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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담은 책장/발췌

[발췌] 그림에, 마음을 놓다

사람들은 자신의 상을 사랑하는 이에게 비추어보기를 좋아한다. 특히 연인의 눈은 자신을 실시간 촬영해주는 동영상 카메라와 같다고나 할까. 연인들은 서로에게 모든 걸 다 내어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 상대방에게서 찾고 있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모습이다.(65p)

 

내가 상대방의 눈에서 나를 찾으려고 하듯, 상대방도 나의 눈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으려 한다는 것에 대한 이해, 사랑의 본질에 대한 깊은 끄덕임이 바로 진정한 사랑의 시작일 것이다. (65p)

 

하루 종일 주워 담을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말들을 내뱉고 또 듣지만, 그 말들이 허공을 빙빙 맴돌 때가 많다. 사람들끼리 말은 하면서도 마음은 내주지 않기 때문에 자꾸만 사는 게 등이 시린 것처럼 아프다고들 한다. 그런데 그 이유가 혹시 내가 편견이나 원칙을 사람보다 앞에 두고, 의심과 이기심으로 소통을 방해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97p)

 

우연한 만남은 수 겹으로 쌓여온 마음속 염원이 외부세계로 전해졌다가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113p)

우연은 주변에서 심심할 새도 없이 흔하게 일어나고 있다. 둔하게도 그것이 지나가는 것조차 모르고 있을 뿐이다. 소설에서는 자주 있는 우연의 일치가 실제 생활에서는 좀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연의 의미를 자기에게 맞게 해독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일상을 예민하게 감지할 수 있는 우리의 더듬이를 날카롭게 손을 보는 게 먼저일 것이다. 그러면 놓쳐버린 수많은 우연들은 소설처럼 그림처럼 아름다운 구성을 만들어낼 지도 모를 일이다. (115p)

 

홈메이드 음식이 그리운 것은 고향 같은 사람이 마음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133p)

 

이들은 길 위에서 살기 위해 길을 버린 자들이다. 아무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최소한의 수치심마저 버린,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일그러진 자유로움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가던 길을 버렸나 보다. (137p)

 

거리에 버려진, 쓸모는 없을지 모르나 아름다운 의미를 지닌 것들을 예술적 소재로 주워 담는 자라는 의미에서 예술가들을 넝마주이라고 불렀다. (138p)

 

마흔이라는 나이에 얻은 지혜라고 한다면, 인생은 정답 없는 의문문들로 가득 채워진 교과서라는 것을 어렴풋이 이해한 것뿐이다. (153p)

 

생은 유한해서 덧없는 것이 아니라, 삶의 소중함을 모르는 채 엉뚱한 것에서 의미를 찾으려 애쓰기 때문에 덧없는 것이다. (165p)

 

건강과 생활습관 사이의 관계뿐 아니라,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많은 일들이 반드시 인과관계로 엮이는 것은 아니다. 만일 원인과 결과가 철저하고 정확하다면, 사람들은 정말로 숨막히게 기계처럼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세상의 인과관계란 느리고 느슨하게 이루어지기에 매력있는 것이다. (171p)

 

비굴하게 만드는 세상에서 한 조각의 자존심만큼은 꼭 쥐고 살겠다는 도전 자체가 이미 커다란 의미다. (183p)

 

중독은 이렇듯 자신을 가두는 것이다. 현실을 망각할 수 있어 좋았던 한나절의 꿈은 점점 깨어날 수 없는 악몽으로 변하여 스스로를 가두고 만다. 잊고 싶은 건 현실이었는데, 정작 잃어버린 것은 나 자신인 것이다. (189p)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고 위대한 괴테는 말하지만, 이제는 정말 땅에 발을 딛고 싶다. 아니 땅만 보고 걸어가도 행복할 수 있으면 좋겠다. (197p)

 

하지만 이제는 안다. 10년 후 물어물어 다시 이 연주가를 찾아온다 한들 지금과 똑같은 느낌을 받지 못하리라는 것을. 행복은 하나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매번 색깔이 달라지는 카멜레온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추구하고 마침내 성취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발견하고 매순간 경험하는 그 무엇이니까. (201p)



- 2012년 5월 13일 15:11