 '트레블 메이트'라 일컬어지는 사람들과 함께 했던 첫 여행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가깝게, 더 친근하고 다정하게, 너무 잘 알고 있지만 더 알 수 있었던 우리들의 또 다른 제주도 여행이었습니다.  

 

운좋게 저렴한 티켓을 구했습니다. 하지만 출발 전 날, 여행사가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사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출발 당일 약 세시간 가량을 김포공항을 휘젓고 다녔습니다. '갈 수 있을거야.' '어떻게 얻은 휴간데.' '우리 꼭 가자.' 고난은 사랑과 우정을 더 공고히 해주는 법. 어렵사리 표를 구해 부산을 거쳐 제주로 향했습니다. 국내선 환승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경험하며, 제주도에 입도할 수 있었습니다.   

  

여행사를 뒤집어엎을 만한 이 사건은 우리에게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부산공항을 난생 처음 방문해봤고, 부산공항에서 현금을 주웠으며, 제주로 향하는 부산발 비행기에서 이벤트에 당첨이 됐고, 제주도에서 회정식을 무료로 먹을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행사의 실수는 '우리의 아름다운 제주 여행'을 위해 잊기로 했습니다.  

 

여행은 아름답고 행복했습니다. 맑은 공기, 조용한 파도, 간드러지는 새소리, 맛있는 먹거리들 그리고 너와 나. 하루하루가 소설같고 영화같았습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편안하게 배려해줬고 덕분에 아프지도, 힘들지도 않게 다닐 수 있었습니다. 둘러본 곳들 유유자적했던 시간을 선사해준 '사려니숲길'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비가 갠 오전 시간을 보내서였을까요. 깨끗하고, 신선하고, 한적하고, 평화로웠습니다. '사려니'라는 말처럼, 정말 신성한 곳이었습니다.

 

별미도 많았습니다. 제주도에 갈 때마다 매번 고민하게 만드는 부분. '오늘은 뭘 먹을까?' 먹는 것을 누구보다 좋아했던 우리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서 메뉴를 선택했습니다. 제주에서 맛보는 회정식, 흑돼지고기정식, 말고기, 문어칼국수, 전복뚝배기 등을 먹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맛있었던 건, 애월읍에서 맛 본 흑돼지고기! 동부보다 상대적으로 관광지가 덜 발달된 서부에서 가게를 찾아갔습니다. 축산농가에서 바로 잡아와 먹게 해준다는 얘기 때문이었습니다.

 

거뭇거뭇한 털자국이 흑돼지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징그럽고 더럽다(?)는 생각할 틈도 없이 맛있습니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소리, 고기가 익어가는 내음, 와구와구 먹을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그런 맛이었습니다.  풍부한 육즙과 씹히는 고기의 맛은 빡빡했던 일정의 노곤함을 잊게해주었습니다.

 

이 외에도 더 많은 먹거리와 볼거리를 즐기고 왔습니다. 갈 때마다 새롭고 흥미진진한 곳이 제주도 아닐까요. 갈 때마다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는 제주도, 올 해 있었던 제주도 이야기는, 기억에서 사라질까 두려울 정도로 황홀했습니다. 그래서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일기로 적어두려 합니다. 방문했던 곳, 먹었던 음식, 숙소, 바다소리, 새소리, 비내음, 감귤, 숙소에서 마셨던 와인까지 하나씩 천천히, 조금씩 보여드릴께요.  

 

집으로 오는 길, 제주공항에서는 제주도보다 더 환상적인 일이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그의 마음 고이 간직하며 이번 여행에서 준 선물들도 잊지 않겠습니다. 회사에서의 고단함을 잊게 해주고 사랑을 다시 확인하고 우리 마음을 정화시켜줬던 제주도, 이번 여행의 기억이 있어 저는 이미 넘칠만큼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