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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일][6월26일] 소설 <투명인간>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만수이야기

 

소설 <투명인간>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만수이야기

    

 

 

 

마포대교 위에 한 사람이 서 있다. 만수다. “뭔 아가 대가리만 절구통겉이 크고 팔다리는 쇠꼬챙이겉이 빌빌 돌아가고 저카나. 저기 지대로 커서 인간이 될랑가 걱정이구마.”(p.12) ‘만복을 누리라는 만수가 일복만 타고났다는 것을 알기도 전, 할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였다.

 

그는 많은 것을 가졌다. 가족들을 보살펴야 하는 도리, 돈을 벌어야 하는 의무, 회사를 지켜야 할 책임 등이다. 동생이 나오는 바람에 엄마 젖을 물 틈도 없었고 형의 공부를 뒷바라지하기 위해 농사일에 매진했다. 근면성실을 천성으로 알고 부지런히 돈을 벌어 동생들을 공부시켰다. 그 시간 동안 만수에게 돌아온 것도 있다. 형의 죽음, 생사조차 알 수 없는 동생의 아들이다. 가스에 중독된 둘째 누나와 무능한 매형, 금지옥엽 보살폈던 막내를 겁탈해 아이를 갖게 한 처남도 있다. 무엇을 빼앗기든, 그 대가로 어떤 것이 주어지든 착한 얼굴로 받아들이는 자, 만수다.


오직 가족을 위해 희생할 줄만 아는 만수의 삶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작가는 아버지의 말을 통해 그를 옹호한다. “개체의 생물학적 연장인 핏줄에 집착하고 연연하는 것이 세계를 사람이 살 만한 곳으로 바꿔나갈 책무를 지닌 깨어 있는 인간으로서 온당한 태도인가...(중략)...나는 바로 그게 우리가 바꿔나가려 했던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라고 반론할 것이다.” (p.162, 163)

 

소설 <투명인간>에는 여러 명의 가 등장한다. 육남매 한 명 한 명에서부터 아버지, 어머니, 석수의 아들 태석이의 까지.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던가. 그 누구도 - 나를 세상에 내보내준 부모까지도 - 본인이 아닌 이상 타인의 속은 알기 어려운 법이다. 작가는 이런 한계를 가 말하는 1인칭 시점의 이야기들로 풀어낸다.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것이 특징인 성석제 작가다운 방식이다.

 

여러 시점이 이야기 흐름을 방해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소설 <투명인간>만큼 주·조연을 명확히 나눈 방식으로 김만수의 삶을 설명하긴 어려울 것이다. 주연-만수-은 말하지 않는다. 오직 조연들이 본인에 대해 말한다. 그 이야기들이 만수를 이해하는 근거가 된다. 예를 들어, 만수가 돈을 벌어와 동생 석수에게 주자 석수는 이런 생각을 한다. “비용을 대기 위해 형이 세차를 하든 공장의 부속품이 되든 남의 뒤를 닦아주든 상관없었다. 형에게 타고난 노예근성이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었다. 그런 형이 있다는 것 또한 나의 조건이다.(p.218)” 석수는 어리숙한 만수를 비아냥대며 놀리듯 형이라 부른다. 만수는 이런 석수의 본심을 알아채지 못한 채 형이라는 말에 감격하기까지 한다. 그저 독자들만이 그런 만수를 보며 먹먹한 가슴을 칠 뿐 이다.

 

인물은 저 혼자 인물로 나서 인물로 살다가 죽는가? 아니다. 처음부터 인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인물은 우리 각자가 만드는 것이다.” <왕을 찾아서, 성석제> (문학동네, 2011) 어쩌면 만수의 삶은 그 스스로 자처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고통을 그저 받아들이는 투명인간으로 남기를 희망했는지도. 그것이 성석제 작가가 <투명인간>을 통해 알리고 누군가의 삶이었는지도 모른다.

 

 

 

(원고지 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