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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세상/영화

영화 <차이나타운(Coinlocker Girl, 2014)> 쓸모의 차이

 


차이나타운 (2015)

Coin Locker Girl 
7.3
감독
한준희
출연
김혜수, 김고은, 엄태구, 박보검, 고경표
정보
| 한국 | 110 분 | 2015-04-29
글쓴이 평점  

 

 

남녀의 경계가 무너졌고 특정 분야에서는 오히려 여성이 더 강세를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많은 부분들이 '남존여비'의 잔해들로 어지럽다. 그래서 "여자가 남자보다 결정과 책임에 더 강하다고 생각한다."는 한준희 감독의 말에 마음이 동했다. 하여 영화 <차이나타운>에 도전!  뒤가 찜찜하리라 예상되는 - 청소년 관람불가, 어두컴컴한 포스터, 날카로운 칼, 피가 난무하는 예고편 - 영화를 보면 2박3일을 앓는 내게,영화는 쉽지 않았다. 

 

'일영(김고은)'은 지하철의 코인로커 10번에서 발견된다. 거지처럼 살던 어느 날, 트렁크에 갇혀 '엄마(김혜수)'에게로 팔려 간다.  엄마가 있는 '사진관'에서는 밀입국자들에게 가짜 주민등록증을 만들어 주고, 돈을 빌려준다. 그리고 그들이 빌려간 돈은 엄마의 '아이들'이 회수해 온다. 

 

수금을 하는 일영은 거칠다. 지지 않기 위해 욕을 하고 싸운다. '쓸모'를 증명해야 하는 일영이 익힌 삶의 방식이다. 빚을 회수하러 간 어느 날, 일영은 '석현(박보검)'을 만난다. '돈을 갚으라'는 말에 살기로 응수하던 사람들에 비해, 그는 맑은 미소와 친절한 말투로 파스타를 대접한다. 

 

그가 낯설다. 아프거나 괴로워하며 '무의미해진 삶'을 사는 누군가가 있거든 죽음으로 도와주라는 말을 좌우명처럼 살아온 일영이었다. 석현의 삶은 바닥이었다. 아들을 버리고 타국으로 도주한 아빠, 그런 아빠 빚을 대신 갚는 삶, 하지만 그는 근원을 알 수 없는 희망을 품고 버텨 나간다.

 

석현에 의해 일영이 흔들리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그러나 핵심은 '엄마'다. 차이나타운을 장악한 엄마의 세상, 그 세상을 벗어날 수 없는 일영과 아이들. 차이나타운 안에서 엄마는 군주고 절대권력이다. 아이들은 엄마 슬하를 벗어나고자 한다. 떠났다가도 쓸모로 삶을 연명하는 방법만을 배워 온 아이들은 마땅히 갈 곳이 없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엄마를 다시 찾는다. 복종한다.  

 

엄마는 일영을 거뒀지만 엄마와 다른 방식의 삶의 희망을 꿈꾸는 그녀를 '쓸모없다' 여긴다. 반면, 새로운 방식을 희망하지 못하는 엄마를, 일영은 '쓸모없다' 여긴다. 서로 합치되지 못한 '쓸모'로 인해 그들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김혜수는 한 인터뷰에서 "영화에서 엄마가 일영(김고은 분)에게 던진 '증명해봐 니가 쓸모 있다는 증명'이란 대사 역시 암묵적으로 우리가 품고 있는 말이다. 사실 생명체가 쓸모 자체를 증명할 필요가 있나. 쓸모라는 기준 또한 누가 정하는 건가. 이거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잔인한 말이다.'라고 했다. 사회가 '반드시 이래야 한다'고 규정짓는 어떤 것들에 우리는 순종하고 있는지 모른다. 엄마의 다른 아이들처럼. 그러나 차이나타운에서의 방식이 전부가 아님을 알고 발버둥 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영처럼.

 

영화는 엄마의 모성을 반전 키로 내세운다. 엄마는 어둡고 폐쇄적이었지만 일영에게는 인간 '엄마'이고 싶어했다. 회수를 간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고, 한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하는 모습이, 내면의 인간 '엄마'를 보여주는 것이리라.

 

결국 일영은 또 다른 '엄마'가 된다. 엄마의 이전 방식으로 차이나타운의 그 장소에서 엄마를 기리지만, 엄마의 동지들을 처단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엄마와 비슷하지만 같진 않다. 

 

기준이라는 허울로 '쓸모'를 말하던 세상에서 벗어나 그녀만의 나래를 펼쳐나간다. 사회적 기준을 벗어날 수 있는 용기를 넘겨주는 영화의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일영의 새롭게 시작한다. 그녀의 삶이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