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재현 칼럼] '하면 된다' 시대의 종언(2014.07.23)
칼럼원문 :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5332603&cloc=olink%7Carticle%7Cdefault
며칠 전 재미있는 신문 기사를 보았다. 꾸준히 노력하면 누구든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1만 시간의 법칙'이 실은 틀린 이야기라는 것이다. (본지 7월 17일자). 1만 시간 노력하려면 하루 3시간, 일주일 20시간씩 총 10년이 걸린다. 그러나 미국 연구팀이 선천적 재능과 노력을 연구한 결과 많은 분야에서 타고난 재능이 노력보다 훨씬 중요한 요인으로 밝혀졌다고 기사는 전한다. 음악에서는 재능 79%, 노력이 21%이고, 스포츠는 재능 82%, 노력 18%였다. 학술 분야는 더 심해서 96대4 비율이었다. 공부하는 머리는 타고난다는 얘기가 맞는가 보다. 어제 정상급 피아니스트 손열음씨를 만난 김에 "음악에서 재능이 79%, 노력이 21%라는 게 맞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런 것 같다"며 "재능을 드러낼 기회가 예전에는 훨씬 적었던 옛날에는 아마 90% 정도로 비중이 더 높았을 것"이라고 답했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에디슨의 명언도 사실은 "99%의 노력도 단 1%의 영감이 없이는 소용없다"는 뜻이라고 한다. 타고난 재능이 그토록 결정적이라면 우리 같은 범인들 입장에선 맥이 풀릴 수 밖에 없다. 노력하면 뭐하나. 이미 날 때부터 유전자에 성공여부가 새겨져 있다는데 말이다. 이달 초 도쿄 국제도서전에 갔다가 사 온 책 한권이 이런 인간불평등 기원(?)을 부추겼다. 제목은 <노력불요론>. 의학박사이자 뇌과학자인 나카노 노부코가 쓴 책으로, 제목 그대로 '쓸데없이 노력할 필요없다'는 내용이다. 자기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고 무작정 노력부터 하고 보는 '노력중독자'는 남에게 이용을 당하거나 피해를 주기 십상이라고 주장한다. 일본인은 특히 '노력교신앙'을 가진 '노력교' 신자가 많아 큰일이라고 걱정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 뛰어들어 패한 것도 대책 없이 노력과 정신력만 강조하던 지도자들 때문이라고 일갈한다.
식민지와 전쟁의 폐허를 딛고 60년 넘게 줄달음쳐 온 우리나라도 노력 숭배주이라면 지구상 어느 나라 못지않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책상 머리에 '노력 끝에 성공' '노력은 성공의 어머니'를 붙여 놓았으며, 좀 커서 한자라도 배우면 '고진감래'로 글귀를 바꿔 달았다. 노력신앙의 단짝은 결과지상주의였다. 겨울철 유엔군 묘지에 보리를 옮겨 심어 파란 잔디처럼 보이게 했다는 기업인의 임기응변이 자랑스러운 신화로 기록되었다. '하면 된다'의 시대였다. '안 되면 되게 하라'가 특전사 병영을 넘어 사회 구석구석까지 울려 퍼졌다.
이미 젊은이들은 속지 않는다. 노력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노력 이외의 요인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아는 듯해 걱정될 정도다. 사회가 그렇게 변했다. 고도성장은 끝났고 당대 성공신화는 더 이상 쓰이지 않는다. 서울에서 내 집은 고사하고 전세금을 마련하는 데도 6년치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 한다. 국민의 57.9%가 '일생 동안 노력해도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하고 있다.(통계청, 2013년 사회조사) 사회 역동성, 계층 상승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드니 젊은이들이 소개팅에서 상대 부모의 직업과 사는 동네부터 묻는다는 슬픈 이야기가 나돈다. 이제 평강공주는 온달을 찾지 않고, 왕자는 신데렐라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기성세대가 '하면 된다' 시대의 관점에서 벗어나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을 할 시점인 것 같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만 이루면 된다는 결과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원칙과 상식을 앞세우는 시대로 진입해야 한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말한 '비정상의 정상화'도 이런 사고의 틀 전환을 전제로 한 것이길 바란다. 빨리빨리와 대충대충을 버리고, 잔뜩 힘 준 어깨를 눅이고 눈에 서린 핏발은 풀고, 무리하게 앞지르거나 끼어들지 않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 말이다. 더뎌도 차근차근 나아가는, 무엇보다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회로의 대전환이다. 비록 짜릿한 성공담과 기막힌 반전은 적을지라도 한 차례 애를 쓰면 딱 그만큼 결과가 나오는 게 일반적인 풍경이었으면 좋겠다. 결과에만 목을 매 무리와 편법, 탈법, 집단 간 유착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사회와는 이별해야 한다. 원래 안 되는 것은 누가 해도 안 되고, 억지로 되게 하려다간 도리어 된통 당해야 마땅하다.
정당한 노력이라면 왜 쓸모가 없겠는가. 자기 파악 못 하고 남 배려 안 하고 잇속에 눈이 멀어 무리를 범하니 언젠가는 사달이 나는 것이다. 우리는 하면 된다는 낡은 신화에 안주하다가 밀렸던 청구서가 쏟아지는 시점에 처해 있다. 그 와중에 가엾은 아이들만 희생된 듯해서 마음이 아프다. 내일은 세월호 참사 100일째다.
[요약]
타고난 재능이 노력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한다. 안타깝지만 우리 젊은이들은 이를 너무 잘 아는 것 같다. 소개팅에서 상대 부모의 직업과 사는 동네부터 묻는다니 말이다. 이러한 사회 구조를 만들어 놓은 기성세대는 변해야 한다. 원칙과 상식을 앞세우고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회로의 전환이 가능할 수 있도록.
[단상]
소개팅에 나갔다. '착한 회사원'이라는 정보만 들은 후였다. 인사를 주고받은 후, 자리에 앉자 그가 말했다. "아버지가 약사입니다." 네? 되묻는 내게 그가 다시 말했다. "저희 아버지가 약국을 운영하세요." 집에 가는 길, 주선자 친구에게 불평불만을 쏟아냈다. "야, 내가 남자 소개시켜달라고 했지 약사 아들 소개시켜 달라고 했어?" 앞니가 약간 벌어진 게 특징이었던 그 소개팅 남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게 '약사 아들'로 남아 있다.
'하면된다'며 엉덩이를 토닥여줄 것 같은 희망의 메시지가 퇴색되어 가고 있다. 노력으로 얻은 후천적인 결과물보다 '갖고 태어나는' 선천적인 것이 힘을 더 얻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노재현 중앙북스 대표는 원칙과 상식을 앞세우는 사고의 전환으로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고 한다. 그저 내 핏속에 녹아있는 유전자만 탓하지 않아도 된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노력의 시대가 끝나간다는 얘기에 3년 전의 약사 아들이 떠오른다. 방어적인 태도를 가졌던 그 남자는 적지 않은 나이, 많지 않은 연애경험, 부족한 연애스킬 등 소개팅 시장에서 먹히지 않는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약사'라는 아버지의 간판이 필요하다고 여겼을지 모른다. 기회가 되어 그를 다시 만난다면 '파이팅!'을 외쳐주고 싶다. '하면 된다'는 시대가 끝나간다지만, 존중하고 배려하는 인간적인 사회로 변해가려는 노력은 구석구석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그래서 당신도 약사 아들이라는 껍데기를 버리고서도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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