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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공부/칼럼읽고쓰기

IT칼럼니스트를 꿈꾸다.

학창시절 나는 소설을 좋아했다. 사건이 만들어내는 적당한 긴장감이 좋았다. 주변에서 독서를 강조했다. <홍차왕자>, <아르미안의 네 딸들>과 같은 순정만화에 빠져있던 코흘리개 시절을 감안하면 소설 읽는 내 자신도 꽤 괜찮다 여겼다. 그 생각은 대학을 지나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이어졌다.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러자 소설에 치우친 독서의 부작용이 튀어나왔다. 요점 없는 전개, 모호한 단어 사용, 부족한 배경지식, 무엇보다 독해력에 문제가 있었다. 소설은 인물의 감정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전체적인 맥은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독해법은 철학, 인문, 사회, 과학 등 논리적 이해를 요하는 책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결국 작가의 의도를 파악해 내 생각을 풍성한 글로 풀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나는 '칼럼스터디'를 선택했다. 칼럼은 주장과 근거가 명확한 설득의 글이다. 논리적인 사고, 효과적인 글의 전개방식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더불어 신문 칼럼은 일상과 밀접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니, 세상을 보는 눈도 틔울 수 있으리라 여겼다.

 

짐작대로였다. 스터디 구성은 알찼다. 신문 읽기-토론-메인 칼럼 읽기-주장/키워드 찾기-토론-배경지식 공유-토론-요약과 단상 적기가 이뤄졌다. 하나의 주제가 던져질 때마다 스터디 구성원들은 자유롭게 발언했다. 다양한 직업처럼 의견도 여러 가지였다. 그 와중에 내게는 생소한 지식들이 참여자들로부터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그걸 받아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스터디의 핵심은 '요약'이다. 우선 메인 칼럼을 읽고 각자가 요약을 하고 이를 발표한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시간의 압박도 상당했다. 하지만 회차가 거듭되면서 '오늘은 어떤 피드백을 받을까?'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요약은 혼자하기 쉽지 않다. 아니, 특별한 계기가 있지 않는 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요약만큼 독서와 글쓰기에 기초를 이루는 작업은 없다. 유시민이 <글쓰기 특강>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논리적 글쓰기의 첫걸음은 텍스트 요약에 있다. 스터디에서는 다양한 방식의 요약을 시도해 볼 수 있다. 문단별 주장을 뽑아내 연결하기, 저자의 흐름대로 정리하기, 내 생각부터 던져보기, 주장과 근거로만 요약하기 등. 나는 언제나 무 자르듯 깔끔하게 떨어지는 요약을 선호했다. 그런데 스터디를 하면서 '과연 필자의 주장을 한 줄로 뽑아내는 게 요약인가?'라는 피드백을 받은 후 여러 방식을 시도 해보고 있다.

 

'단상적기'도 중요하다. 단상은 칼럼의 주제를 스스로의 글로 풀어보는 과정이다. K-POP스타에서 심사위원이 기존 가요를 멋지게 편곡해 불러낸 후보를 극찬할 때 "한 곡을 씹어 소화해 본인의 노래로 만들었다"고 평하곤 한다. 단상이 바로 그 단계다. 단상에는 칼럼 주제에 대한 이해, 개인의 배경지식, 더 나아가 본인의 논리가 녹아있다. 스터디 첫 날 내 단상은 단 다섯 문장이었다. 복지와 증세에 대한 칼럼을 읽고 연말정산에 대해 한 문단 적은 게 다였다. 지난 주 마지막 스터디에서는 미국의 금융패권에 대한 글을 읽고, 스무 개의 문장으로 세 문단을 구성했다. 서론-본론-결론의 형태를 갖춘 것이다.

 

이제 칼럼 스터디가 한 사이클을 돌았다. 정치, 경제, 사회, 예술, 국제, 과학 분야를 다뤘다. 평소에 들여다보지도 않았을 AIIBTHAAD 등을 공부했다. 뉴스에 대한 이해 역시 상승했다. 모임에서 연예인이나 날씨가 아닌 시사주제를 던질 수 있는 자신감은 덤이다. 무엇보다 편독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제 내 책장에는 <코스모스>, <국가론> 등 전에는 쳐다보지도 않았을 책들이 들어차고 있다.

 

마지막 칼럼스터디에서 우리는 방향성을 공유했다. 각자의 분야에서 칼럼니스트가 되자는 것. 마침 회사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한 주에 한 편씩 칼럼을 써야 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 이제 상상해본다. 나의 IT지식을 칼럼으로 적어 기고하는 모습, 그 칼럼이 사람들의 사고를 바꾸는 모습. 생각만해도 설렌다. 소설만 읽던 내가 이제 'IT칼럼니스트'가 되는 새로운 꿈을 꾼다. 칼럼스터디가 나를 변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