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끝없는 공부/100일 글쓰기

[9일][5월26일] 출판사의 추억

 

출판사의 추억

 

오후 졸린 눈을 부비며 출판사들을 검색하고 신간도서들을 살펴봤다. ‘모르는 출판사가 많네.’ 처음보는 출판사가 참 많았다. 나에게 낯선 이름들의 출판사 홈페이지를 하나씩 찾아봤다. 하나, 둘 홈페이지를 클릭할때마다, 마음에 묻어뒀던 기억들이 조금씩 수면위로 올라왔다.

 

2010년 겨울, 글쟁이로 밥을 먹고 살아야 겠다 싶었다. IT고 나발이고, 지금 하고 있는 건 나와 맞지않은 일이라 확신했다. 무슨 용기였는지 오래 동안 활동했지만 일면식도 없는 독서동호회 주인장에게 연락을 했다. 나는 지금 이런 상태다, 나는 책을 읽고 싶다, 그리고 글을 쓰고 싶다라고 털어놨다. 그 분 역시 처음보는 내 얘기에 경청하며, 그래 좋은 생각이다, 할 수 있는데까지 도와주겠다고 답해주셨다. 그리고 그 분은 정말로 약속을 지켰다.

 

한달 뒤, 난 그 분의 손에 이끌려 면접을 보러 갔다. 선유도에 있는 한 출판사였다. ‘하루가 멀다하고 도산하는 출판사가 많은데 10년 넘게 책 잘 내고 있는 탄탄한 출판사라는 소개를 받은 후였다. 문이 열렸다. 모든 벽면에는 책이 빼곡했다. 햇살을 받으며 책을 원없이 읽는 모습을 매일 꿈꿨던 나였다. 책냄새, 한적한 공간, 자그마한 무엇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없었다.

 

대기업에서 일하던 처자야, IT분야에 있었기 때문에 시스템 이쪽도 빠삭해, 공부도 당연히 잘했지, 사장님이 한 번 잘 이끌어봐! 독서동호회 주인장이었던 그 분은 이런 말들을 사장님께 남기고 홀연히 그곳을 떠났다. 그리고 내게는 책상이 하나 배정됐다. 그 날 나는 출판사 홍보팀 김팀장이 되었다.

 

사장님이 가이드라인을 주려 할 때면 먼저 해보겠다며 호기롭게 일을 추진했다. SNS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했으니 계정을 만들고 관리하는 건 식은죽 먹기였다. 출판사 SNS 계정을 생성하기 시작했다. 다른 출판사에게 보낼 안내 메일도 HTML로 구성했다. 그리고 여기 저기에 그 출판사에서 출판한 책들을 알리는 글을 올렸다. 이웃 출판사 사장님들께 인사를 다니고 책 표지를 디자인하는 업체에 방문하기도 했다. 우울할 때마다 찾아가던 교보문고 였는데, 출판사에 있으니 교보 영업직원들이 직접 찾아왔다. 번역서를 내겠다고 직접 찾아온 예비저자도 만났다. 이렇구나, 이렇게 일하는 거야, 출판사는 이렇게 돌아가는 곳이야... 신기했다. 무엇보다 황홀했다.

 

하지만 그 날은 나의 출판사 근무 첫 날이자 마지막 날이었다. 다음 날, 출근한 나를 앉혀두고 사장님은 말씀하셨다. ‘JH씨는 내가 데리고 있기에는 너무 큰 그릇의 사람이야라고. ‘요즘 취업도 힘들다는데, 미안해.’라는 말도 잊지 않으셨다. 집에 오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통곡을 했다.

 

돌이켜보면 사장님이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이해가 된다. 배운게 도둑질 뿐이라고, 대기업에서 지낸 몇 년을 돌이켜보며 나는 사장님을 대면한 첫 날, 휴가는요? 여름휴가는 별도인가요? 4대보험은요? 퇴직금도 나오는거죠? 등의 아주 철딱서니없는 질문들을 쏟아냈다. 게다가 그 출판사는 소속 작가가 있는 게 아니고 외부 원고를 청탁받아 출판하는 형태였기 때문에 사장님 외 기타 운영인력이 없는 상태였다. 만약 내가 직원으로 등록되면 법인 신고를 해야했고 세금을 포함한 각종 비용을 납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철없고 출판경력도 없는 나를 직원으로 두기에 사장님 입장에서는 지출 및 관리 비용이 만만치 않았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시에 사장님을 무척 원망했다. 꿈 속에서나 가능했던 출판사에서 일했던 단 하루였다. 그 일을 겪은지 벌써 5년이 흘렀다. 언제그랬냐는 듯 나는 다시 IT 분야로 돌아왔다. 그리고 여전히 책을 읽고 글만 쓰며 사는 삶을 꿈꾼다. 사장님께 연락을 한 번 드려야 겠다.

 

(원고지 : 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