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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담은 책장/발췌

[발췌] 너의 목소리가 들려

아니, 어쩌면 다들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냥 눈감고 있는지도.,,,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로서는 아무런 답도 알아낼 수가 없었다.(102p) 

 

함구증의 시절에 제이는 내 욕망의 통역자였다. 이제 그는 내 고통을 읽으려 하고 있었다. 나느 쉽게 읽고 던져버릴 수 있는 대중소설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131p)

 

"뛰지 마. 네가 이 우주의 중심이야."(134p)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나무를 베기 전에 나무에게 용서를 구했대. 그들은 나무가 사라진다는 것이 뭘 의미하는지를 알았던 거야. 나무에게 용서를 구함으로써 그들은 나무의 부재를 받아들일 수 있게 돼. 평생 보던 나무를 베어 없앤다는 것은 자기 마음의 일부를 잘라버리는 것과 같아. 그들에겐 화폐가 없었어. 사물과 그들은 직접적으로 맺어져 있어."(139p)

 

제이의 영혼은 위스키 상자로 쌓은 탑을 다시 필요로 하고 있었다. 타고 올라 자신이 떠나온 세상을 내려다볼 위태로운 탑. 그것은 필경 무너질 것이었고 나는 다시 한번 그 추락의 목격자가 될 것이었다.(155p)

 

바다, 그것은 거대한 없음이었다. 제이는 자신이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와 존재하지 않게 될 미래를 떠올렸다. 그 순간 제이가 느낀 감정은 공포에 가까웠다. 시작도 끝도 없는 우주의 시간이 바다라는 형태를 빌려 나타난 것만 같았다.(160p)

 

"스트레스를 풀려고 폭주를 한다고? 그건 스트레스가 아니야. 가게 주인한테 쟁반으로 머리통을 맞았을 때 느끼는 게 스트레스야? 장난으로 엉뚱한 집에 배달시키고 위에서 내려다보며 킬킬거리는 애새끼들을 볼 때 느끼는 게 스트레스야? 껀수 잡으려고 만만한 우리 잡아서 반말 찍찍하면서 딱지 떼는 짭새 만나면 스트레스야? 아니야. 스트레스는 내일 시험이 있는데 공부가 충분치 않을 때, 약속시간에 늦었는데 길이 꽉 막혀 있을 때, 그런 때나 느끼는 거야. 그럼 우리가 느끼는 건 뭐야? 분노야. 씨발, 존나 꼭지가 돈다는 거야. 그래, 우리는 열받아서 폭주를 하는 거야. 뭐에 대해서? 이 좆같은 세상 전체에 대해서. 폭주의 폭자가 뭐야? 폭력의 폭자야. 얌전하면 폭주가 아니라는 거지. 엄청난 소리를 내고, 입간판을 부수고, 교통을 마비시킬 때, 그제야 세상이 우리를 보게 되는 거야. 폭주는 우리가 화가 나 있다는 걸 알리는 거야. 어떻게? 졸라 폭력적으로. 말로 하면 안 되냐고? 안 돼. 왜? 우리는 말을 못 하니까. 말은 어른들 거니까. 하면 자기들이 이기는 거니까 자꾸 우리보고 대화를 하자고 하는 거야."(163p) 

 

위험하기 때문에 오토바이를 선택한 이 지킬 박사들은 이제 안전의식과 준법정신을 입증해야만 했고 그러자면 자신들 내면에 잠복해 있는 하이드를 죽여야 했다. (217p)

 

인간의 일생이라는 것은 고작해야 과거에 읽은 어떤 소설보다 조금 더 잘 기억이 나는 한 권의 책에 지나지 않는다고. (239p)

 

그런데 내 눈앞의 Y는 볼이 움푹 꺼진 비쩍 마른 중년 여자였다. 생경하고 낯설었다. Y가 아니라 Y 역할을 맡은 배우를 보는 기분이었다. (241p)

 

"가장 자주 듣는 말은 뭐니?"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야 만다, 예요." (246p)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도 이런 일을 막지 못했다는 것에 자괴감이 들었다. 소설은, 그러니까 소설가는 도대체 뭘 할 수 있는 것일까. ... "예술가는 작업하지 않는 고통이 작업의 고통을 넘어서지 않는 한 일하지 않는다." (254p)

 

"겪어서 안 될 일은 아예 겪지 않는 게 좋다."(258p)

 

불면에 시달리는 인간의 새벽은 영원처럼 길다. 마치 매일 법정에 소환되는 피고가 된 기분이다. 운이 좋은 날에는 심리가 열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출두는 해야 한다. 변호사 없이 이뤄지는 이 신문의 검사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모든 것을 훤히 아는 추궁자의 가혹한 신문의 검사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모든 것을 훤히 아는 추궁자의 가혹한 신문은 끝날 듯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 어느 새 먼동이 터온다. (259p)

 

그녀의 내부에 살고 있는 이 검열자는 보편 윤리의 규준을 내면화한 철학자라기보다 종교재판의 심판관을 닮았다. (267p)

 

"몸속에 있어도 모른다면서요? 암 말이예요. 우리 같은 애들도 사람들은 전혀 못 봐요. 투명인간처럼 쓱, 지나가버리는 거죠. 좀 거북하고 불편하고 뭐 그럴 뿐이겠죠. 정 심하면 도려내면 되고."(273p)



- 2012년 4월 19일 0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