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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공부/100일 글쓰기

[65일][7월21일] 내 인생의 베이킹


내 인생의 베이킹

    

 

2009년 겨울이었다. 서울 중심지에 위치한 프로젝트에 투입되면서 문화센터 쿠킹클래스를 다니기 시작했다. 바닐라쿠키, 바나나타르트, 고구마케이크, 플럼스콘, 초코롤케이크. 색감과 식감을 겸비한 다양한 간식거리들을 만들면서 난생 처음 무언가를 만드는 재미를 알기 시작했다.

 

문화센터 취미반 수료 후 몇 달 그리고 몇 년, 생활에 이끌린 시간을 보내면서 그 재미를 잊은 듯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이 들어 꼭 우리만의 베이커리를 열자고 농담처럼 말하던 친구들 사이에 제대로 된 쿠킹클래스 다니기열풍이 불었다. 재작년 11월의 일이다.

결코 저렴하지 않았다. 재료비와 포장비가 모두 포함된 꽤 비싼 수강료를 지불해야 했다. 제과 수업 첫 날, 동갑내기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굴지의 금융회사를 다니다 쿠키와 케이크에 빠져 회사를 그만두고 프랑스 제과학교에 입학, 수학과정을 마스터한 후 금의환향 했다고 했다. 선생님의 환상적인 인생역전 이야기와 고소한 빵 내음, 달달한 쿠키의 맛, 잘 뽑아낸 커피는 점차 꽤 비싼 수강료를 잊게 했다. 더불어 야무지게 배우자는 의욕을 불어넣었다. 그렇게 나는 13년도 겨울, 제과제빵의 세계에 정식으로 입문했다.

 

첫 시간은 미니타르트 3종세트 만들기였다. 무화과를 올려 씹히는 맛을 더한 무화과타르트, 초코렛 가루로 달달함을 담뿍 담은 초코타르트, 레몬즙으로 상큼함을 배가시킨 크림치즈타르트가 주인공이었다. 사 먹을 때는 한 입에 쏙들어가 3초면 사라지던 그 타르트를 직접 만드는 것은 여간 내기가 아니었다. 반죽이 균일하지 않아 틀 위에서 찢어지는가 하면, 초코렛 가루를 섞다 한눈을 팔아 반죽이 덩어리로 변하기도 했다.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선생님과 수업 동료들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타르트 3종세트 완성! 먹기 아까울 정도의 비주얼을 가진 아이들이 탄생했다.

 

미니타르트를 시작으로 이어진 수업들도 역시 쉽지 않았다. 중탕 온도를 못 맞춰 초코렛을 숯으로 만드는가 하면, 예열을 하지 않고 오븐에 빵을 돌려 딱딱한 돌덩어리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물을 쏟기도 하고 핸드믹서를 잘못 놀려 친구들 얼굴에 버터덩어리를 통째로 묻히기도 했다. 그렇게 좌충우돌 사고치기를 몇 번, 아픈 손목을 돌려가며 버티기를 몇 시간, 연습하고 다시 만들기를 몇 회, 예전에는 감히 상상하지도 못했던 것들을 내 손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굉장한 성취감이었다. 게다가 내가 만든 빵과 쿠키들을 맛있게 먹을 가족이나 친구들을 생각하면 더없이 행복했다. 카푸치노토르테, 마카롱, 유자크랜베리케이크와 초코청크쿠키, 홍차와 녹차, 검은깨로 맛을 낸 컵케이크까지, 버터와 설탕으로 뒤덮인 것들이 선사할 불어날 살에 대한 두려움 따위는 느낄 새가 없었다.

 

베이킹 아카데미 수료 후 일 년이 지났다. 돌이켜보면 취미로 쿠키를 만들던 09년와 임하는 자세부터 달랐던 시간들이다. 이제는 가족이나 친구들 선물도 직접 만든 쿠키와 빵들로 채우고 있다. ‘책 읽다가 빵 굽고 친구들과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사는 삶이 정말 가능하겠구나 싶다. 오랜만에 굽고 있는 쿠키 반죽이 집 안을 온통 달달한 생각으로 채우고 있다. 행복하다.


(원고지 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