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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담은 책장/발췌

[발췌]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냄새로 인지할 수 있는 세계의 풍부함과 언어의 빈곤함으로 인한 그 모든 이상한 불균형들로 인해서 그르누이 소년은 말의 의미를 포기하게 되었다. (p.43)

 

그는 마치 자신이 체험한 모든 냄새의 색인이 실린 커다란 사전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p.44)

 

가이아르 부인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나게 된다. 더 이상 그녀에 대해 언급할 기회가 없을 것이기 때문에 그녀의 말년에 대해 잠시 언급하고 지나가기로 하자.(p.48) →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해됨을 나타내는 단적인 증거

 

그의 냄새 사냥의 목적은 이 세상에서 냄새라고 부를 수 있는 모든 것을 소박하게 있는 그대로 소유하는 것이다. (p.60)

 

그는 향기의 창조자가 되어야 했다. 그것도 그저 그런 정도가 아니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향수 제조인이. (p.70~71) → 소녀의 향기를 경험하면서 그가 마음먹게 된 길

 

그의 자부심은 자신의 상점에 향기를 갖고 있는 모든 것, 어떤 식으로든 향기와 관계되는 것을 전부 수집한다는 사실에서 연유했다. (p.74) → 그르누이와 발디니가 어떤 관계를 형성하게 되리란 걸 짐작하게 한다, '향기를 갖고 있는 모든 것'

 

향수 제조인이란 반은 연금술사라고 할 수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들이 기적을 만들 거라고 믿고 있었다.(p.83)

 

향신료를 알코올과 섞어서 그 향기를 휘발성의 액체로 옮기는 방법으로 원래 향기를 지니고 있던 재료에서 향기를 분리해 내고 해방시킴으로써 향기에 영혼을 부여하였다. (p.87)

 

인간의 불행은 자신이 관심을 기울여야 할 곳, 즉 자신의 영역에 더 이상 머무르지 않으려고 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p.90)

 

냄새를 맡는 동안에는 판단하지 말라. 그것이 첫번째 규칙이었다.… 향수는 생명이 있다는 것이 두 번째의 규칙이었다. 향수에게는 청년기와 장년기와 노년기가 있었다. 그 세 단계마다 언제나 똑같이 쾌적한 향기를 풍길 때에만 비로소 그것은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p.97~98)

 

그는 차가운 진지함을 느꼈다. 장인의 냉정함, 메마른 상인 정신이 모든 가구와 도구들, 양동이와 병들, 그리고 냄비에 배어 있음을 느꼈다. (0.108) → 발디니를 닮은 발디니 가게의 모든 것들

 

자신이 더 이상은 여기서 떠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그르누이는 감지하고 있었다. 진드기가 피 냄새를 맡은 것이다. (p.108) → 그르누이 자신이 발디니 가게에 머무르게 되리라는 확신

 

그르누이의 몸은 이제 거의 다 펴진 상태였다. (p.118) → 그르누이의 등이 펴짐으로써 신체 길이가 커지는 것은 그의 자신감이 향상됨을 나타냄

 

말이나 눈빛, 감정이나 의지보다 향기가 훨씬 설득력이 강했다. 향기의 설득력은 막을 수가 없었다. (p.128)

 

실수를 함으로써 발디니로 하여금 잘못을 고치라는 잔소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그렇게 해서 그는 결국 발디니로 하여금 모든 일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느 착각에 빠지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다. (p.143) → 자신의 야심을 숨기고 발디니를 조롱하고 있는 그르누이

 

시민적 삶이라는 외투로서, 그 최소한의 것이 바로 도제 수업이었다. … 바로 냄새의 원료를 만들고, 분리하고, 농축시키고, 보존하는 수공업적인 방법에 대한 지식이었다. (p.144) → 그르누이는 더 큰 목적(배움)을 위해 발디니의 비위를 맞춰준다

 

물과 수증기, 그리고 골똘히 고안해 낸 어떤 도구를 이용해 물질로부터 향기의 영혼을 빼앗는 이 과정에서였다. 향기의 영혼인 휘발성의 향유가 그 중에서도 가장 근사한 것으로, 그것이 그의 유일한 관심사였다. (p.148)

 

그르누이는 자기 자신이 바로 알람빅이 되는 상상에 빠졌다. 그의 마음속에서 만들어지는 증류액은 더 좋고 더 새롭고 더 독특한 것이었다. 자신의 마음속에 피어 있어서 그 자신 이외에는 그 어느 누구도 냄새 맡을 수 없는 그런 정선된 식물들로 만든 증류액이었기 때문이다. 그 독특한 증류액은 이 세상을 향기로 가득 찬 에덴으로 변화시키고, 그 속에 있으면 자신의 인생도 후각적으로 견딜 만한 것이 되는 그런 향기를 품고 있었다. 자신이 만든 증류액의 향기로 온 세상을 가득 채울 수 있는 그런 커다란 알람빅이 되려는 것, 그것이 바로 그르누이가 꿈꾸는 소망이었다. (p.150~151)

 

향수 제조에 있어 증류법은 단지 특정한 식물에 들어 있는 휘발성의 기름을 아무 냄새도 없거나 거의 냄새가 없는 나머지 물질로부터 분리시키는 경우에만 필요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휘발성의 기름이 없는 물질의 경우에는 증류법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물리학에 대한 지식이 있는 우리 현대인들이라면 그 점을 금방 깨달았을 것이다. (p.154)  → 그르누이 증류 실험 실패의 원인

 

한 가지 이상스러운 점은 이런 병에 걸리면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는 페스트에 걸렸을 때와 같은 악취가 이 환자에게는 없다는 점이었다. (p.158)  → 그르누이의 특징

 

세 가지 방법이 있단다. 베워서 향기를 얻는 법, 차게 해서 향기를 얻는 법, 그리고 기름을 이용해 향기를 얻는 법이 있다. (p.162)  → 그르누이가 알고 싶었던 것

 

그가 원하는 것은 자신의 내면 세계를 보여 주는 것이었다. 외부 세계가 그에게 제공하는 그 어떤 것보다 자신의 내면이 훨씬 더 놀랍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p.165)

 

깨끗한 공기에 익숙해질수록 그르누이는 더욱더 인간의 냄새에 예민해졌다. … 그리하여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 고독의 극점을 향해 그를 몰아갔다. (p.180)

 

그는 더 이상 그 어는 것에 의해서도 바뀔 수 없는 자기 자신만의 실존 세계에 빠져 있었다. (p.188)

 

그르누이의 마음속 우주에서는 사물은 없고 단지 사물의 냄새만 존재했다. (p.191)

 

7년 동안 그가 의식할 수 있었던 현실의 사건은 그것뿐이었다. 나머지 시간에는 산속, 그 자신이 만든 영혼의 왕국에서 살았다. 그를 산에서 끌어내려 세상 속으로 다시 몰아낸 한 가지 재앙만 없었더라면 아마 그는 죽는 날까지 그곳에서 살았을 것이다. (p.203)

 

이상한 것은 그것이 <자신의> 냄새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냄새를 맡을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완전히 자기 자신의 냄새에 파묻혀 있는데도 어떤 방법으로도 그 냄새를 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p.205)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공포였다. …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은 무서웠지만 자신이 냄새를 갖고 있는지 아닌지 확실하게 알아야만 했다. (p.209)  → 냄새가 아닌 다른 '존재'를 느끼는 그르누이  

 

생명은 땅에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때에만 발전할 수 있다는 이론이었다. 그 이유는 땅에서는 생명 에너지를 마비시키고 결국에는 생명 에너지를 완전히 소멸시키는, 소위 <치명적 유동체>라는 독가스가 계속 생성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p.214)

 

그가 만들려는 것은 바로 인간의 냄새였다. 물론 지금 만드는 것은 임시 방편에 불과하겠지만 그는 자신에게 결핍되어 있는 인간의 냄새를 만들려는 계획이었다. 사실 <인간의 냄새>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의 얼굴>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듯이 말이다. (p.226)

 

그들은 사람들에게 공통되는 기본적인 냄새, 사람들의 원시적 악취 속에 있을 때만 편안해 했고, 그 속에서만 안전하다고 느꼈다. 때문에 그들은 그 구역질 나는 인간의 냄새를 갖고 있는 사람만 자기들과 똑같은 사람으로 간주했다. (p.227)

 

상상 속에서처럼 그르뉘는 전지전능한 냄새의 신이 되고 싶었다. 물론 현실 세계에서 진짜 사람들을 다스리는 신 말이다. 그는 자신이 그럴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위대한 것, 끔찍한 것, 아름다운 것 앞에서도 눈을 감을 수는 있다. 달콤한 멜로디나 유혹의 말에도 귀를 막을 수는 있다. 그러나 결코 냄새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다. 냄새는 호흡과 한 형제이기 때문이다. (p.236) → 후각의 위대함

 

동물 유지를 바른 유리판 위에 꽃을 뿌려 두거나, 아니면 적당하게 올리브유에 적신 헝겊으로 꽃을 감싸 놓음으로써 꽃이 천천히 죽음을 맞이하도록 해주는 방법이었다. (p.271)

 

그는 눈에 띄지 않도록 만드는 향수를 만들었다. … 약간 진한 땀내를 풍기는 향수를 만들었다. … 드뤼오의 정액 냄새도 모방했다. … 동정심ㅁ을 유발시키는 향수였다. 반드시 혼자 있어야만 하거나 사람을 피하고 싶을 때 바르는 향수를 만들어 냈다. 생명이 없는 사물로부터 향을 추출해 내는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p.275~278)

 

그가 원하는 것은 <특별한> 사람들, 즉 아주 드물지만 사람들에게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사람들의 냄새였다. 그 사람들이 바로 그의 제물이었다. (p.284)

 

기억 속에서는 모든 향기가 영원한데, 현실의 향기는 소모되어 버린다. 세상에서 덧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만약 그 향기가 소멸되어 버리면 내 향기의 샘도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p.288)

 

사랑스러운 자신의 향기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이 사라져 가는 것을 안타깝게 지켜보는 자신의 모습이. 이 잔혹한 세계 속으로 자신의 향기가 고통에 가득 차 계속 빠져 나가는 것은 마치 천천히 죽음을 맞이하는 일과 다를 바가 없었다. (p.289)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리쉬는 살인자가 정신 파탄자가 아니라 극히 신중한 수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희생자들이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보다 높은 어떤 원리의 일부분으로서 이용되었을 거라는 생각 말이다. (p.306)

 

깊은 밤 자신의 희생자 옆에서 밤을 새우며 기다리는 이 순간은 그의 우울한 머릿속에 유쾌한 생각들만 떠오르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p.328)

 

자신이 완벽하게 승리했음을 과시하는, 그리고 사람들을 철저하게 경멸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비웃음 말이다. … 그는 자신의 요람에는 들어 있지 않던 것, 오로지 그 혼자만 갖지 못했던 그 성스러운 빛을 끝없는 교활함으로 스스로 획득했다. (p.358)

 

향수가 저항할 수 없는 영향력으로 바람처럼 빠르게 퍼지면서 주변 사람들을 사로잡아 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 순간에 그의 내면에서 인간에 대한 모든 역겨움이 되살아나 승리를 철저하게 무너뜨려 버렸다. 기쁨은 커녕 최소한의 만족감도 느낄 수가 없었다. 항상 갈망해 왔던 일,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사랑하게 만드는 일에 성공한 이 순간에 그 일이 참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 자신은 그 향기를 사랑하기는 커녕 증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p.359)

 

그는 인생에서 <단 한 번만이라도>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다. 단 한 번만이라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어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고 싶었다. 그들이 자신들의 사랑과 바보 같은 존경심을 보어 주듯이 그 역시 자신의 증오를 보여 주고 싶었다. (p.360)

 

그는 자기 자신의 악취에 질식하지 않기 위해 차라리 산산조각으로 폭발해 버리고 싶었다. 마침내 그는 땅바닥에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p.363)

 

아무도 거역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꼭 한 군데 있으니, 그곳이 바로 그르누이 자신이다. 그는 이 사랑의 향기를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그는 이 향수를 통해 세상에 신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향수를 느낄 수가 없으니 그걸 바르고도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면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일까? 그는 세상과 자신, 그리고 향수를 비웃었다. (p.374)

 

사람들은 단지 그 효과에 굴복할 뿐이니까. 그들은 자신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자신들을 매혹시키는 것이 향수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이 향수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사람은 그것을 만들어 낸 나 자신뿐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 향수의 마법에 걸리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 아닌가. 이 향수는 애게는 아무 의미도 없다. (p.3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