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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공부/100일 글쓰기

[2일][5월19일] 새로운 둥지를 찾아서

 

새로운 둥지를 찾아서

 

블로그를 떠나려 한다. 정확히는 네이버 블로그를 떠나려 한다. 첫째는 아는 혹은 알던 사람들의 기막힌 간섭 때문이요, 둘째는 불친절한 서비스에 대한 촌스러운 고집 때문이요, 마지막은 호객행위와 왕서방한테 팔려버린 내 개인정보 때문이다. 어제, 오늘 천우신조로 <SNS를 이용한 출판마케팅> 과정을 수강했다. 출판업 종사자는 아니지만 업무의 하나로 홍보를 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수업을 들으면서 계속 생각했다. 지금 블로그를 떠나는 게 맞을까? 수업에서 여러 매체를 다뤘지만 그 중 네이버를 가장 밀도 있게 분석했다. 그 정보들을 전략적으로 활용한다면 무궁무진한 기획안을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나는 네이버를 통해 블로거가 됐다. 글을 쓸 곳이 필요했다. 기껏 적었는데 혼자 보기에는 아까웠다. 지적은 싫었지만 동조는 필요했다. 레이아웃, 스킨 설정, 위젯 만들기 등 예쁘게꾸미고 싶은 내 욕구를 충족시킬만한 기능들도 꽤 있었다. 몇몇 오류가 있었지만 에디터 툴은 편리했다. 그렇게 8년 정도를 이곳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이 안에 적어놓은 내용들은 대학생 때 파도를 타며 일촌을 맺던 그것과는 달랐다. 무언가를 보고, 읽었던 데서 시작했지만 점점 내 사유(라고 하기에는 좀 부끄럽지만)를 담았다. 애증하는 자아성찰메뉴에는 뻔하디 뻔한 취업, 결혼에 대한 고민부터 고객, 회사, 사회를 갈기갈기 찢어놓는 글까지 다양했다. 그렇게 쌓인 포스팅이 10만 건에 육박한다.

 

그래서 아는 혹은 알던 사람들이 블로그 주소를 묻기라도 하면 망설였다. 함께 목욕을 하는 부끄러움이 엄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글이 전체공개라는 상황에 착안, 주소를 알려주고 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공격들이 시작됐다.

 

바야흐로 작가라는 청운의 꿈을 안고 대기업 문을 박차고 나온 2010. 백수 생활의 기쁨을 쏟아내는 포스팅으로 대신할 때였다. 마구 써내려갔다. 회사에서 겪었던 불합리함을 성토하자, 퇴사했으면 그만이라며 글을 내리라는 엄포의 댓글이 달렸다. 친구들과 즐거운 한 때를 포스팅하자, 이 얼굴로 사진을 올리냐는 쪽지가 날아왔다. 차분하고 정상적인(?) 글을 쓸 때는 매번 자기만의 분석으로 까는지인도 있었다. 쪽팔리고 화가 나자 그러려니가 안됐다. 맞대응을 하자니 치졸해 보였고 그들의 의견에 동조하자니 내 마음이 분노했다. 한 마디로 마음의 그릇이 작았다. 촌스럽고 어설프지만 이게 첫 번째 이유다. 간섭하는 몇몇 지인들.

 

여러 이유로 네이버를 연구해야 할 때가 있었다. 법인명으로 계정을 생성해 광고를 해야 했고, 쓴소리를 하는 블로거들과 소통해야했고 내 필력을 법인 블로그에 뽐내야 했다. , 개발자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해당 포털에서 제공하는 검색 로직을 파악해야 할 때도 있었다. 이 포털에 근무하는 지인에게 전화를 하고, 공문을 보내는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하던 그 때, 나는 알게 됐다. 이곳은 CS(Customer Service)에 비중을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을.

 

우선 고객센터 전화번호가 없다. 검색을 해보면 떠돌아다니는 전화번호가 있긴하나 그 번호를 통해 상담원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1번 누르세요’ ‘우물정을 누르세요시키는 대로 해도 육성은 없고 기계음만 들려온다. 그럼 사용자들의 의견을 듣는 창구는 무엇이냐. 바로 지식IN’이다. 페이지를 여러 번 넘어가 만나게 되는 자주하는 질문 리스트에 내가 하고 싶은 질문이 없다면, 곧장 지식IN에 등록하게 돼있다. 각 계 전문가들이 답을 달고는 있지만 (누구나 다 알 듯) 대부분의 답변은 초등학생에 의해 이뤄진다. 내공 상납과 함께.

 

고객 서비스 정책이 지식IN으로 수렴한 데는 분명 비즈니스적 이유가 있을 터. 지식IN 콘텐츠 키우키? 아마도 모든 정보를 DB화해 검색 채널의 단일화를 꿈꾸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셜미디어가 유통의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시점에 포털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인가. 굿 럭.

 

이유는 또 있다. 포스팅이 많아질수록, 방문자가 많아질수록 블로그 파세요. 얼마 드릴께요의 호객 행위들을 겪게 된다. ‘그래, 드디어 내 블로그의 진가를 알아 봤구나싶기도 한데 누군가 손품들여 창조한 글들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아 반감이 든다.

 

이외에 누군가에게 탈탈털린 개인정보도 한 몫 한다. 한 때 내 블로그에는 수십 건의 야동과 섹시한 언니들 사진이 대량 올라왔었다. 해당 포스팅을 삭제하고 비번을 바꾸는 등의 조치는 취했지만 근본적인 이유를 알아야 했다. 비번 탈취, 서버 노출, 관리 소홀, 예상되는 시나리오는 무궁무진했다. 개발자 경력을 십분 발휘해 접속IP와 시간을 알려달라고 포털업체에 요청했다. 돌아온 답은 블로그를 초기화 하라였다. 이런 동문서답 같으니라고.

 

이러한 이유들로 나는 떠나려고 한다. 사실 떠나기 위해 이곳에 올렸던 글들을 백업하는 작업을 근 6개월간 지속해왔다. 대부분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들이지만 내 기억과 추억을 허무하게 날릴 수는 없지 않은가. 블로그를 떠나려고 메뉴들을 정리하고 이웃 블로그를 둘러봤다.

 

손가락이 떨린다. 걱정도 된다. 그러나 새로 태어나는 기분으로 임하자고 마음을 다잡는다. 세컨드(로 운영하던) 블로그를 키워볼까? 서버와 도메인을 사서 홈페이지를 따로 만들까? 후자에 비중을 두고 신랑에게 물었다. 돈이 있어야 한단다. 세컨드 블로그를 키우는 방향으로 가란다. 새로운 둥지를 찾아 나는 떠난다.

 

(원고지 : 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