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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담은 책장/발췌

[발췌] 금요일엔 돌아오렴(창비)


가슴에 통증이 계속 몰려왔다. 그 순간 인간에게만 영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도 영혼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5p)


기록 작업은 부모들의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직시하는 과정이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거기에는 세상이 반드시 바라봐야 할 삶의 진실이 있었다.(6p)


우리가 포기한 어떤 지점들을 부모들은 그대로 뛰어넘었다. 부모들은 예단하지도 속단하지도 않으면서 유연하게 세상과 마주하고 있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무릎도 꿇었다. 고통 앞에 솔직했고 자신들의 바람 앞에 명확했다. 그리고 지혜롭고 현명했다. 부모들의 이 지혜로움과 현명함은 자식을 위해 당신들의 온 마음을 낸 결과라는 걸 느낄 수 있었기에, 슬프면서도 존경스러웠다. (6p)


세상이 참으로 교활했다.(6p)


사람들 사이에 마음의 벽을 만들고 서로의 관계를 파괴하고 있었다.(6p)


부모들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더이상 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갈 수 없었다.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외면했던, 사회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실은 자신의 모습이었다는 진실을 통렬히 깨닫는 시간이었다. 부모들이 평범한 자신의 삶에 대해 '성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사회의 문제를 외면할 때 결국 화살이 돌아오는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침묵하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에게 벌을 내리는 것이었다. 자식에 대한 애틋한 사랑으로 터득한 이 성찰이후 부모들은 우리의 가장 밑바닥인 '영혼의 중심'이 되었다. (7p)


우리 사회가 이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무엇을 빼앗아갔는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7p)


각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이지만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7p)


부모들은 고통을 온몸으로 통과해오면서 우리 사회에 필요한 긍정적인 가치들을 많이 얻었다. 우리에게 남은 건 그 진실들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기억하는 일일 것이다. (9p)


이건 사고라지만 국가가 죽인 거죠. 그리고 어떻게 한 학교 아이들이 그렇게 많이, 한낱 한시에 죽은 운명이 있을 수 있겠어요. 말이 안 되죠.(20p)


"어쩌다가 일어나는 일이 왜 내 동생한테 일어났어. 많으니까 일어난 거 아니야. 우리가 모르는 일이 많은 거야." (21p)


실은 거기(팽목항)서 우리가 마지막이 될까봐 너무 힘들었어요.(29p)


아들이 저를 생각해서 그런 것 같아요. 만일 계속 붙어 잤으면 그 허전함이 더했을 텐데 한달간 따로 자는 현습을 시키고 간 거예요.(34p)


어차피 진상규명이 안 되고, 그러면 엄마들이라도 부조리하지 않은 세상을 만들어갈 자식을 키웠으면 좋겠어요. (39p)


'그래, 앞으로 이 사회의 정신세계가 바뀌게 우리 엄마들이 먼저 바뀌고 아이들을 그렇게 키우는 것이 이어져야 해.' (39p)


한 배를 타고 가는 길이었으나 누구는 살고 누구는 죽었다. 사고는 하나였지만 가족들이 받아들이는 삶의 무게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58p)


할 일을 해야 먼 훗날 미지를 만나서도 한달 동안 바닷속에서 외롭게 했던 시간들을 용서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밤도 아빠는 분향소에서 미지를 보고 마음을 다잡는다. 진실을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는다. 미지가 바라던 세상, 그 길을 가느라 아빠는 바쁘다. (64p)


부인(否認)과 망각의 바다를 헤엄쳐, 세상에 승희와 단원고 학생들의 흔적을 그리고 진실을 전하고자 했던 그의 간절함이 활자의 징검다리를 건너 사람들의 가슴에 닿았으면 좋겠다. 그의 눈물이 진실과 고통에 대한 세상의 어루만짐으로 한자락 쉬어갈 위안을 얻었으면 좋겠다. (66p)


동생 꿈을 자주 꾸는데 그냥 동생이 평소처럼 나타나기도 하고, 제가 잠수부가 되어 애들 찾으러 가는 꿈도 꾸고. 제가 거인이 돼서 배를 끌어올리는 상상도 많이 하고. (92p)


어떻게 누가 죽였는지 알게 해줘야지. 그걸 못하면 아빠 자격이 없는 것 같아서 열심히 하고 있어유. (104p)


그는 요즘 참사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간담회에 다니고 있다. 그것은 억울하게 떠나보낸 아들에 대한 의리이자 스스로 하는 치유이며, 너무 많은 진실을 알아버린 한 인간의 저항이다. (112p)


애들은 부모가 앞에서 말하는 것이 아닌 뒷모습을 보고 배운다고 하잖아요. 행동으로, 삶으로 배운다고. (152p)


선단이 낮은 배들이 다 실어 날랐던 거죠...(중략)...이 사건의 포인트는 민간 선주들도 애들을 살릴 수 있었다는 겁니다. 해경이 처신만 잘했다면 많은 아이들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왜냐면 섬의 모든 선주들이 다 무전기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사고가 났다는 것을 다 들었어요. 그래서 섬에 있던 모든 배들이 세월호로 집결했거든요. 문제는 뭐냐면 애들을 구하려면 민간 선주들이 끌고 온 배에 두 사람은 타고 있어야 해요. 한 사람이 세월호에 올라가 애들을 구하는 동안 배가 떠나가지 않도록 잡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해요. 그걸 닻거지라고 하는데 닻을 내려서 배가 안 밀려나가게 당겨야 합니다. 혼자 아이들을 구하면 배가 가버리기 때문에 구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배가 세월호 바깥에 있지만 세월호가 침수하면 함께 빨려들어가 버리기 때문에 누군가는 그걸 살펴야 하고요. 전부 다 사고소식만 듣고 최고 속도로 달려가보니까 모두 혼자 타고 있는 상황이어서 세월호에 올라탈 수가 없었던 겁니다. 민간 선주들이 그걸 모를 사람들이 아니죠. 연락을 받고 들어간 민간 선주들이 상황에 대한 자세한 정보도 받지 못했던 거예요. (179p)


세월호는 전부 '왜'라는 물음에서 시작해서 '왜'라는 물음으로 끝납니다. (187p)


저희 유가족들은 지금 세월호를 두 번 타고 있습니다. (187p)


우리, 진심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국회에서 일했어요. 밤낮 가리지 않고 청와대에서 일했잖아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진도바닥에 앉아서 잠수부들하고 생활하고 있잖아요. 생명수당까지 다 줘야 해. 무슨 보상을 해주려면 그동안 우리 일한 것 다 쳐서 제대로 해줘야 해. 보상 이야기 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계산을 못하겠으니 당신들이 해보라고 권하고 싶어. 어떻게 계산할 수 있어. 어떻게 계산이 돼. 자식 잃은 게 계산이 돼? 정신 없이 쫓아다니며 하는 우리들 이 일들을 어떻게 계산할 수 있냐고. 건강 잃으면서 하는 이런 일들을 어떻게 계산할 수 있냐고. 우리가 지금 만들려고 하는 안전법과 그걸 위해 하는 우리들의 모든 행동은 숫자로 계산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188~189p)


그의 이야기는 통곡이 아니라 흐느낌조차 새오나오기 힘든 억눌린 슬픔에 가까웠다. 부모로서, 신앙인으로서, 시민으로서 끝도 보이지 않는 고통과 혼란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철이 지났다며 부랴부랴 짐을 싸는 이들이 보여준 애도의 깊이가, 잊지 않겠다던 약속의 호흡이 얼마나 얄팍한 것이었나 돌아보게 된다. 슬픔 속에서도 어머니는 한걸음씩 내딛고 있는 중이다. 그에게는 슬픔을 멈추지 않을 권리가 있다. (211p)


사건의 단추가 어디서부터 끼워졌고 어디서 끝날지 모르지만, 그 과정에서 잘못한 사람들이 제발 미안해하는 마음이라도 가졌으면 좋겠어요. 미안하다는 말을 듣더라도 우리 가족이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겠지만... 아, 그래도 미안해하기는 해야죠. (213p)


감정을 느낄 수가 없어요. 누가 아프거나 다쳤다고 하면 마음이 아파야 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멍해요. 그러고 조금 뒤로 물러나서 생각하면 '아, 이건 아픈 거구나. 아파해야 하는 거구나'라고 머리로 생각하고 그제서야 감정을 개입시키더라고요. (215p)


얼마 전 실종자 가족분이 유가족이 되는 게 소원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이 어찌나 슬프던지...(221p)


부모로서 작은아이 곁에도 있어줘야 하니까 살기는 살아야죠. 근데 남은 시간이 좀 빨리 갔으면 좋겠어요. 시간이 빨리 가서 이 삶이 정리가 됐으면 좋겠어요. (224p)


팽목항이라는 지옥의 공간에서 울부짖었던 부모들에게 제발 누구도 함부로 말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으니까. (222p)


대규모의 추모제가 열렸다. 가족들의 슬픔과 분노를 '우리'의 것으로 삼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모이기 시작했다. (335p)


일이 터지고 나서 손해사정사가 제일 먼저 달려오는 것을 보며 사람들을 경계하게 됐다고 말했다. 아무도 믿을 수 없었지만 누군가 믿어야 했고,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지만 무언가 해야 했다고. 그러나 이미 큰 사고를 겪은 자신들도 세월호 가족들을 어떻게 만나야 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겪어봤으니, 섣부른 이해가 오해로 미끄러지기 쉽다는 것도 알았던 것이리라. (336p)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믿고 수많은 목숨이 사라진 것처럼, 가만히 있다 보면 진실조차도 흩어져버릴 것을 예감했기 떄문이다. (336p)


울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함께 울어주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우는 것밖에 모르냐며 짓밟으려 드는 힘이 있음을 알아버렸으므로. (337p)


설령 체계가 흔들린다 한들, 죽은 이를 그리워하며 슬퍼할 시간조차 허락하지 못하는 사회, 진실을 밝혀달라는 요구만으로도 불온해지는 사회라면, 흔들어 다시 세워야 하는 것이 마땅했다. (338p)


가족들은 더이상 대통령에게 만나달라고 애원하지 않기로 했다. 청와대는 차라리 조사하기 위해 다시 찾아와야 할 곳이었다. (340p)


8시52분. "배가 침몰하고 있어요." 최초 신고가 있은 후, 배에서 나온 방송은 '가만히 있으라'는 내용이었다. 아이들은 각자의 불안을 달래며 서로를 응원했다. 9시 36분. "살아서 만나자!" 연안경비정 123함정이 도착했다. 구명조끼를 챙겨주며 아이들은 구조를 기다렸다. 10시 17분 "지금 더 기울어..." 구조는 없었다. "난 꿈이 있다고!" 국가는 그 꿈들을 버렸다. 이 시간들은 아직 하나의 기억이 되어 묻힐 수 없다. 왜 우리가 이렇게 죽어야 했느냐고 묻는 희생자들에게 건넬 대답을 구하기 전까지 4월 16일 지속된다. (341~342p)


침몰의 원인을 되짚기 위한 항적도도 완성되지 않았고, 교묘하게도 침몰 시점에 즈음해 멎은 각종 기록장치들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다. 이제 밝혀야 할 진실도 물어야 할 책임도 더는 없는 듯 세앙이 굴러간다. 그러나 4월 16일은 떠나온 과거가 아니다. 시간은 흘러가다가도 다시 그 날로 붙들려간다. (34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