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위하여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그녀의 결혼식 후, 3년 만이었다. 신랑이 나이가 좀 많아서 신혼 없이 바로 2세를 계획해야겠다고 쾌활하게 웃어보였던 그녀였다. 결혼식 이후 얼마나 지났을까. 장문의 카톡이 왔었다. “정하야, 나 암이래.”
혈액암 이라고 했다. 일명 백혈병. 20대의 마지막을 막 지난 시점이었다. 회사를 휴직하고 병원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왜 이런 일이 자기에게 생겼는지 모르겠다며 친구는 말을 잇지 못했다. 다 나으면 연락하겠다는 말을 끝으로, 우리는 당분간 연락할 수 없었다.
홍콩 여행사진을 SNS에 올리자 연락이 왔다. 너 엄청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다며 한 번 만나자고 했다. 오늘이 그 날이었다. 집을 나서기 전 걱정이 많았다. 메르스 때문에 나라가 들썩이는데 이 녀석이 외부로 나와도 되는 건지, 털모자라도 쓰고 나오면 도대체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 건지, 건강이 좋아졌다고는 하는데 얼마만큼 좋아졌냐고 물어봐도 되는 건지. 보지 못한 시간만큼 걱정이 깊었다.
“야, 잘 지냈냐!” 예전의 유쾌했던 모습이었다. 머리가 많이 짧아졌다더니 다행히 모자를 쓸 정도는 아니었다. 상큼한 단발머리를 하고 예전의 그녀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네 결혼식에 못 가서 미안하다.”는 게 그녀의 첫 마디였다.
그간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했다. 동생의 골수를 이식받았고, 집을 무균상태로 만들어두고 통원치료를 하고, 3년간 신랑과는 주말부부로, 자신은 친정집에 있으며, 이 하나만 흔들리거나 배가 조금만 아파도 종합병원에 가야하는 자신의 상태를 담담하게 들려줬다. 신랑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혹여나 실수가 될까봐 묻지 못하고 있었던 2세 이야기도 먼저 들려줬다. 병원에서 ‘마음을 놓는 게 나을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래서 큰 희망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정상 컨디션으로 건강을 회복하면 ‘노력 하겠다’라고.
“참 장해! 우리JH 장하다!”라는 말 밖에는 할 수 없었다. 같은 병실을 썼던 5명의 여자환자들 중 자신을 포함 딱 2명만 살아있다는 말을 덤덤하게 하는 그녀였다.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그 시간 속에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고통을 느꼈을까. 헤어지면서 약속 장소로 가는 길에 사갔던 과일을 몇 개 손에 들려줬다. ‘김정하 주부되더니 이런 것도 챙긴다’며 웃어 넘기는 친구에게 이거 밖에 할 수 없어서 미안했다.
고마웠다. 친구가 건강하게 지내줘서. 그리고 미안했다. 그간 너무 무심하게 내가 지낸 것 같아서. 나라가 알 수 없는 균으로 시끄럽다. 누군가 아픔으로 죽음의 목전까지 가고, 그걸 경험하고, 또 그 모습을 주변에서 봐야하는 슬픈 일들은 없으면 좋겠다. 친구를 위해 기도해야겠다.
(원고지 : 7.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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