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힘
°글쓰기에는 엄청난 치유 효과가 있고 언어에는 과거든 현재든 순간을 포착하고 변화시키는 힘이 있음을 절감했다. (p11)
°글쓰기는 나의 가장 은밀한 비밀들을 들여다보고 기록하고 나 자신에게 드러내 보이는 하나의 수단이 되었다. 글쓰기는 인권 운동가와 예술가로서의 내 활동과 함께, 장애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맞닥뜨린 편견과 차별을 직시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되었다. (p12)
°글쓰기는 뇌성마비 장애에 대한 내 감정을 발산하는 또 다른 수단이다. 나는 내 몸의 가장 싫은 부분들을 소재로 꾸준히 글을 써왔다. (p30)
⇒ 글쓰기가 필자에게 갖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글은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자신의 언어가 타인에게 비언어적으로 다가간다고 느끼는 필자에게는 글은 언어화를 통환 감정의 표현 수단이었으리라. 글을 쓰는 사람에게도 모두 그런 면이 있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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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집필 목적 및 의도
°시각예술가로서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책은 전형적인 초상화라기보다는 인생의 조각들로 완성한 콜라주 내지 연속된 이미지다. (p.12~13)
°나는 여러분에게 장애를, 구체적으로 말해 뇌성마비 장애를 안고 살아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이야기해주고 싶고, 패싱 – 장애인이 아닌 척 하는 것 – 단계를 거쳐 비로소 장애를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어쩌다 한없이 관대해지는 날에는) 심지어 나의 긍정적인 부분으로 여기게 되기까지 내가 거쳐 온 과정을 들려주고 싶다. (p18)
°장애가 나의 정체성과 유대감의 긍정적인 원천이 됐다고 생각하기도 한다...(중략)...내가 부정과 자기혐오의 단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 것들에 대해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p21)
⇒ 자기부정과 혐오를 만들었던 ‘장애’가 자신의 몸을 통하면서 어떻게 변하게 해주었는지, 이 책을 집필하게 된 목적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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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에 대한 인식변화
<성장할 때 ‘나’>
°그 나이 때 나는 내가 ‘병신’이라고 생각하기는커녕 내가 다른 아이들과 그리 다르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움직임이 좀 어정쩡하다는 건 알았지만, 태어날 때부터 그랬기 때문에 그게 이상한 줄도 몰랐다.(p37)
°‘다름’과 ‘병이 있음’을 구분 짓는 것이 그렇게나 어려운 일인가 보다. (p51~52)
<성장할 때 ‘사회’>
°우리 사회의 역학 관계는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당사자의 오점으로 치환해버린다. (p174~175)
°장애 여성들이 자기 몸을 더 잘 제어할 수 있게 해주는 방법을 찾기보다 환자의 ‘손상된’ 신체를 어떻게 고치거나 어떻게 다룰지에 훨씬 더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p313)
<성장할 때 ‘가족’>
°우리 가족은 저마다 나름대로 비정상적인 사람들이었고, 나 역시 우리 집안 최초의 정상인이 될 계획 따윈 없었다. (p35)
°인신공격당한 것을 인정하고 같이 아파해줬어야 마땅한 유일한 목격자가 누구 편을 들지 결정 못하고 멀뚱히 서 있기만 하는 데서 느끼는 외로움이었다. (p54)
°본의 아니게, 우리 가족의 일관된 침묵은 ‘장애아인 나는 괴물’이라는 나의 최악의 두려움을 더욱 굳히는 결과를 낳았다. 장애란 가족들이 입에 올리지도 못할 정도로 진짜 나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어린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p94)
⇒ (필자) 움직임이 조금 불편할 뿐, 태어날 때부터 그러했기 때문에 이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사회) 자라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뭐가 문제라서 그런거니?’라는 질문을 하는 걸 서슴지 않았고 ‘장애가 있다’는 것을 당사자의 오점으로 받아들였다. 필자는 무엇이 문제인지 계속 질문을 받아야 했고, ‘손상된’ 신체를 고치거나 어떻게 다룰지에 대해서만 골몰한다는 것을 알게된다.‘병이 있음’은 ‘다름’이 될수 없었다. (가족) 가족들은 필자의 장애를 침묵으로 맞대응했고 이것이 곧, 장애는 나쁜 것이라는 생각에 확신을 갖게 했다. 더 나아가 나는 뭔가 잘못된거라는 두려움을 심어주기에 이르렀다. 결국 사회와 가족은 필자의 ‘장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공범인 셈.
<거부&편견&부정>
°'장애는 곧 비정상'이라고 믿었던 어린 나이에는 거울 속의 내 일그러진 얼굴을 볼 때마다 내 안에 괴물이나 악마가 숨어 있는 게 아닐까하는 두려움이 점점 확신으로 바뀌었다. (p160~161)
°나는 뇌성마비든 뭐든 내게 장애 따윈 없다고 부정하며 자랐다. 다른 애들과 ‘다른’ 아이로, 더 콕 집어 말하자면 ‘결함이 있는’ 아이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p19)
°살면서 겪어온 많은 문제 – 거부, 불편한 시선, 배척 등 – 가 내 장애, 내가 앓고 있는 뇌성마비 때문이 아니라 내 장애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 때문임을 전보다 더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동시에 나도 편견에 절어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p23~24)
°자라면서 나는 사람들의 시선과 조롱을 내게 신체적인 문제뿐 아니라 전반적인 문제가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불편한 시선을 받으면 내가 인간이 아닌 것 같은, 괴물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장애가 있다고 내 입으로 인정하면 남들이 내게 지운 – 그리고 기분이 몹시 가라앉는 날이면 나 스스로 짊어지는 – 괴물이라는 정체성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게 될까 봐 두려웠다. (p92~93)
°어쩌면 내 장애에 대해 어떻게 대화를 풀어가야 할지 몰라서 입을 다물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과 내 장애에 대해 이야기해본 적이 없을뿐더러 스스로 내 장애를 부정하는 날도 많았으니까. (p86~87)
⇒ ‘장애는 곧 비정상’이라는 확신이 필자를 ‘결함이 있는’ 아이로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이 ‘편견’이 있음을 알았지만 필자 역시도 그 편견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이는 결국 ‘불편한 시선’이 당연한 것이고 ‘괴물이 된 것 같은 기분’에 휩쌓여 사는 것을 스스로에게 지운 것이 되고 말았다.
<투쟁>
°다섯 살에 이런 시련을 겪고도 나는 새로운 영역에 들어가기 위해, 태어나고 또다시 태어나기 위해 셀 수 없이 많은 투쟁에 몸을 던졌다. 실패한 적도 많았다. 아직 네가 세상에 나올 때가 아니라며 제지하는 타인들의 차가운 손길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내 주위에 자궁 같은 보호막을 친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럴 대마다 오래전 그날 밖으로 나오겠다고 아우성쳤던 나의 고집스러운 이미지와 그런 나를 위해 간호사들을 할퀴고 물어뜯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어머니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고, 나는 매번 내 조그만 주먹에 온 힘을 실어 그 보호막을 힘껏 부숴버릴 수 있었다. (p39)
°거지들이 싫은 건 그들이 곧 나일수도 있기 때문에, 아니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에서 내가 바로 그들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들도 그저 생존을 위해 애쓰는 가난한 사람들, 나와 마찬가지로 억압받는 이들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막상 거지와 마주치면 논리적 사고가 멈춰버린다. (p43)
°말을 억제하는 요인 중에서 신체적 요인을 감정적 요인으로부터 분리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확인하고픈 마음도 있었다. (p178)
⇒ 불편함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태어날 때 자신을 밀어넣던 간호사들의 모습이 계속 오버랩됐지만 이에 주저하지 않고 온 힘을 실어 보호막을 부숴버리고자 했다. 거지들을 보면서 ‘그들이 곧 나일수도 있다’는 막막함을 마주하면서 신체적 요인을 감정적 요인과 분리시켜보고자 한다.
<부정적 인식에 관심갖기>
°나는 장애를 인정하기 꺼렸던 주된 이유가 장애 자체가 아니라 장애에 대한 내 태도에 있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이거였다. 내 태도를 어떻게 고칠 것인가? (p24)
°심리 치료사가 제시한 단순한 공식 – 사실 대 사실에 대한 감정 -, 장애를 꼭 부정적으로만 보려는 내 태도에 대해 치료사가 제기한 질문이, 그동안 내가 느껴온 감정들을 더 깊이 이해하고 주체적으로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겠다는 의식을 심어주었다. (p28)
°내 걸음걸이를 묘사할 때면 나도 모르게 어색한, 뒤뚱거리는, 구부정한, 우스꽝스러운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을 쓰게 된다. 내 몸에 대한 극단적인 감정이 단어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런 편견이 덜 묻어나는 묘사를 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언젠가 내 마음이 좀 더 중립적이거나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이면 사용하는 단어들도 똑같이 긍정적으로 바뀌지 않을까 생각한다. (p31)
°나 자신이 괴물처럼 느껴지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어딜 가나 사람들의 눈총을 받는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멋대로 움직이는 오른손의 이점이 무엇인가 등의 주제로도 글을 썼다. (p31)
°그렇지만 네 결점인지 문제에 대해 궁금한 게 있어도 선뜻 물어볼 수가 없어. 네가 내뿜는 분위기 때문에, 꼭 가시철조망 같아서 말이야. ‘나한테 물어보기만 했단 봐라!’ 이런 표정이거든 (p89)
°네 결점에 대해 입 꼭 다물고 한마디도 안 하면 오히려 더 큰 문제처럼 느껴지지 않아? (p90)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당신의 본질을 잃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저항하는 것 같았다. (p153)
°거의 모든 여자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자신의 아름다움을 의심하는 법을 배운다. 어떤 것이 아름다운 얼굴(과 몸매)이고 어떤 것이 아닌지, 미디어들부터 귀가 닳도록 떠들어댄다. 여기에 가족과 친구들, 내가 몸담은 공동체가 그런 기준을 재확인시켜주는데, 그 기준이라는 것이 대개는 임의적일 뿐 아니라 성차별과 인종차별, 장애인 차별, 나이 차별 등등의 온갖 차별은 다 담고 있다. 여성인권운동을 비롯한 여러 인권 운동이 이러한 차별적인 미의 기준을 완화하는 데 어느 저옫 기여하긴 했지만, 그 정도로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얼굴에 가시적인 장애를 가진 여성들에게는 이러한 외모 차별의 현실이 더욱 가혹하다. (p162~163)
⇒ 필자는 자신의 태도를 알게되었다. 장애에 대해 극단적이고 부정적인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그랬다. 게다가 거의 모든 여자들은 어릴 때부터 자신의 아름다움을 의심하는 현실은 필자에게 더 가혹하게 작용할 수 있었으리라.
<받아들임>
°생긴 그대로의 나, 즉 뇌성마비 장애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내가 원하는 삶을 성취하는 데 가장 좋은 길이되리라 믿는다. 적어도 만족스러운 삶을 만들어가는 데 큰 에너지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p32)
°그렇게 해나가다 보면 엄청난 자기 발견과 해방의 순간을 맛보리라는 것을 먼저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철저히 부정하도록 세뇌당한 자신의 장애 또는 자신의 일부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놀라운 경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제 여러분도 알게 될 것이다. (p33)
°내가 남들과 다른게 여전히 신경 쓰였지만, 이제 그 다름은 내 전공과 성별로 인한 것, 장애가 아닌 성공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남들의 기피가 아닌 감탄을 샀다. (p104)
°나는 ‘세상을 구하는’ 방법으로 경제학자라는 ‘실천력’ 떨어지는 직업 대신 사람들과 몸소 부대끼며 일하는 사회복지사를 택하기로 마음을 굳힌 뒤였다. 그런 결심 자체가 나 자신을 괴물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바 없는 존재로 여기게 됐다는 증거였다. (p107)
°더 중요한 건, 장애가 사라지기를 내가 원치 않는다는 것이었다...(중략)... 정상적으로 걷는 사람 천지인 이 세상에서 나는 제멋대로 움직이는 사지와 걸음걸이로 나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왔다. 그렇기에 어머니가 내 비틀린 사지를 곧게 펴려는 것은 나를 죽이겠다는 것과 같았다. (p153)
°내가 살면서 부딪히는 수많은 문제의 근본 원인은 장애 자체가 아니라 장애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태도에 있다는 이 깨달음도 장애인 인권 운동에 가담하면서 비로소 얻게 된 것 중 하나다. (p250)
°그런 차이를 그냥 흘려 넘기는 것, 우리가 서로 ‘잘 맞도록’ 나 자신이나 그가 변화하기를 바라지 않는 것, 그가 나와 똑같이 생각하거나 느낀다고 혹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이라는 것이다. (p256)
°어쩌면 결함이나 남다름은 사랑받는 사람이 되는 데 아무 문제가 안 되는지도 모르겠다. (p261)
⇒ 필자는 뇌성마비 장애여성이라는 정체성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기에 이른다. 아는 장애가 곧 자신의 정체성이라는, 그것도 자신의 일부라는 걸 알게되는 놀라운 경험을 선사한다. 자신을 지나온 궤적을 알게된 느낌이랄까. 더 나아가 부정적인 태도가 살면서 부딪히는 문제의 원인이었음을 알게되고 결함이나 남다름이 사랑받는 사람이 되는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음을 알게된다.
<자기인식의 변화>
°내가 대단해 보이는가? ...(중략)... 내가 대단한 이유를 말해주겠다. 그건 내가 온갖 장벽, 바리케이드, 그러니까 당신들이 뭔가를 – 아마도 자기 자신을 – 마주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당신과 나 사이에 둘러치는 몹쓸 것들을 다 참고 견디면서 동시에 제때 집세를 내고 다크초콜릿도 음미하는 삶을 누리고 있어서다. 용기 없는 사람은 견디지 못할 삶이다. (p56~57)
°평생에 걸친 자기혐오에는 쉬운 해결책이 없나 보다. 서서히 치유해가는 방법 말고는. (p195)
°행복한 삶을 산다는 게 뭔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행복과 슬픔, 그리고 그 양극단 사이에 속하는 갖가지 감정을 인생에서 고루 경험했다고 해서 어떤 생을 ‘행복하다’거나 어떠하다고 정의하는 것은 지나친 일반화이자 단순화라고 나는 마음 한 구석에서 믿고 있다. 그럼에도 행복한 삶이라는 관념, 그것을 향한 열망, 그리고 그게 이런 기분이구나 하고 알게 해준 찰나의 경험은 내 안에 남아있다. (p201)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에는 그 거울들이 감춰져 있거나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른 형태를 취한다. 이를테면 내가 그린 그림이라든가 내가 쓴 글이 거울 역할을 맡아, 내 본모습과 내가 되고 싶은 모든 모습들 – 예술작품, 계속해서 발전해가는 창의적인 삶, 두려움이나 지나친 판단 없이 자신을 온전히 포용할 줄 아는 여성 –을 비춰준다. (p203)
°가끔은 다른 장애 여성들의 몸을 보고 있으면 내가 세상 사람들한테 어떻게 보일까하는 끔찍한 두려움이 새록새록 솟아났다. 나는 이틀이 멀다 하고 마주치는, 혐오 섞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낯선 이들의 시선으로 갑자기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고, 당장 그곳에서 도망치거나 아니면 그들과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p312)
°나는 거울을 통해 장애로 인한 나의 남다른 점들을 직시하는 것이 유난히 힘들다. 그런데 베티라는 거울을 통해 내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편안해졌다. 똑똑하고, 재미있고, 별나고, 창의력도 넘치는데다 나를 좋아해주고 좋게 평가해주는 사람이라서 그 거울이 더 친절하고 덜 차갑게 느껴졌나 보다. (p320)
⇒ 장애가 있다고 해서 ‘행복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그녀는 장애가 있지만, 하자 없는 온전한 사람이다. (p222)
°자기 자신을 참아내는 것에서 자신을 자랑스러워하게 되기까지는 아주 먼 길이고, 나는 아직까지 목표 지점에 다다르지 못했다. 하지만 베티의 존재는 내가 현실 부정과 자기혐오에서 벗어나기 위한 결정적 한 발을 떼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p322)
°“전에는 남의 도움이 필요하면서도 거부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어. 근데 지금은 필요한 도움을 정확히 요구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 (p327)
°첫 만남 때 나는 보비에게, 언어장애 때문에 입을 다물거나 말을 적게 한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보비는 호탕하게 웃더니 세상 어떤 것도, 어느 누구도 자기의 입을 다물게 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만약 사람들이 자기가 말할 때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 답답해하거나 무시하려고 한다면, 안됐지만 그건 그들 문제이지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때는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아, 그 말이 얼마나 통쾌하던지. 보비는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p328)
°목표는 그 아이들이 장애가 있는 자신을 좀 더 편안히 여기고 있는 그대로 수용해서, ‘정상인’처럼 되기 위해 자신의 그런 부분을 부정하거나 감추려 들지 않도록 이끌어주는 것이다. (p340)
°타인에 의해 장애인으로 분류되는 것과 스스로 자신을 장애인으로 분류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p341)
°침묵하고 있으면 온전한 삶을 살 수 없다. (p361)
⇒ 자신도 곧 장애가 있지만 온전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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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거리
① 교육의 위력
그 나이 때 나는 내가 ‘병신’이라고 생각하기는커녕 내가 다른 아이들과 그리 다르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움직임이 좀 어정쩡하다는 건 알았지만, 태어날 때부터 그랬기 때문에 그게 이상한 줄도 몰랐다. (p37)
→ 인간의 성장에서 교육의 위력. 각기 다른 개체로서의 인간을 이해하는 한 개체가, 교육을 받고 성장해 나가만서 ‘다름’을 ‘틀림’으로 이해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정답’을 찾는 데 골몰하게 된다. 지난 목요일 인공지능 세미나에서 강연자는 인간을 압도할 인공지능의 정도에 초점을 맞춰 발표했다. 인간의 감정까지 복제해내는, 소위 말하는 강한AI가 가능해지는 세상이 도래하면, 인류의 존재는 위협받을 것이라고. 하지만 한 소년이 질문했다. 강한AI가 오기도 전, AI가 무엇이라도 되기전, 인간은 그들 스스로 인류를 멸망시킬 수도 있지 않겠냐고. 인간을 넘어서는 인공지능의 위협만 골몰하는 성인들과 달리 소년은 인간 그 스스로의 결함과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다.
② 인간의 인식
어떤 이들은 자신의 감정 상태를 내 표정에 대입하기도 한다. “무서운 표정을 짓고 계시네요.” 정서적으로 불안저한 어느 상담 환자는 나를 보고 가끔 이렇게 말한다. 그녀는 자기 마음이 차분하고 정제된 상태일 때는 내 표정에 – 물론 여전히 괴상해 보이겠지만 – 별로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자신이 겁을 먹거나 화가 나 있으면 내 표정이 너무 무섭고 위협적이어서 도저히 못 쳐다보겠다고 한다. 그래서 나중에는 아예 의자를 돌려놓고 상담실 창밖을 내다보며 이야기하다가 때때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이 여전히 자기가 어릴 적에 떠올렸던 괴물들 모습인지 확인하곤 했다. (p160)
→ 굴뚝 청소한 두 소년이야기를 다룬 ‘탈무드’가 떠오른다. 상대방을 통해 나를 본다, 표현하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같은 것도 다르게 묘사된다.
③ 돈과 미, 권력의 층위
예술사를 전공한 친구가 해준 이야기가 생각난다. 고대 이집트의 한 파라오가 유전자 이상으로 머리통이 남들보다 길게 태어났는데, 신하들이 그 머리 모양을 따라 하려고 패드를 집어넣은 긴 모자를 쓰거나 수술을 받는 등 기를 썼다는 이야기다. 그 이야기는, 어떤 신체 부분이 겉보기에 아무리 이상하고 ‘비정성적’이어도, 특히 부나 구너력을 쥔 자와 연관되면 최첨단 유행이 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p166)
→ 아름다움 = 정상적인 것 = 권력, ‘미’의 기준, ‘정상’의 기준, 모든 가름으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이 사실은 권력에 의한 것인가.
④ 개인이 삶에 대해 갖는 맥락
첫 만남 때 나는 보비에게, 언어장애 때문에 입을 다물거나 말을 적게 한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보비는 호탕하게 웃더니 세상 어떤 것도, 어느 누구도 자기의 입을 다물게 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만약 사람들이 자기가 말할 때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 답답해하거나 무시하려고 한다면, 안됐지만 그건 그들 문제이지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때는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아, 그 말이 얼마나 통쾌하던지. 보비는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p328)
→ 보비는 자기 맥락이 있는 사람이다. 맥락을 갖기 위한, 정갈한 생각을 갖기 위한 방법이 있을까.
⑤ 함구하는 것
본의 아니게, 우리 가족의 일관된 침묵은 ‘장애아인 나는 괴물’이라는 나의 최악의 두려움을 더욱 굳히는 결과를 낳았다. 장애란 가족들이 입에 올리지도 못할 정도로 진짜 나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어린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p94)
→ 함구. 장애에 대해, 질병에 대해, 죽음에 대해, 여기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 과연 옳은걸까?
⑥ 성공의 의미
내가 남들과 다른게 여전히 신경 쓰였지만, 이제 그 다름은 내 전공과 성별로 인한 것, 장애가 아닌 성공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남들의 기피가 아닌 감탄을 샀다. (p104)
→ 성공이후에 장애를 다른 각도로 생각한다는 건, 결국 사회적 ‘성공’ 이후에나 가능했다는 것. 성공이 없다면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이는 게 불가능했다는 이야기인걸까.
⑦ 엄마의 자리
내 삶에서 어머니의 역할이 변해가고 있음을 깨달은 그 순간, 슬프면서도 동시에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p106)
→ 내가 결혼생활을 시작하고 엄마가 느꼈을 감정이 바로 이것 아니었을까.
⑧ 남녀역할의 위상
여자는 남자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고정된 성 역할을 지나치게 잘 배운 탓도 있지만 (p126)
→ 외국에서도 이렇다니!
⑨ 모임, 협동, 토론, 학인
‘나는 뭐가 잘못된 걸까?’라는 주제가 우리 여자들의 삶에 이토록 깊이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조용한 깨달음의 자리였다. 그 모임을 계기로 우리의 정치의식이 싹트고,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동지애도 꽃을 피웠다. (p209)
→ 각종 학습모임, 은유글쓰기 모임도 이런 성격의 것 아닐까. ‘뭘쓸까’를 고민하는 것도 일맥상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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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의견에 반박하고 싶은 부분
°“난 장애인이지 정박아가 아니에요.” 저런 부류의 사람을 낮추서 나 자신을 높인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런 생각을 한, ‘살 가치가 있는 사람’을 분류한 사회 조직도에서 나보다 낮은 순위에 있는 사람에게 비하를 당했다는 사실에 더 심한 모멸감이 든다. 하지만 그는 자기 위치를 모르기에 더 유리한 거다. 사회적 제재도 받지 않고 자기 속마음을 거리낌없이 중계할 수 있으니까. 어쩌면 그것은 내가 본받아야 할 점인지도 모르겠다. (p53)
→ 저자의 의식에도 이미 사회의 층위가 존재한다. 그것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기보다 더 낮은 존재가 있다는 걸 인식함으로써 본인에게 안정감을 줄지 모르지만, 이 편견으로 자신은 또 다른 사람에게 ‘정상인에게 당했던 그 무엇’을 줄 수도 있다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나는 언어장애가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은 나만 자진해서 불리한 입장을 취함으로써 상대방과 나 사이에 힘의 불균형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p173)
→ 타인과의 관계에 항상 존재하는 이것, 이를 계산하는 게 과연 올바를까
°우리 가족은 저마다 나름대로 비정상적인 사람들이었고, 나 역시 우리 집안 최초의 정상인이 될 계획 따윈 없었다. (p35)
→ 자신의 신체적 장애, 가족들의 정신적 장애. 이를 모두 비정상이라고 말하는 것이 온전히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의 전제가 될 수 있을까. 불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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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어머니가 나를 보는 눈은 그 할머니가 나를 보는 눈과 같았고, 어머니는 끊임없이 나를 바꾸려 했으니까. 나는 어머니가 그 할머니를 바꿔주길 바랐건만. (p154)
°혼자 있을 때는 내가 되고 싶은 사람, 그리고 때로는 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 훨씬 가까워진다. (p197)
°사실 혼자 있을 때만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이 뭔지 알아내는 모험을 감행할 수 있다. (p197)
°‘기존의 틀’로 간주되는 모든 것과 거리를 두는 것에 자부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p257)
°나는 혹시 발작 요인 중에 어머니가 그렇게 심하게 구속당하지 않았더라면 누릴 수도 있었을 삶에 대한 질투와 비탄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p265)
°내가 대단해 보이는가? ...(중략)... 내가 대단한 이유를 말해주겠다. 그건 내가 온갖 장벽, 바리케이드, 그러니까 당신들이 뭔가를 – 아마도 자기 자신을 – 마주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당신과 나 사이에 둘러치는 몹쓸 것들을 다 참고 견디면서 동시에 제때 집세를 내고 다크초콜릿도 음미하는 삶을 누리고 있어서다. 용기 없는 사람은 견디지 못할 삶이다. (p56~57)
→ 자기암시를 하는 듯함. 주문을 외는 것 같은 이 말이 불편하다.
°장애가 있는 여자는 아름답지 않고 성적 매력도 없는 무성의 존재라는 편견을 가지고 자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식 버전’에서는 그런 편견을 깨도록 도와준 사람이 바로 베티라고 그녀에게 공을 돌렸다. (p319)
→ 어린시절 ‘이 얼굴로 성공하려면 의사 혹은 검사가 되어야 한다’라고 했던 친구 언니가 있었다.
°그녀가 들려주는 인생의 중대한 순간들은 감동적이고 뜻깊었다. 나 자산이 경험한 분수령과도 같은 순간들을 이해할 언어를 가르쳐 줫기 때문이기도 했다. (p330)
°그 경험이 내게 중대한 전환점이었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애나가 자신의 경험을 어떻게 받으들였는지 듣고서야 비로소 내 경험을 더 큰 맥락에 비추어 이해할 수 있었고, 마치 중요한 통과의례를 거친 양, 장애인 공동체에 마침내 정식으로 합류한 기분이 들었다. (p331)
°우리끼리 눈빛을 주고받고 시원하게 웃어넘기면서. 그리고 우리가 아니라 이 세상이 고장나고 이상한 거라고 둘이 쑥덕거리면서. (p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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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하여
<삭제해도 무방해 보이는 부분>
°따가운 시선 (p48~50)
→ 굳이 필요하지 않은 부분
°<너의 목소리에서 내 목소리를 듣다> (p323~324)
→ ‘너’가 누구인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자신을 객관화하는 과정의 일을 서술한 것 뿐이다.
°<생명력 질긴 새> (p267~272)
→ 아이같은 묘사, 두서가 없고 흐름이 없다.
°내 인생의 비극들이 장애가 아니라 그저 흔한 실망과 환멸, 상실 – 애인, 놓친 일자리, 가까운 사람의 죽음 등 – 과 더 관계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너에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너는 전염병 대하듯 나와 좀 거리를 두는 게 좋겠다. 나를 언니로 생각하면 네가 너무 겁을 먹고 불안해하고 충격을 받으니까. 그랬다간 나는 너처럼 감정적인 사람이 되고, 더 나쁘게는 너도 나처럼 여기저기서 배척받는 사람이 될 테니까. 그러니 나를 그냥 용감한 타인으로 생각하렴.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눈물이 나려 한다. (p286)
→ 결국 ‘소녀’가 왜 울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필자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이야기로만 보인다.
°평생에 걸친 자기혐오에는 쉬운 해결책이 없나 보다. 서서히 치유해가는 방법 말고는. (p195)
→ 손을 그릴 때/거울 속 모습을 볼때는 현재의 자신과 어릴때의 자신을 비교하는 글이 되므로써 자아를 분리시킨다. 흐름상 일반적이지 않아 몰입도를 떨어뜨린다. (이 부분은)
<구성적 특징>
°내가 대단하지 않은 이유 (p55~57)
→ 자신을 비하했다가 대단하다고 했다가 오락가락 한다. 이런 혼란이 필자가 프롤로그에서 말했던 ‘손에 잡히는 대로 읽어라’의 말에 설득력을 준다.
°<집을 떠나다> (p91~111)
→ ‘장애’를 정상인으로 인식하게 되고, ‘부모’로부터 독립하게 되는, 필자 스스로의 변화를 얘기하는 가장 핵심적인 단계를 설명하고 있다.
°대화 (p44~47)
→ 애나vs해릴린 = 거지vs불구자 아닐까, 세상의 편견에 갇힌 사람들의 대화를 가상해봄. 최책감, 무엇을 위해/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대화체를 구사함 : 자신이 생각하는 본인의 ‘장애’를 이야기하고 있음. 누구에게 들언 것이든,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든, 어떤 선입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암시함. 필자 스스로가 벗어나고 싶은 부분일 것 같다고 생각함
°<거울 속의 나를 보지 못하는 나에게> (p155~158)
→ 자신이 불인정해오던 것을 인정하려는 노력
⇒ ‘ 장애를 부정 → 스스로의 태도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지 → 장애 자체로 받아들임 → 전파‘의 과정을 담고 있지만, 낱개의 일기들을 모아둔 이야기라는 한계로 통일성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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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단어
°패싱(passing) : 장애인이 비장애인인 척하거나 반대로 비장애인이 (예를 들어 장애인 주차 구역에 주차하려고) 장애인인 척하는 것을 말한다. 이 밖에도 동성애자이면서 아닌 척하거나 피부색이 옅은 흑인이 백인인 척하는 등 자신이 속하지 않은 다른 집단에 속한 것처럼 보이는 능력 또는 그런 의도를 포괄적으로 뜻한다. (p18)
°자기권익보호(self-advocacy) : 장애인 인권 운동의 중요한 개념으로, 장애인이 타인의 지나친 간섭이나 통제없이 필요한 도움을 받거나 의사 표현을 하거나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개념이다. (p345)
°무람없이 : 예의를 지키지 않으며 삼가고 조심하는 것이 없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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