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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담은 책장/발췌

[발췌]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신은 완전한 인간을 창조하지 않았어, 대신 완전해질 수 있는 상상력을 인간에게 주었지.(228p)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말하면서도 무슨 기분이 이렇게 좋은 걸까, 라고 말하는 기분이었다.(233p)

 

돌이켜보면 그곳이 나의 딸기밭이었고, 스무 살의 우리는 단지 그 사실을 실감하지 못했을 따름이었다.(238p)

 

불과 2년전까지 자위의 방법 외에 별다른 고민이 없던 친구였다. 인간은 변한다. 그리고 그것은 세월이 가져다주는 전염병이다. (240p)

 

어머니는 늘 사랑하는 사람을 택할 때나 그 앞에서 보이는 행동을 조심하라 일러주었지. 거짓이 쌓이면 잔실이 될 수 있다고....숙제처럼 밀려 있던 앞날과, 아무런 검사도 받지 못한 지난날들이 엎드린 시신처럼 자신의 얼굴을 감추고 누워 있던 밤이었다.(242p) 

 

환한 오전이었는데 불 꺼진 밤의, 회전목마에 홀로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255p)

 

너무나 빨리 이뤄진 결정이었으므로 심지어 나 자신과도 상의를 하지 않은 기분이었다. (259p)

 

냉대를 받은 인간의 마음은 차가운 눈물을 흘린다는 사실을... 관심과... 사랑을 받은 인간의 마음만이 더없이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285p)

 

사용할 일이 전혀 없는 지식을 왜 배우는 걸까. 이를테면f(x+y)=f(x)+f(y)를 가르치면서도 왜, 정작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는 것인가. 왕조의 쇠퇴와 몰락을 줄줄이 외게 하면서도 왜, 이별을 겪거나 극복한 개인에 대해선 언급을 하지 않는가. 지층의 구조를 놓고 수십 조항의 문제를 제출하면서도 왜, 인간의 내면을 바라보는 교육은 시키지 않는 것인가. 아메바와 플랑크톤의 세포 구조를 떠들면서도 왜, 고통의 구조에 대해서는 한 마디 언급이 없는가. 남을 이기라고 말하기 전에 왜, 자신을 이기라고 말하지 않는 것인가. 영어나 불어의 문법을 그토록 강조하면서 왜, 정작 모두가 듣고 살아야 할 말의 예절에는 소홀한 것인가. 왜 협력을 가르치지 않고 경쟁을 가르치는가. 말하자면 왜, 비교평가를 하는 것이며 너는 몇 점이냐 너는 몇 등이냐를 외치게 하는 것인가. 왜, 너는 무엇을 입었고 너는 어디를 나왔고 너는 어디를 다니고 있는가를 그토록 추궁하는가. 성공이 아니면 실패라고, 왜 그토록 못을 박는가. 그토록 많은 스펙을 요구하는 것은 왜이며, 그 조항들은 만드는 것은 누구인가. 그냥 모두를 내버려두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냥 모둑 그 뒤를 쫓는 이유는 무엇인가. 부러워할수록 부끄럽게 만드는 것은 누구이며, 보이지 않는 선두에서 하멜른의 피리를 부는 것은, 도대체 누구인가. (296p)


- 2011년 11월 28일 0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