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에 대하여
친정에 다녀왔다. 엄마와 부엌에서 요리하며 도란도란 얘기를 했다. 지방이전 문제로 회사가 시끄럽다는 데서 시작해 신랑이 장어즙을 먹고 있다는 것까지, 고기를 굽고 상을 다 차릴 때 즈음, 오빠가 도착했다. 오빠와 언니 그리고 한 살배기 조카 윤이다.
발까지 연결된 일명 ‘우주복’을 입은 윤이는 침을 질질 흘리며 웃었다. 밖에 나가면 다들 아들이냐 묻는다던데, 딸이라는 걸 알리기 위해 언니가 머리를 묶어줬다고 했다. 몇 가닥 없는 머리카락을 묶은 모습이 무척 귀여웠다. 2주전에 봤을 때는 찡찡대기만 했는데 이제는 혼자 엎드려 고개도 든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우르르까꿍을 해줄 때마다 어찌나 잘 웃던지. 나도 빨리 아가를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실 언니는 아가를 무척 힘들게 가졌다. 고된 업무로 한 번 유산을 경험한 것이다. 친구들 중에도 유산을 한 수가 꽤 된다. 요즘 여성들이 식습관도 좋지 않고 운동을 하지 않고 하이힐을 즐겨신는 등 여러 가지 후천적 요인으로 건강이 많이 좋지 않아서 이런 일들이 발생한다고 한다. 사실 그래서 나도 걱정이 많이 된다.
지난 달 부터 신랑과 몸에 좋다는 것들을 챙겨먹고 있다. 아침에는 유산균과 두유, 식후에는 엽산, 자기 전에는 장어즙과 흑염소즙 까지. 속 모르는 동료들은 얼마나 건강하려고 그런걸 먹냐고 하는데 사실 이게 다 2세를 위한 준비다.
예전에 어머님들은 밭 메다가도, 집안일 하다가도 애가 들어섰다고 한다. 너무 애가 많아서 문제였다고도 하는데, 요즘은 아가 하나를 갖는 것도 일이다. 반면 임신이나 출산도 요즘에는 매뉴얼화가 되어있다. 임신 전에는 무엇을 먹고, 어떤 행동들을 해야 하며 임신 후 1주차부터 10달까지 각 주마다 해야 할 일과 먹어야할 것들에 대해 정리되어 있는 책들도 참 많다. 준비된 것들이 많아 점점 더 의지하게 되는 게 약간은 부자연스럽기도 하다.
집에 오는 길, 신랑과 함께 다짐했다. ‘우리 조급해 말자’, ‘둘이 있을 때 더 많이 즐기자’라고. 깔깔거리며 웃던 조카 얼굴이 생각난다. 조만간 생길 우리 아가 얼굴도 마음대로 그려본다. 그리고 우리는 장어즙과 흑염소즙을 마신다.
(원고지 : 5.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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