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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담은 책장/발췌

[발췌] 지하에서 쓴 수기

<1부> 지하


나는 뇌물 따윈 받지 않았으니, 그것 만으로도 나 자신에게 포상이라도 했어야 했다. (나 자신에게 포상이라니, 이건 형편없는 유머다. 하지만 난 이 대목을 지워버리지 않겠다. 나는 이 유머가 꽤나 날카롭게 받아들여질 거라 기대하면서 써놓았으니까.) p. 10

- 아집, 곤조

 

현명한 자는 진정으로 아무것도 될 수 없는 반면, 무언가 될 수 있는 자는 오직 바보뿐이라는 위안이었다. p.12

 

사십세 이상 산다는 것은 추하고, 속물 같고, 부도덕해 보인다! p.12

 

적어도 나만큼은 해서는 안되는 그 추악한 짓을 누구보다 명확히 의식한 순간에, 나는 마치 의도한 듯 그 짓을 저지르고 말았던 것이다.

- 어떤 (본인의 기준에서) 부정적인 일을 해버리고 말았다는 자책

 

쾌감이 찾아오는 시기는, 굴욕적인 자신의 존재를 잔인할 정도로 의식할 때였고, 막다른 벽에 부딪칠 때였고, 앞이 꽉 막혔는데 빠져나갈 탈출구가 딱히 없을 때였고, 탈출구가 없는 상태에서 다른 무엇이 되려야 도저히 될 수 없을 때였고, 무엇이든 다른 것이 되어보겠다는 믿음과 여유가 아직 남아 있다 해도 나 자신이 딴 사람이 될 의향이 전혀 없을 때였고, 다른 무엇이 되길 바란다 하더라도 변신할 만한 대상이 실질적으로 전혀 없어서 그냥 두 손 놓고 멍하니 있을 때였다. p.16~17

- 지하의 상태?

 

그것은 무엇이든 첫 번째 죄인은 나라는 사실이었다. 아무 죄도 없이 단지 자연법칙에 의거해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이 제일 짜증이 났다. p.18

- 이게 수기를 쓰는 이유일까?

 

생쥐의 주변에는 숙명적인 쓰레기 더미가 쌓이게 된다. 악취 나는 그 쓰레기란 생쥐 인간이 품고 있는 의심, 불안, 급기야는 판사나 독재자의 모습을 하고 의기양양하게 그의 주변을 맴돌며 동네가 떠나갈 듯 그에 대고 깔깔대는 직선적인 사람들이 뱉은 침 같은 것이다. p.21

 

영원한 주제란, 돌벽 속에서 무언가 자신의 잘못이 느껴지지만 실상은 그러한 잘못이 명백히 없다는 것이며, 그 결과 무력하게 눈만 부릅떴지 음탕한 타성에 마비되어버린다는 것이며, 다음과 같은 꿈을 꾸는 것이다. p.24

 

온갖 것을 의식하고 수치스러워하는 과정 속에 음탕한 쾌감이 있는 것이다. p.28

 

나의 장난은 물론 다듬어지지 못하고, 거칠고, 황당하고, 자기불신적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나 스스로가 나 자신을 존경하지 않는 데서 나온 것이다. 하기야 의식있는 사람치고 자기 자신을 존경하는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p.29

- 결국 자신은 의식있는 고매한 사람

 

이를테면 그 모든 참회, 그 모든 감동, 다시 태어나겠다는 그 모든 맹세가 거짓이다. 도대체 나는 왜 나 자신을 망가뜨리고 괴롭힐까? p.31

 

내가 어떤 식으로든 살아가기 위해 머릿속에서 모험들을 짜내어 인생의 스토리를 만들어보았다고나 할까. 어디 그런 일이 나에게 한두번 벌어졌던가? 예를 들어, 나는 사소한 일로 화를 낸 적이 있었다. 고의로 그랬다.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사소한 일을 가지고 일부러 화를 내다보면 진짜 화가 치밀어 오르는 법이다. 나는 평생 그러한 객기에 이끌려 살다보니 이젠 주체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p.31

- 위약효과,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진다. <시크릿>

 

온갖 의식과 사색의 본질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게 바로 자연법칙이라는 것이다. p.32

 

자신을 의도적으로 기만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p.33

 

나는 평생 동안 시작하거나 마무리 지은 일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나 자신을 현명한 인간이라 생각할지 모른다. 나를 수다쟁이라 불러도 좋다. 우리를 누구와 다름없는 무해하고, 짜증나는 수다쟁이라 해도 괜찮다. 하지만 현명한 인간의 직접적이고 유일한 소명이 수다라면, 즉 구멍 뚫린 체에다 고의로 물을 쏟아내듯 끊임없이 말을 뱉어내는 거라면, 내가 할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p.34

 

내가 실증적으로 해석되고 있다는 의미이자, 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의미이다. p.35

 

아무도 자신의 이익에 고의로 반하는 짓을 하지 않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선을 행하지 않겠느냐는 의미이다. p.38

 

자신의 진짜 이익이 무엇인지 충분히 알면서 고의로 그 이익을 팽개치고 위험이 도사린 엉뚱한 길로 달려들곤 했다. 누가 강요하거나 어떤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다. 마치 지정된 길이 싫어서 암흑 속의 험난하고 고된 길을 더듬거리면서도 고집스럽게 뚫어보려는 심산 같았다. p.39

- 난 동의하지 않아

 

이익의 본질이 자신에게 유리한 것이 아니라 불리한 것을 원하는 것이고 또 원해야 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중략) ‘인간의 이익이란 완벽하게 계산된 것일까라는 질문에 대답해보라. 이익이란 정확히 분류되지 않거나 아예 분류조차 될 수 없는 것이다. p.39

 

인간은 자신의 이익과 어긋나는 길을 갈망할 수 있으며, 때로는 그러한 갈망을 아주 당연히 받아들이는 존재다. (이건 나의 생각이지만) 자신만의 욕구, 제멋대로 보일 수 있는 심한 변덕, 때로는 광기에 근접하는 듯한 환상, 바로 이런 것이 우리가 간과했던, 가장 유리한 이익이다. p.46

- 인간은 착하지 않다. 자신의 유리한 이익을 좇는다 자기만이 가질 수 있는 욕망, 이건 변덕, 환상 이런 것들이다.

 

욕구는 완고하리만큼 이성과 상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p.51

 

인간의 치명적인 단점은 노아의 홍수에서 시작하여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시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사에서 영원히 변치 않는 악행이다. 악행의 결과는 부조리를 가져왔다. p.52

 

나는 여러분의 말대로 인간이 근본적으로 창조적인 동물이라는 사실에 동의한다. p.57

 

인간은 파괴와 혼돈이라는 진짜 고통을 절대로 거부하지 않는다고 나는 확신한다. 인간이 의식을 갖게 되는 까닭은 바로 고통이 있기 때문이다. p.60

 

나아게는 나만의 지하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p.64

 

하지만 잘 들어보라. 우리와 같은 지하생활자는 입에다 재갈을 물려야 한다고 나는 확신한다. 우리 지하생활자는 사십년 동안 아무 말도 안하고 지하에 처박힌 채 버틸 수 있지만, 한번 바깥으로 나와 폭발하면 쉴 새 없이 지껄여대기 때문이다. p.64

 

나는 지금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 수기를 쓰고 있으며, 독자를 의식하는 듯한 이 수기는 단순히 그렇게 보이기 위해서일 뿐이라는 것을 초지일관 밝혀두고 싶다. p.69

- 자기 방어적. 어쩌라는 거야? 자신만을 위한 거라면서 왜 의식하고 청자를 만들었지?

 

하지만 지면에다 내 생각을 적어보면 무언가 훨씬 근사해 보이고, 마음을 솔기하게 하는 게 있다. 그렇게 하면 나 자신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높일 수 있는데다가 말솜씨도 좋아질 수 있다. 또한 수기를 씀으로 인해 마음이 진짜 가벼워질 수도 있다. p.70

 

<2> 젖은 눈에 얽힌 이야기

 

나는 창문에서 뛰어내릴 능력이 없었던 위인이었다. (중략) 그러나 내가 마음을 고쳐먹고 선택한 것은 악한 마음으로 꼬리를 내리는 것이다. p.84~85

 

그는 자신의 높은 지위로 나를 보호해주고, 나는 수준 높은 나의 소양과 다양한 이상, 또 그밖의 많은 것으로 그를 고상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 텐데! p.88

- 장교의 편에서서 이익을 취하려는 작가, 이게 그가 말하는 유리한 이익일까?

 

나는 이들 상류사회의 무리 앞에선 한낱 파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도 역겹고 불필요한 파리다. 물론 이 파리는 누구보다 총명하고 누구보다 교양있고 누구보다 고상한다. p.88~89

-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게속 어필함. 찌질해 보임


여전히 길을 양보하는 쪽은 나였다. p.90

- 본인 위주의 생각, 다른 사람은 본인을 고려치도 않음

 

나의 참석이 부질없는 짓이고 볼썽사나워 보일수록, 나는 더욱 확실히 가게 되어 있었다. p.110


아이들은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고, 우리를 고무하고 경이롭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일체 관심이 없었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걔들을 나보다 형편없는 아이들로 보게 되었다. p.111

- 지속적으로 본인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증명하려함

 

열여섯 살인데도 아이들은 벌써 편안한 직장 얘기를 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유년시절과 소년시절에 걸쳐 저들의 눈과 귀를 끊임없이 가로막았던 못된 본보기와 우둔함에서 나온 것이다. 아이들은 징그러울 정도로 타락했다. p.112

- 오늘날과 다르지 않다.

 

나는 그 아이의 영혼을 무한정 지배하려 했다. 나는 그 아이가 주변의 친구들을 경멸해주길 바랐고, 그 아이가 주변의 친구들과 오만하게 절교할 것을 요구했다. 나의 뜨거운 우정은 그 애를 놀라게 했다. 결국 그 아이는 눈물을 흘리며 경련을 일으켰다. 그 아이는 순진하고 헌신적인 영혼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그 아이가 마침내 나에게 헌신했을 때, 나는 즉각 증오하기 시작하며, 마치 승리를 얻어내고 굴복시키기 위해서만 그 아이가 필요했던 것처럼 그를 나에게서 밀어냈다. 모든 아이들을 이길 수는 없었다. p.113

 

무엇보다 우려할 만한 것은 이 모든 것이 비참하고, 비문학적이고, 비속하다는 것이다. p.115

- 비문학적이라는 걸 강조하고 있다. 이런 버러지 같은 것은 자신이 속한 문학의 범주에 들어갈 수 없다는 편협함이 보인다.

 

야비한 녀석들은 자기네 식사에 나를 위해 수저 하나 얹어준 걸 가지고 나에게 영광을 베푼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영광을 베푼 당사자는 저네들이 아니라 나란 걸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말이야! p.124

- 곤조, 아집

 

내가 제일 강조하는 게 무엇인지 알겠소? 그건 미사여구 따위를 쓰는 인간들과, 허리가 꼭 끼는 날라리 옷을 입는 인간들을 증오하는 거요. 그게 첫째고, 둘째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p.127

- 자신은 절대자

 

문제는 바로 이런 순간 세상 그 누구보다 나 자신부터, 나의 이러한 가상이 역겹고 어리석기 그지없을뿐더러 동전의 양면 같다는 부끄러운 생각이 강하고 뚜렷하게 들었다는 것이다. p.138

- 이율배반적

 

차라리, 차라리 집으로 직행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 어째 이런 일이 벌어진담! 내가 대체 왜 이놈의 송별연에 참석하겠다고 어제 그 해프닝을 벌였을까?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세시간씩 테이블에서 난로까지 왔다 갔다 한 짓은 뭐야? 맞아, 녀석들은 나에게 그런 짓을 유발한 댓가를 치러야 해! 녀석들은 나의 이 굴욕을 씻겨 줄 의무가 있다! p.139

- 하하하!

 

나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사람처럼 환희에 차서 온몸을 떨며 이런 결과를 예감했다. 난 따귀를 갈기고 말았을 거다. 틀림없이 즈베르꼬프의 따귀를 때렸을 거다! 그런데 이 자리에 녀석들이 없다. 모든 게 사라져버려서 사정이 싹 바뀌었다! 나는 두리번거렸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p.142

 

나는 문득 거울을 보았다. 흥분한 나의 얼굴은 극도로 징그러워 보였다. 헝클어진 머리에 창백하고, 악의에 차 있고, 비열해 보이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괜찮아. 난 이게 좋아 난 이렇게 생각했다. - 이 아가씨에게 징그럽게 보이는 게 나는 기쁘다. 나는 그게 좋다....’ p.143

- 정신병자!

 

누군가가 자신의 영혼을 거칠고 주제넘게 엿보려 할 때, 마지막 순간까지 그 누군가가 자신의 영혼 속으로 침범하는 것을 자존심상 용납하지 않으며 타인에게 자신의 감정을 노출하길 두려워할 때, 수치심을 아는 순결한 사람이 마지막으로 취하는 비장의 수단이었다. p.161

 

바로 너의 영혼이야, 영혼! 너는 네 영혼을 지배하질 못하고 있어. 너는 육체와 영혼을 한꺼번에 노예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지! p.164

- 자신이 계몽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임

 

사랑하지 않아도 맘먹은 대로 다 가능한 처지에서, 누가 너의 사랑을 얻으려고 애를 쓰겠니? 처녀에게 이것보다 더 심한 모욕이 없다는 걸 알고 있니? p.165

- 리자를 욕보이는 주인공

 

나는 그녀의 영혼을 뒤집어놓고 그녀의 가슴을 난도질해놓았다. 내가 이렇나 결과에 만족하면 할수록, 더욱더 많은 것을 얻고 싶어했고, 더욱더 강력하게 나의 목적을 달성하고 싶어했다. 이렇게 나를 홀리게 했던 것은 연극, 연극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연극 하나만은 아니었다. p.170

 

한 마디로 책을 읽는 것과 똑같이하지 않으면 나는 말을 할 줄 몰랐다. p.170

- 자신의 한계 인정

 

그녀는 내가 떠나기 전에 그녀가 순수하고 진실되게 사랑받았을 뿐만 아니라 존경스러운 대하 상대자였다는 사실을 꼭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p.174

 

그 혼란으로 인해 진실의 불꽃이 번득였다. , 혐오스러운 진실! p.175

 

그건 어떤 논리적 주장보다 월등한 것으로서, 내가 어제 벌어진 고약한 사건에 아주 당당하게 반응하고 있으며, ‘신사 여러분, 당신들이 기대하는 만큼 나는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반대로 자존심 있는 신사가 이런 사건을 침착하게 바라보듯 나 역시 그런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라는 사실, 과거지사에 대한 잘못을 따지지 않는 법이다라는 사실을 저들이 알게 해주는 것이다. p.178

- 자기변호

 

! 이렇게 밑바닥으로 떨어진 모습은 보여주기 싫다! 집 안에 빈티가 줄줄 흐르잖아. 게다가 어제 입었던 옷차림은 어떻고? 가죽 소파는 찢처져서 넝마 조각들이 너덜너덜하게 튀어나와 있잖아! 실내복으로 내 몸뚱이도 못 가리는 형편인데. 누더기 중에 상 누더기라서! 리자가 오면 이런 못 볼 꼴을 다 보잖아. p.180

- 그의 옹졸함과 고매한 자존심을 단적으로 드러냄

 

네가 하필 그럴 때 나타났기 때문에 그래. 내가 나쁜 놈인데다, 나는 가장 추악하고, 가장 우스꽝스럽고, 가장 하찮고, 가장 멍청한 인간이기 때문에, 또 나는 벌레만도 못한 질투투성이 존재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그래. p.201

 

나는 지금까지 그 실마리를 도무지 알 도리가 없다. 물론 그때는 지금보다 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권력과 독재를 행사하지 않고서는 나는 살아갈 수가 없다. 왜 그런지 합리적인 사고로는 설명이 안된다. 결과적으로 합리적 생각이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p.204

 

나는 병이 날 정도로 괴로워하면서도 모욕과 증오가 결국은 유익한 것이라고 단정 지은 나의 표현이 두고두고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p.211

 

내가 왜 이런 행동을 했느냐 하면, 여러분이 감히 천착해볼 엄두도 못 냈던 것을, 또는 반쯤 천착해보았던 것을, 그리고 비겁함을 분별력이라 하며 여러분이 자신을 기만하면서 자위해왔던 것을, 끝까지 파헤쳐서 그 속을 뒤집어보기 위해 서였을 뿐이다. 그러니까 나는 여러분보다 훨씬 더 생생하게살아 바깥으로 나온 셈이다. p.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