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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담은 책장/발췌

[발췌] 케빈에 대하여

<에일리언>에선 역겨운 외계인이 존 허트의 배를 할퀴면서 밖으로 나오고, <미믹>에선 여자가 두 발 달린 구더기를 출산하지. <엑스-파일>에서는 눈알이 튀어나온 외계인들이 인간의 몸 한가운데에서 피를 흘리며 터져 나오는 것이 연속해서 등장해. 공포 영화나 공상과학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소모되거나 임대돼서 겉껍데기나 잔류물로 줄어드는데, 악몽의 생명체가 그 껍질을 살아나게 하지. 유감스럽게도 이런 영화들은 내가 만든 게 아니야. 이가 썩고 뼈가 가늘어지고 피부가 늘어진 여자라면 알 수 있지. 9개월 동안 무임 승객을 들인 뒤의 초라한 대가를 말이야. 알을 낳기 위해 역경을 헤치고 상류로 올라가 결국 몸이 해체되고야 하는, 눈이 흐려지고 비늘이 빠지는 암컷 연어를 다룬 자연 영화들을 보면 화가 치밀어. 케빈을 임신했던 기간 내내 난 케빈에 대한 생각, 내가 운전자에서 차량으로 강등됐다는 생각, 집주인에서 집이 됐다는 생각과 싸워야 했어. (100P)

 

그 때 난 내가 당신의 손을 아프게 하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아. 그래, 난 아기도 싫었어. 그때까지도 그것은 내게 미래에 대한 희망과 이야깃거리, 만족감, 그리고 "전화점"을 가져다주지 못했으니까. 여전히 난 그것을 단지 거추장스러운 것, 당혹스러운 것, 해저에서 꾸르륵 거리고 있는 것으로만 여겼어. 그래, 그때 난 나를 해저라고 여겼어. (126P)

 

케빈을 사랑하는 건, 내게 피아노 음계 같은 걸 반복해야 하는 훈련 같이 느껴졌어. 그래서 노력하면 할수록 내 노력이 가증스럽게 느껴졌던 거야. 막판에 내가 겨우 흉내만 냈던 그 모든 애정은 초대받지 않은 곳의 문을 두드리는 격이었어. 그러니까 날 실망시켰던 건 케빈도 아니었고, 당신의 애정이 점점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는 사실도 아니었던 거지. 날 실망시켰던 건 바로 나였던 거야. 난 천성적으로 감정적 부정행위에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이었으니까. (142P)

 

나로서는 지리학이 상대적이라는, 다시 말해 여느 세상이든 자기 폐쇄적이고 그곳 사람들엑는 전부라는 것 역시 깨닫게 됐지. 내 용감무쌍한 엄마에게 거실은 동부 유럽이, 내 옛 침실은 카메룬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170P)

 

통계적으로 드문 종족인 백인 비행 청소년들의 엄마들은 이곳에서 안절부절못하거나, 가만히 있다 해도 이를 앙 물고 시티 촬영을 하는 것처럼 머리를 빳빳이 고정하는 경향이 있어. 낮은 출석률을 위해 백인 엄마들은 항상 자기가 앉은 의자와 양쪽에 빈 플라스틱 의자 두 개까지를 의자 하나로 간주하지. 그들은 종종 신문을 갖고 오고 대화를 거부해. 그것이 암시하는 것은 노골적이야. 즉, 뭔가가 시공 연속체를 파괴했다는 거지. 그들은 자신이 이곳에 있어야 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 그리고 난 이곳에서 자주 메리 울포드 부류의 분노를 감지하게 돼. 이런 엄마들은 고발할 만한 사람을 찾아 방 안을 매섭게 둘러보지. 그게 아니면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는 거야' 식의 불신을 얼굴에 그대로 드러내거나. 그 불신은 너무 적대적이어서, 계속 진행중인 유사한 우주의 대기실에서 홀로그램을 구현할 수도 있어. 그러니까 같은 시각,조니나 빌리는 학교가 끝나고 평소대로 집에 돌아오는 거야. 그다음엔 우유를 마시고, 하하 웃고, 숙제를 하며 또 다른 평범한 오후를 보내는 거지. 우리 백인들은 일이 잘못됐을 때 그런 특권 의식을 지키는 일에 매달려. 인생이 아주 즐거울 때 우리가 누릴 수 있었던 고문과도 같이 화창하고, 백치와도 같이 명랑한 도플갱어를 내려놓지 못하는 거야. (253P)


- 2013년 1월 27일 2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